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게스
- 작성일
- 2017.3.7
미덕의 불운
- 글쓴이
- D. A. F. 드 사드 저
열린책들
성애에 채찍질이 포함된(?) 것은 이때부터인 듯하다. 사디즘이라는 말의 어원이 이 책의 작가 사드(Sade, Marquis de)에서 온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사드는 채찍을 휘둘러 두 파트너 간의 주종 관계를 규정하고 상대방을 복종시키는 의식을 통해 더욱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 인간의 성적 욕망과 그 실험을 통해 새로운 성문화를 개척한 선구자라고 평가받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드는 소설을 통해 19세기 20세기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성 풍속도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고, 그 이름은 인터넷 주소 란에 스펠링 한 번 잘못 쓰면 불쑥 불쑥 뜨는 음란 사이트에서도 성업중이시다.
하지만 사디즘의 원조격 되는 소설이라고 해서 인터넷에 뜨는 화면 이상의 자극을 원하는 독자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 좋다. 생각해 보라. 이 때는 18세기 프랑스였고, 우리나라에서 불과 일이십년 전에도 그랬듯이 여성에게는 순결이라는 이상한 가치관을 미덕으로 가르치던 사회였다. 따라서 혼전 성애에는 파괴와 죄책감이라는 심리적 감수성이 성적 자극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었을 것이며, 세밀하지 않은 안개처럼 가리워진 행위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런 새로운 성적 생활로의 가이드라인을 받았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뿌연 안개 속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마치 대부분의 성애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된 야동을 보는 듯하다고나 할까.
나는 이러한 안개 기법이 18세기에 적나라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만은 보지 않는다. 쥐스띤느가 겪은 불운은 참혹하고 참담하다 못해 역겹기까지 하다. 수녀원에서 곱게 자라던 두 자매 쥘리에뜨와 쥐스띤느는 어느날 부모의 파산과 파멸로 인해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되고, 언니와 동생은 서로 정 반대의 길을 걷고자 헤어진다. 종교와 선의 미덕을 배우며 오로지 신의 뜻에 따라 시대가 ‘미덕’이라 칭송하는 대로만 살고자 했던 쥐스띤느는 시대가 요구하는 미덕을 실행하면 할 수록 점점 더 혹독한 현실 속에 내팽개친다.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그녀의 아름다움을 탐하거나 그녀를 갈취하고 약탈하고 범죄에 가담케 하지만, 그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에 굴복하지 않고 선행을 쫓음으로써 번번히 더욱 더 인생은 말할 수 없이 짓밟히고 유린된다.
두 자매 중 타고난 아름다움과 음모를 이용하여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은밀하게 남의 재산을 가로채고 살인을 비롯한 여러 범행으로 로르상주 백작부인이 된 쥘리에뜨는 이제 우아하게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는데, 우연히 여인숙에서 살인, 절도, 방화죄로 기소되어 경찰 몇 명에게 호송되어 가는 가련한 여인을 발견하고 그 사연을 듣게 된다. 후에 쥐스띤느로 밝혀지는 소피가 겪는 가혹한 현실은 처음 수녀원 기숙사를 나와서부터가 혹독하기만 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예쁘고 어린 소녀에게 던지는 추악한 욕망의 손길은 변함이 없다. 그녀가 믿는 종교와 사회적 관습에 의해 선과 악의 구별이 뚜렷한 쥐스띤느는 몸을 파는 일은 마다하고 처녀성을 지키며 선하게 살아가기만을 바라지만, 성적 방어는 지키고자 할 수록 더욱 더 유린되고, 선을 행하고자 할 수록 더욱 흉악하고 참혹한 악의 피해자가 되어간다.
줄거리를 길게 쓸 작정이 아니었는데, 선을 행하려고 할 수록 더욱 큰 시련 속으로 빠져드는 쥐스띤느의 운명을 이야기하다보니 말할 수 없게 길어졌다. 그래더 줄거리는 뒤로 뺀다. (이미 썼으니 아까우므로 살려둠)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주의를 이끄는데, 하나는 이렇게 선을 행하면 행할 수록 불운으로 되돌아오고, 악행으로 큰 돈과 명예를 얻은 사람에게는 그 권력으로 다시 선을 행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그 아이러니를 반복 설정함으로써 우화적으로 우리가 가진 선에 대한 편견을 깨고자 했던 점이 그것이고, 또 하나는, 사디즘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성폭력에 대한 시각이다.
현대의 눈으로 보면, 쥐스띤느에게 주어진 모든 시련은 대개 성폭력이라는 단어로 축약되는데, 이것이 사디즘이라는 성애의 한 형태로 발전했다는 점은 여성의 역사 혹은 성의 역사에서 여러 논쟁거리를 시사한다. (내가 생각하기로) 사디즘은 두 사람의 동의에 의해 성적 쾌락을 위해 동의된 만큼의 제한 내에서 신체에 가해지는 자극 쯤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쥐스띤느의 경우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 한 번도 자신 스스로를 그러한 폭력에 의해 쾌감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한 번도 자신이 동의하에 폭력이 가해진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성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장애가 있다고 밖에 보아지지 않는 범죄자들의 엄청나게 잔혹한 범죄일 뿐이다.
오 하늘이시여 ! 미덕에 입각한 행위가 제 가슴에서 우러나오면, 즉시 고통이 그 뒤를 따라야 함이 이미 정해진 뜻이오니까?
섭리의 손이 항상 같은 방법으로 저를 괴롭히는 데 싫증을 느꼈음인지 그 새로운 구렁텅이에서 빼내어 곧이어 또다른 구렁텅이로 저를 처넣었습니다.
초반에는 하녀 일을 시작하는데, 주인이 시킨 도둑질에 협조하지 않자 오히려 그 주인의 음모에 희생되어 갇힌다. 감옥에서는 뒤부아 부인이라는 부인이 사형수가 불을 내고 탈옥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쥐스띤느를 함께 탈옥시키고 선행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자기와 함께 멀리 떠나 행운을 찾아보자고 권한다. 범죄를 암시하는 그 말에 쥐스띤느는 굴하지 않자, 탈옥에 동행한 뒤부아의 세 남자 동료들이 쥐스띤느를 강탈하고자 한다. 서로 먼저 그녀를 취하려고 뒹굴고 싸우는 틈을 타서 도망친 쥐스띤느는 덤불숲으로 도망가 숨어있다가 두 남자의 ‘타락된 장면’을 목격하는데, 목격하는 장면을 그들에게 들켜 나무에 묶이는 수모를 당한 후, 앞으로 자신에게 ‘순종’하면 후회할 일이 없을 거라며,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녀를 데려간 남자는 브레삭 부인의 아들로, 대저택에서 어머니가 가진 재산으로 빈둥거리며 쾌락의 길만을 걷고 있는 아들이다. 쾌락에 빠진 브레삭은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모친 살해 계획을 세워 재산을 함께 나누어가지자며 쥐스띤느를 유혹하여 협조를 구하지만, 선행만이 최고의 가치인 쥐스띤느는 사건을 막기 위해 브레삭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가 들키고 만다. 다시 숲으로 끌려와 나무에 사지를 묶인 채 채찍질 당하고 혹독한 쇠채찍질로 온몸이 살갖이 떨어져나가 피범벅이 되는 쥐스띤느를 지켜보며 더더욱 흥분하고 절정에 이른 브레삭은 쥐스띤느를 브레삭 부인의 살해범으로 꾸미고 쫓아낸다.
채찍질에 다친 몸을 이끌고 의사 로뎅의 집을 찾아 그곳에서 치료를 받은 그녀는 로뎅의 가정일을 돌보아주는 하녀가 되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지내지만, 그것도 잠시, 로뎅씨와 그의 의사 동료들이 아이를 납치해와서 생체 실험에 쓰려고 지하실에 가두어놓은 사실을 알게 되고, 아이를 탈출시킨다. 그 대가로, 발가락을 하나씩 자르고 생 이빨을 하나씩 뽑고, 어깨에 죄수의 낙인을 찍는 브레삭에게 당했던 것보다도 더 잔혹한 육체적 고문을 당하고 쫓겨난다.
이후 종교적 열정에 이끌려 숲 속 깊은 곳에 위치한 수도원을 찾아가지만, 그곳은 그야말로 수도사 네 명이 여성들을 납치 감금하여 성노예로 만들어 쾌락을 갈구하는 타락의 끝판이었던 것이다. 수도원에서 신부들에게 유린당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긴데, 위에서 언급한 브레삭과 로뎅의 잔혹 행위 부분과 달리 이 곳에서 이루어지는 집단 성행위들은 정염의 불길을 태운다거나 탈진할 때까지 괴롭혔다는 형태로 묘사된다. 물론 채찍질과 육체적 학대도 빠지지 않는다.
새 수도원장이 오며 풀려난 쥐스띤느는 이제 선행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버릴 때도 되었건만, 길거리에서 학대를 당한 남자 달빌르를 돕다가, 그의 저택에 다시 노예로 감금되어 이미 갇혀있던 그의 오랜 정부들과 함께, 발가벗겨지고 바퀴에 묶여 하루 종일 땡볕에서 노동을 하며 다시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처지로 바뀐다. 그의 범죄가 드러나고 다시 풀려날 기회를 얻게 되지만 몸에 찍힌 낙인 때문에 범죄자 신분이 되고, 그녀를 도와주던 재판관에 의해 다시 풀려나 일자리를 찾으려고 여인숙에 투숙하는 동안 초반에 만났던 뒤브레이 부인을 만나고, 그녀에게 연정을 품은 한 돈많은 상인을 이용하여 큰 돈을 벌어보자는 제안을 받고 다시 난처해지면서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가, 투숙한 여인숙에서 화재를 만나는데, 함께 다니던 아이를 화재에서 구하려고 뛰어들어 안고 나오다가 넘어져 아이는 죽게 되고, 재산을 노린 방화에 살인죄까지 뒤짚어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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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