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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 작성일
- 2020.12.11
아주 오래된 유죄
- 글쓴이
- 김수정 저
한겨레출판
상사로부터 위력에 의한 성범죄를 당한 노동자 김지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투쟁하고
마침내 그 권력과의 싸움을 완수해낸 피해 생존자 김지은의 기록을 담은 책
<김지은 입니다>가 생각났다.
이 책은 김수정 변호사가 호주제 및 낙태죄 위헌 소송의 대리인,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 이주여성인권센터 법률 지원단 등 다방면에 걸쳐 지난 20여 년간 여성들을 대리하고 변호하면서 연대자로서 겪은 구체적인 사정들을 담고 있다.
전문 작가가 아닌 법조인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는 사례들은
폭력을 당한 피해 여성들에 대해 법이 어떻게 외면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은
인간으로서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는 게 현실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뉴스에서나 볼 것 같은 먼 일이 아니었다.
우리 주변에 가깝게 침투해 혼재해 있었고, 참담했으며 읽는 내내 힘들었다.
곧 출소를 앞둔 조두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이 극에 달한 가운데
그가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신병 확보를 위해 분투한다는 기사를 보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예전에 비해 법은 여성을 보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의 성 평등 인식이나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처럼 지나치게 가볍다.
사법의 외면에 끝내 눈물을 흘리는 사례를 보며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계속 싸워야 하는 현재진행형인 여성들이 투쟁의 길이
아직 멀었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남자와 여자의 편을 가르기 위함이 아닌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 저자의 바람처럼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변호사도 부술 수 없었던 법과 제도의 한계를
우리 사회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책 속으로...
그놈이 유포한 영상을 지우며 여자는 날마다 죽었다.
어느 날 직장 동료가 그녀에게 말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상이 있는데 너 같아.”
그녀는 문제의 영상을 보자마자 누가 유포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전 남자친구
그녀를 변론하기 위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영상을 봐야 했다.
슬픈 영상도 아닌데, 흐르는 눈물을 머출 수가 없었다.
얼굴이 보이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다.
유포범인 그놈은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던
피해자의 얼굴만큼 내게 큰 슬픔을 준 얼굴은 없었다.
‘XX 부인’, ‘OOOO 부인’
그녀는 매일 인터넷을 뒤져 자신의 영상을 삭제했지만
지워도 지워도 영상은 좀비처럼 다시 올라왔다.
“술김에”, “홧김에”, “심심해서”
한 사람을 파괴하는 일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파괴하는 일이 이렇게 이루어진다.
더 이상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된 그녀에게
나는 얼마 안 되는 합의금을 받으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었다.
실형을 받는다고 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처벌에 불과할 것이고
재산 한 푼 없는 그놈에게 손해배상금을 받아낼 길은 멀기만 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싸움은 가끔 승리하지만,
많은 경우 여전히 패배한다.
그럼에도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싸워낸 여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지옥이 되는 디지털 성범죄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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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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