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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제이
  1. 영화

이미지

영화 정보
감독
이창동
제작 / 장르
한국
개봉일
2010년 5월 13일
평균
별점8.5 (0)
엠제이

서정시가 사라진 시대의 서정시.


 


1.


영화관에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나 어머님들이 오는 모습은 무척이나 정겹다. 10대, 20대의 문화가 점령해버린 이 시대에 그들이 멀티플렉스의 입구를 드나드는 것 자체가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오늘 이창동의 시를 보러 갔을 때 손을 꼭 잡은 노부부의 얼굴에는 일종의 만족감이 엿보였다. 역시 나이 지긋하신 노배우 윤정희님이 주연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영화에서 하정우를 보고, 전도연을 보는 것과 같은 만족감이 보였다. 이창동 감독이 시가 죽어버린 시대에 시를 그려낸 것과 같이, 중장년층의 문화가 죽어버린 시대에 그들을 다시 영화관으로 발길을 들게 했다. 그래서 난 이 영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시라는 영화 자체가 무척이나 고맙다. 비록 하녀에 비해 관객 수는 많이 적지만, 우리 부모님과 같은 분들이 부담 없이 극장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영화들이 더욱 많이 개봉해야 할 것이다. 영화는 모두의 것이니까.


 



 


2.


영화의 시작 한 여중생이 강물에 끔찍한 모습으로 유유히 떠내려간다. 아이들은 뛰놀고, 햇살이 아름답게 비추는 강물의 기대를 저버리기라도 하듯 그 모습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끔 한다. 그리고 시라는 정성들여 쓴 글자가 화면의 좌측을 대비하듯 모습을 드러낸다. 시가 죽어버린 시대에 시를 써야하는 미자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시라는 제목 옆에 poetry라는 영어단어가 떠오른다. 어 poem아닌가? 했다가 그럼 poetry는 뭐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poem과는 조금 다르다. poem은 완성되어진 한 편의 시를 뜻하지만, poetry는 문학형식으로서 시를 짓는 미자의 문학적인 사고와 창작 행위에 대한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미자는 머리를 강물에 박고 유유히 떠내려오는 소녀의 시체에 시를 읊어내야 하는 운명을 마주한다.


 


3,


경기도의 작은 도시에 중학생 손자와 단둘이 사는 미자라는 할머니가 있다. 그녀는 꽃무늬 모자와 색색들이 옷을 즐겨 입고, 나이를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소녀 같은 할머니다. 미자는 어는 날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고,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 보잘 것 없는 일상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녀는 세상은 보면 볼수록 자신이 몰랐던 세상의 어두운 면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그녀 앞에 다가온 비극에도 오로지 시 하나를 쓰기 위해 세상을 견디던 그녀는 어둠만이 가득 찬 세상에서 시를 쓰는 것이 버거운 일임을 느낀다. 아름답다고 믿었던 세상의 어두움을 꾸역꾸역 삼켜대던 그녀는 결국 하나의 시를 토해낸다.


이 영화에서는 ‘시는 죽어도 싸’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것도 현직 시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신경이 쓰인다. 영화에서는 미자가 듣는 강좌를 통해 시가 무엇인지 그리고 시를 쓰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자세히 듣게 되지만, 죽어버린 시처럼 세상은 비극과 어두움이 더 큰 세상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비춘다. 약한 자를 성폭행하는 아이들, 그것을 돈으로 무마하려는 어른, 학교의 명예가 실추될 것이 두려워 쉬쉬하는 선생님들, 늙어버린 졸부의 시들어버린 육체, 이혼한 가정에 남겨진 아이까지. 시를 낭송하는 자리에서조차 음담패설이 없이는 들어줄 수 없는 우스운 현실의 녹록치 않음에 미자는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미자는 언제나 이질적인 것을 보듯 시적 영감을 얻어내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유심히 살펴보지만, 그녀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꽃 한 송이의 영롱함 뿐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비극의 소용돌이를 시를 통해 빗겨가게 하겠다는 그녀의 계획은 무너진다.


 



 


4.


소녀가 다니던 성당에서 그녀를 위로하는 미사가 열렸을 때, 미자는 그 곳을 찾아간다. 하지만 오래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그 잔인한 현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사진 한 장을 훔쳐 챙겨 달아난다. 아마 미자는 잔혹한 현실에 쉬운 용서를 구하려 했을지 모른다. 그만큼 그녀는 죄의식의 구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했다. 시는 그녀에게 도피수단일 뿐이었다. 미자는 소녀가 살았던 동네와 그녀가 투신한 강가를 거닐었을 때 그녀의 죄의식은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시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보면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시를 쓰게 되면서 더욱 잔인한 세상을 본 것이다. 결국 이창동 영화에 지속적으로 주제가 되는 죄의식의 구원 그리고 용서는 정작 이창동의 가장 따듯한 영화 시에서는 완성되지 못한 숙제로 남는다.



 영화 밀양에서 아들을 잃은 피해자 신애는 종교를 통해 구원받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죄인까지 구원해주신 신을 증오하게 된다. 어떤 권리로 신은 신애를 포함한 가해자까지 구원하려 했을까. 이창동 감독은 밀양을 통해 가해자의 구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신에 투항했다는 이유로 죄인의 속죄를 받아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신의 영역인가. 이창동은 미자가 성당에서 도망치는 장면을 통해 가해자는 결국 용서받지 못한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을 드러낸다. 그녀는 갖은 노력으로 속죄하려 했지만, 결국 시를 통해 도망칠 뿐이다.


 


5.


  영화의 마지막 미자는 자진해서 손자를 경찰에 보내고 사라지는데 그녀는 시 한구를 남긴다. 죽은 소녀의 삶을 어루만지고, 그녀가 일상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쓴 시는 진실 되지만, 결국 생각해보면 시로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방점으로 간다. 결국 이창동의 <시>는 구원이 아닌 그저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애처로운 눈빛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다가가고, 어떻게 하면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삶에 관한 진중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이창동의 메시지가 영화 시에는 함축되어 있다.



  초록물고기부터 밀양까지 수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그는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큰 상도 받고, 문화부장관까지 지내며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정작 관객과 대중과는 얼마나 많은 소통을 했는지 의문시했던 것이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가장 문화와 예술이 풍족한 시대를 사는 우리가 정작 세상에 관한 시에는 인색해지고, 삶에 대한 질문엔 답을 못하면서도 자극적인 컨텐츠에만 익숙해져 어두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 묻는 것이다. 마치 소녀의 죽음을 돈으로 해결하는 아버지들처럼, 소녀를 겁탈한 소년들처럼, 그것을 조용히 묻어버린 선생님들과 구분된 인생을 살면서도 그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서정시가 사라진 시대의 우리의 자화상이 미자의 고통과 대비되는 관념으로 자리 잡는다.


 



  세상은 더럽고 치사하게 흘러가는데 예술인의 시(영화와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은 헛소리만 지껄이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삶에 대한 고민 없이 창작을 하는 문화예술인의 자각이 담겨있다.


 


7.


  시란 침묵과도 같다. 구구절절 말없이 하나의 단어로 쉼으로 내의를 함축한다. 다음 한마디 하기 전 쉬어가는 여백의 미가 오히려 읊어내는 시간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그만큼 시는 자유로운 형식에서 정해진 것이 없는 다채로운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엔 시가 사랑받지 못한다. 가장 정확한 팩트를 중시하는 시대에 여백이 가득한 시는 풀어지지 않은 압축파일과 같은 처우를 받는다. 그 압축이 풀리지 않았을 때, 시는 결국 하드용량을 좀먹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그래서 이창동은 시가 필요했다. 진정한 의미로 삶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고, 생각해 줄 수 있는 예술의 죽음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관객은 저마다의 느낌으로 시를 생각해낸다. 오로지 유희를 위해 만들어진 예술이 아닌 삶에 대한 이해를 위해 시를 적어 낸다. 이 영화에서 투신해 자살한 소녀에게 느껴지는 바보같은 그 분의 죽음처럼 우리에겐 서정시를 쓸 수 없는 시대에 보내는 서정시가  필요한 것이다.


8.


  영화의 마지막은 충분히 인상 깊다. 밀양에서 신애를 비추는 한줄기의 빛처럼 미자가 읊는 그녀의 시는 예술의 쓸모없음을 말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답다. 소녀가 걷던 동네의 아늑한 풍경과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운 이창동 감독이 직접 쓴 이 시는 결국 이 하찮은 예술도 살아내야 할 일말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닌가를 묻는 이창동의 애처로운 질문처럼 느껴졌다. 한 예술인의 질문에는 단순한 의문이 아닌 깊은 하소연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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