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싱긋
- 작성일
- 2025.4.4
무료 주차장 찾기
- 글쓴이
- 오한기 저
작가정신
이런 소설은 처음이다.
작가 이름 오한기. 화자 이름 오한기.
게다가 화자의 직업마저도 소설가다.
세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가족들)까지 모두 같다.
그래서 연작소설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느껴졌다. 이전의 작품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지어오신 모양이다. “세상에서 가장 긴 한 편을 쓰는 매력적인 작가”(산문가 김신식)라는 평가를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오한기 소설가는 ‘가장 실험적인 시도를 보여주는’, ‘기존 소설의 관습과 문법을 비트는’ 작가로 손꼽혀왔다. 정말이었다. 이야기들의 배경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극사실주의로 읽히는 대목들이 많다. 그런데 서사의 흐름은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다. 그렇다고 판타지라 할 정도로 튀지는 않는다.

앞표지에 선명하게 "연작소설집"이라 쓰여있건만 이야기들의 정체를 특정할 수가 없다. 자전적 경험 같은데 소설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재미있기는 힘들다. 에세이인가, 소설인가 계속 헷갈리다가 중반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에 빠져 읽었다. 에세이면 어떻고 소설이면 또 어떠랴. 오한기가 창조한 세계는 재미있고 의미까지도 있으니 그저 몰입하면 될 일이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보란 듯이 무너뜨린 《무료 주차장 찾기》.
여러모로 이 소설들은 기존의 소설적 틀에 가둘 수 없는 오한기만의 이야기였다. 그는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시니컬하지만 소심하게 도덕적이고 따뜻하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내 맘대로 당당하게 타입의 괴짜일 것 같다. 물론 에세이가 아니니 실제 작가님이 어떤 분일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화자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작가님의 큰 그림 속에는 독자의 이러한 상상과 착각도 포함된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꼬이고 얽힌 혼란스러운 반응까지도 기대하며 신나서 쓰셨을 것 같다는 예상이 절로 든다.

제목도 특이하다. 소설 제목이야 워낙에 다채롭고 기발한 게 많지만 이상하게 《무료 주차장 찾기》는 더 생뚱맞아 보였다. "무료 주차장"이라는 말을 평소에 쓰지 않아서 생소했던 것 같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도중에도, 다 읽고 책을 덮고서도 제목에 숨은 다른 의미를 더 찾고 싶어 계속 곱씹었다.
표제작인 첫 번째 소설 <무료 주차장 찾기> 속 화자 오한기는 소설가지만 고정적인 수입은 적다. 다행히 대기업 정직원 마케터인 아내 덕분에 생활이 어렵지는 않다. 딸 주동이는 오한기가 전담해 돌본다.
그러던 어느 날,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주동이 유치원 버스가 사라졌다고 했을 때,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 줄 알고 피식 웃었다. 주동아, 거짓말을 해도 그렇게 유치원 버스처럼 귀여운 거짓말을!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였다. 유치원 홈페이지에는 기사가 버스를 몰고 사라졌다며 당분간 운행할 수 없으니 등하원을 직접 해야 한다는 당황스러운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무료 주차장을 찾으러 갑니다.
기사는 이런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 31면

원인은 원장의 갑질이었다. 유치원이 주택가에 있어 주차할 데가 마땅치 않은데, 원장이 정직원 전환을 인질 삼아 수십 년 동안 주차비용을 기사에게 부담시켰던 것이다. 기사가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기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빤하지만 씁쓸한 사건이었다.
황당무계하지만 있을 법도 한 이야기였다. 무료 주차장을 찾는다는 말뜻에 한동안 골몰했다. 나도 동네를 벗어난 곳에 갈 일이 있으면 주차 환경 먼저 살펴본다. 근처에 공영주차장이 있는지, 살짝 신세 질 만한 아파트 단지가 있는지, 갓길에 댈만한 장소가 있는지 말이다. 어렵겠다 싶으면 대중교통이 오히려 편하다.
사실 주차요금을 내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모든 운전자들이 그렇듯 주차비는 이상하게도 참 아깝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자동차는 끝없이 판매하면서 주차 공간에 대한 시스템은 그에 상응하지 못하는 세태가 마치 자동차는 만들면서 정작 도로는 여전히 흙길, 자갈길로 내버려둔 것처럼 어이없다. 주차 자리 같은 기본적인 자원조차 확보하기 어려워 하염없이 돌고 돌아 헤매야 하는 현대 생활의 고단함과 부조리가 "무료 주차장"으로 나타나 보였다.

달릴 때가 있으면 멈출 때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멈출 수 있는 "무료 주차장"이 있다면 한결 가볍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당당하게 주차장에 주차했으니 차 빼라는 전화가 올까, 주차 단속이 뜨진 않을까 초조해하지 않고 마음 편히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를 보장받는 기분일 것 같다. 나를 받아들여주고 존중해주는 환대의 감정을 느낄 것 같다는 건 오버일까. 잠시 멈추고 쉴 안식처마저 늘 애써 찾아야 하는 우리의 불안정한 삶을 비추는 것 같았다.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멈출 공간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또 달려야 하는 아이러니가 서글프다.
블랙 코미디 같은데 빨간머리 앤도 떠올랐다. 공상하며 다채로운 이야기를 짓고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사는 앤이 오한기 작가님과 닮았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제약 없이 써내는 이야기꾼 같았다. 독자의 시선마저도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져 좋았다. 소설의 가치나 문학의 의미 같은 거창한 정의에 매이지 않고 편하게 흘러나오는 이야기 같았다. 재미를 중시하며 즐겁게 쓰는 소설이 주는 유쾌함과 통쾌함이 있었다.
삶이란 본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삶을 닮은 소설도 낯선 이야기가 말이 안 된다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난할 게 아님을 깨달았다. 명확한 구조나 의미 없이 흐르다가 난데없이 방향을 틀어버릴 수도 있는 게 인생이었다. 창조자인 소설가가 그렇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스토리였다.
색다른 소설, 현실적이지만 붕 떠 있는 것도 같은 소설. 영상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에 빠지고 싶을 때 《무료 주차장 찾기》 추천합니다.

*** 출판사 작가정신의 서포터즈 작정단 13기의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한기 #무료주차장찾기 #작가정신 #연작소설 #오한기식생계백서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