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러샤
  1. 지난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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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글쓴이
요시카와 고지로 저
뿌리와이파리
평균
별점9 (2)
오피러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한가지 있다.


 


이야기라는 단어가 좋겠다. 비밀이라고 표현하기엔 시시하고,


 


사연이라고 하기엔 구구절절 인생 전반에 걸친 한 맺힌 정서는 아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눈물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낙천적이고 너그러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그녀는 인생을 통틀어 “안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을 만큼 부모님은 관대하셨다.


 


하지만, 딱 한가지 “눈물”에 대해서는 엄격하셨다.


 


어릴적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자 부모님은 울보라고 부르며 야단하셨다.


 


지어낸 이야기를 보고 우냐는 것이 요점이었다.


 


이후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 보이는 일을 꺼리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눈물이 많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당연히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발인을 하고 장지로 관을 운구하는 걸 지켜보는데,


 


그녀의 사촌 언니는 토끼 눈을 하고서는 엉엉 우는 것이었다.


 


그녀도 손녀 된 도리로 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눈물이 말라 버렸는지 눈물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슬픈 생각-기르던 고양이가 쥐약을 먹고 죽은 일-이며, 서러웠던 생각-


 


옆집 아줌마가 골목에서 시끄럽게 논다고 혼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짜냈고,


 


가까스로 그녀 손에 쥐어져 있던 휴지를 적실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할머니가 아무 존재도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녀의 기억에 할머니는 얌전히 쪽진 머리로 어두운 방안에 검은 그림자로


 


오롯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방에 앉아 머리카락을 쓸어 담던


 


투박한 금반지가 걸린 손은 남아있다.


 


그날 그녀가 애처로울 만큼 짧은 생애를 통틀어 짜낸 눈물을 먹은 휴지는


 


장례식이 끝나고 상여꾼들이 마시고 남은 소주의 마개로 사용되었다.


 



 


그녀가 20대가 된 어느 날, 친한 친구 세 명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게 된다.


 


영화는 젊은 두 여인과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두 여자는 마지막에 병으로 죽는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서서히 여자 주인공의 병이 깊어지고,


 


그 중 한 명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자 그녀의 친구들은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친구가 그녀에게 휴대용 티슈를 몇 장 뽑아 건냈다.


 



 


그녀는 집안의 독특한 가풍으로 단련되어 눈물은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공공장소에서 천연덕스럽게 훌쩍이는 그녀의 친구들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로봇이 사람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만지며 이것의 정체는 무엇이냐고 묻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그녀가 인조인간이 된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차가운 로봇의 이미지를 연결 짓지는 말기 바란다.


 


그녀도 또래의 여자처럼 눈물을 제외하면 감정이 풍부하다.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 에피소드이다.


 


수업시간이었는데, 창가에 앉은 그녀는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았다.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얕은 언덕을 힘겹게 올라오는 바퀴가 큰 벨트로 감싸진 포크레인을 보게 되고,


 


그 모습이 마치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오리가 연상되어 비실비실 웃기 시작했다.


 


 


 


창 밖을 보고 웃는 것을 본 그녀의 짝은 포크레인을 보자 따라 웃기 시작했고,


 


웃음은 둥실 공기를 타고 급격히 교실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웃음의 습격을 받은 교실은 국어 선생님의 말씀으로 진정 되었다.


 


땅에 뒹구는 낙엽을 보고도 웃는다더니, 니들이 그 짝이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녀에게도 눈물 흘릴 날들이 많아졌다.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해오는 남자들 때문에, 혹은 맵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회사 동료


 


때문에, 그녀는 침대에 엎드려서, 화장실에 앉아 몰래 눈물을 찍어 냈다.


 


신기하게도 한번 물꼬를 튼 눈물은 쉬 멈추지 않았다.


 


그 중 그녀를 가장 당황스럽게 만드는 일은 남편과 함께 드라마를 보며 우는 것이었다.


 


 


 


 


웬만한 최루성 멜로 영화를 봐도 좀처럼 울지 않던 그녀는 세월의 나이테 수만큼 헤펐던


 


웃음이 울음으로 바뀌는지, 여간 참신하지 않으면 웃지 않고, 대신에 슬픈 분위기라도


 


잡을라치면 눈물이 고이는 것이다.


 


혼자 TV를 볼 때는 상관없었지만, 남편이 옆에 앉아 있으면 A는 몰래 눈물을 훔치고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하루는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남편이 불쌍하여 그녀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오늘 본 드라마가 감동적이라 몰래 울었는데,


 


그런 날이면 내가 당신에게 짜증을 내는 것 같아.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일종의 위장인가봐.”


 


그 말을 들은 남편은 3초간 생각하더니 파안대소 하였다.


 


그녀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눈물을 참고, 흘리지 않는 그녀만의 비법을 축적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운다는 건 자신의 연약함과 비굴함을 내보이는 것이기에 참고


 


또 참아 왔다.


 



 


그녀는 부모님이 TV를 보면서 우는 모습을 딱 한번 목격한 적이 있다.


 


TV 프로그램은 일반인의 사연을 받아서 드라마로 재구성하여 찾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형식이었는데, 사연을 올린 남자의 인생 이야기를 보고는 우시는 것이었다.


 


남자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어렸을 적에 집안 사정으로 인해 입양되었으며,


 


입양된 곳도 환경이 넉넉하지 않아 어렵게 자랐고, 중년이 된 지금 부모님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TV를 보며 우는 부모님에게서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자신의 딸을 좀처럼 울지 않는 목석으로 만들어놓고는 두 분 이서 다정하게 눈물을


 


흘리시다니. 도중에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에게 “정말 슬프다”라는 말을 건넸고,


 


그녀의 아버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자기는 평생 TV를 보면서 울지는 못할 거란 생각을 했다.


 


특히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더더욱.....


 



 


남몰래 훔쳐내는 그녀의 눈물은 싱겁다.


 


그녀에게 눈물은 타인의 삶이 주는 여운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서러운 일기의 투영이다.


 


하지만, 산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 시냇물이 강을 이루고 강줄기가 바다를 이루듯이,


 


참아낸 눈물이 바다처럼 깊고 넓어지면 바닷물만큼이나 짠 눈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때는 그녀도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바닷물에서 순수한 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듯,


 


그녀의 희로애락의 감정이 증발된 눈물이야말로 짠맛을 품고 있지 않을까.


 


그때의 소금 맛 눈물은 당당하게 흘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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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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