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이라는 말이 왠지 모를 매력이 있는 건지 요즘 여기저기서 이 단어의 차용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는 십 여 년 전 쯤 서평가로 유명한 로쟈 이현우의 저공비행으로 이 단어의 레토릭을 처음 접하였는데 최근에는 방송이나 문화예술 쪽에서도 - 동일한 단어를 서로 전혀 다른 의미로 - 많이 빌려 쓰는 듯하다. 그런데 이 책 하라 켄야가 쓴 “저공비행”은 그런 수사학이나 알레고리가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저공비행”이다. 즉, 보통 여객기로 구름 위를 날아가는 그런 거 말고 EBS 방송프로 “하늘에서 본 세계”처럼 낮게 날면서 멋진 경치를 두루두루 조망하는 그런 거 말이다!

  물론, 저자쪽에서야 공식적으로는 이런 식의 설명을 부정한다. 심지어 웹사이트(https://tei-ku.com) - 이 책은 이 사이트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에서는 “비행기 여행이 아닙니다”라고 못까지 박아 놨다. 그러나 정작, 저자가 큰 감동을 받고 그의 철학을 담아 총체적인 여행 산업의 전반을 디자인하게 된 근저에는 십 수 년 전부터 소형 프로펠러기를 타고 일본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신성한” -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 경관에 홀려 마음을 빼앗긴 진짜 “저공비행”이 있었음이 너무나 분명하다.

  아닌게 아니라 실제, 그가 ‘반도항공’이라 이름 붙인 프로젝트를 보면 “저공비행”의 경험에 대한 그의 황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말 잘하는 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관”이라고 하니 경험 해보지 않은 자로서는 그저, 속만 쓰릴 다름이다. 어쨌든 저자는 구체적으로, 바다와 육지에서 발착 가능한 해상자위대의 해난구조정 가운데 한 종류인 ‘US-2’라는 기종을 활용한 저공비행 관광 디자인을 구상하면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일본의 모습이 저공비행의 영역에 그대로 남아 있다”(p.30)며 흥분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저자가 고백하듯이 아직, “가능성의 안개에 휩싸여 발현하기 전“(p.31)이며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저공비행’이 은유화 되어 - 웹사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 ”지상의 경치를 중얼거리게 바라볼 수 있는 고도로, 일본의 심부 혹은 세세한 부분을 가로질러 돌아다니는 여행을 이미지한 비유적인 명칭“이 된다. 이를 통해 글로벌과 로컬, 나와 우리, 제조업과 관광산업, 풍토를 표현하는 역할로서의 호텔, 클래식과 모던, 럭셔리의 의미와 일본의 럭셔리에 대한 고찰 그리고 다양한 방법을 통한 이동의 디자인에 대해 그의 철학을 풀어낸다.

  웹사이트나 도서 모두 여행안내지침서로 읽으면 부족함이 많다. - 결정적으로 가격 정보가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 다만, 전작 등에서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밝힌 하라켄야가 관광, 여행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호텔이나 이동 등에 관해 어떠한 소회를 밝히는지 궁금하다면 길지 않은 분량이니 읽어볼만하다.

  책 중간에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라고 씌어있어(p.25) 설마 했는데 역시나, 웹사이트에는 일본해로 씌어 있다. - 번역자가 고생이 많다.

  저공비행을 실현시켜 줄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와 그 앞 가운데 하라 켄야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