- 글쓰기

휘연
- 작성일
- 2020.3.26
열 문장 쓰는 법
- 글쓴이
- 김정선 저
유유

교정만 이렇게 오래 하신 분이 글을 이렇게 멋지게 쓰시다니. 글쟁이는
다르구나!를 절절히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으면서 이 저자의 책은 다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운 좋게, 이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정말 너무 멋있어. 게다가 이 책은 글도 멋있는데, 이렇게나 다른 방식의 글쓰기 책이라니. 이제껏 글쓰기 책 여러 권
읽었는데 정말 처음이다! 글쓰기를 이끄는 방식도 신박하고, 그
이유나 여러 생각도 흥미롭다. 이렇게 얇은 책이 결코 얇지 않다. 진정한
글쓰기에 대해 여러 각도로 고민해본 시간이다.
말했듯이
글쓰기 책을 여러 권,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꽤 많이 봤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글이 써지지 않는다. 정확히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다. 내가 쓸 수 있을까? 내가 뭘 쓸 수 있을까? 이 쓴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면서 글쓰기를
미루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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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싶을 때, 우리가
느끼는 당혹감은 대부분 ‘나만의 것’과 ‘모두의 언어’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거리 때문일 겁니다. (17)
아하! 나만의 것을 풀어 낼 줄 모르는 거구나. 이는 모두의 언어로 만들 수 없는 능력 부족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나만의 것도 제대로 찾지 못해서 못 쓰는 거구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ㅋㅋㅋ) 뭔가 뒷통수를 맞은 느낌.
아, 그런 거구나. 글을 쓴다는 건 나와 모두의
거리를 좁히는 과정이구나. 크으~ 멋있어. 그리고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경우는 아직 나를 글에게 온전히 내맡기지 못해서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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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쓰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마치 실타래에서 실이 풀려 나오듯 내 안에서 글이 풀려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글에서 글이 나오는 것뿐이랄까요. (33)
글이 글을 쓰게 한다는 것. 종종
글쓰기 책에서 소설책의 주인공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게 한다는 말을 들었다. 같은 맥락일 듯
하다. 가상의 인물뿐만 아니라 글 안에 있는 주체인 ‘나’가 슬슬 풀어나가는 것이, 진정 글을 쓴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엉켜 있는 실타래에서 조금씩 뽑아내는 것, 자신의 색실과 주변에서
모을 수 있는 색실이 잘 어울리게 묶여 가는 걸 말하는 건지도.
내가 글을 잘 못 쓰는 건 이 과정이 몹시 부족했던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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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것’이
‘모두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은 달리 말하면, 글을 쓰는 주체인 ‘나’가
쓴 글이 문장의 주어인 ‘나’가 쓴 글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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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뭔가 벽에 부딪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낀다면 화자로서의 ‘나’와 친숙하지 않은 것도 한 가지 원인일지 모릅니다. (46)
화자로서의 나를 인정하지 않고, 자꾸만 글을 쓰는 내가 진입해서 글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글이 아니었을지도. 종종
나중에 글을 쓴 걸 보면 ‘그때의 나’와 다른 ‘지금의 나’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제대로 화자를 집중하지 못하고, 화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화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지 못했다. 문학 글쓰기를 하는 이들은 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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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머물면서 ‘나만의 것’을 뽑아 내는 데만 급급했던 상황에서 벗어나 상대방 혹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화자의 상황과 처지를 고민해 가며
글을 쓰니 무엇보다 시야가 달라졌죠. 그야말로 전체를 조망해 가면서 글을 쓰게 되었달까요. (54)
게다가 전체를 조망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 가끔은 나무 한 그루에 집중해야 하는 때도 있지만, 분명 전체를,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할 때도 있다. 특히 글쓰기의 경우 전체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생각해야, 전개를 미리 봐야 화자가 어떻게 되어갈지 볼 수 있다. 이래서 개요를 짜놓고 글을 써는 게 중요하구나 싶은 생각이… 그래야
매끄럽게 그 화자가 어느 지점에서 어느 정도만 알고 있는지 파악해서 쓸 수 있을 듯 하다.
가장 감탄했던 관점은 글이 공간의 예술이 아니라, 시간의 예술이라고 명명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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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그림이나 조각 같은 조형 예술처럼 공간을 통해 의미를 드러내는 장르가 아니라 음악처럼
시간을 통해 의미를 구현해 내는 장르임을 알려 주는 방증이죠. (중략)
오직 정해진 시간, 정해진 리듬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면서 감상하는 방법밖에 없으니까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중요한 장르랄까.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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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그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속에 흐르는 기대 시간에 여러분이 쓴 글 안에 흐르는 시간이
어떻게 호응하는지 따라 여러분이 쓴 글의 리듬이 결정되는 것뿐이죠.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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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우리가 전략적으로 몸에 익혀야 하는 시간 감각은 글을 쓰는 우리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쓴 글을 읽게 될 독자의 마음속에 흐르는 시간과 관련된 감각입니다. (113)
사실 미술은 공간, 음악은 시간이라고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글이 어떤 분류로 들어갈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읽으면서 시간이
흐른다는 점에서 글은 시간의 예술이라는 것. 시간이 흘러야만 우리가 글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글이 시간의 예술이라고 분류해야 함을 보여준다. 특히 글을 읽고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그 글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니. 그래서 저자는 강조한다. 독자의 입장에서 시간
감각을 익혀야 한다. 와..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독자의 마음 속 시간. 궁금하다. 내 글을 읽는 이들의 마음 속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있을지.
이런 저자가 알려주는 글쓰기 방식 또한 예사롭지 않다. 단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방식이다. 궁금하신가?! 책을 보시라!!!!!!
(보시라규요!!!!)
당신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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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통해 어제의 나와 다른 오늘의 나를 발견하고 창조해 가는 작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글쓰기는 이른바 ‘가성비’는 물론 ‘가심비’도 엉망인 작업일 겁니다. 그리고
나에게 한 번도 낯선 ‘너’가 되어 보지 못한 ‘나’는 진정한 ‘나’라고 말할 수 없겠죠. 그러니 글쓰기는 바로 그 ‘내게 조차 낯선 나’와 매번 맞닥뜨리는 작업이어야 할 겁니다. (55)
그래, 글쓰기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혹은 나조차 잘 알지 못하는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아니 어쩌면 목표는 한결같다. 나를 찾는 과정. 그리고 저자 덕분에 추가된 찾아낸 ‘나만의 언어’를 ‘모두의 언어’로 바꾸는
것. 앞으로 더 흥미로운 글쓰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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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