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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맘
- 작성일
- 2024.3.4
늑대의 시간
- 글쓴이
- 하랄트 얘너 저
위즈덤하우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가 역사학 전공자가 아니라 다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전쟁 후 독일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유대인들의 전쟁 이후 삶, 기타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의 삶의 회복 과정, 경제의 재건 등에 대한 이야기가 기대되었다.
2. 책에 대한 평가
a. 기대한 부분의 충족 여부: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다. 패전 후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폴란드 유대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고향 사람들의 냉대와 폭력, 심지어 학살로 인해 고향을 떠나 자신을 가두었던 적국 독일에 이주해야 했다는 부분이 씁쓸했다. 또 독일의 세속적인 유대인들과 동유럽의 경건한 유대인들 사이의 문화적 갈등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어릴 때 수용소 영화나 유대인 영화를 보면 연합국이 들아와 사람들이 해방시켜주고 끝이 났는데,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이 사람들의 삶이 갑자기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전쟁이 끝나고도 여러 이유로 인해 몇년간 더 수용소에 머물러야 했다는 것, 심지어 일부 이들은 수용소에 너무 오래 있었던 나머지 수용소에서 나가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어려워 수용소에 다시 들어가는 것을 희망가기까지 했다든 부분이 인상깊었다.
경제 재건의 경우 전후 경제와 배급, 암시장과 국가권력의 회복 과정을 사회적 시장경제와 연관지은 것 또한 참신한 관점이라 생각한다. 국가의 배급과 사적인 암시장 사이 균형을 맞춤으로서 경제를 회복시키고 빠르게 재건을 이루어내는 과정을 보며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성립된 배경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한편 전쟁에서 진 후 돌아온 군인들과 아내 사이의 갈등과 같은 것들은 실제로 어디에서나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 매우 가깝게 다가왔던 것 같다. 전쟁으로 인한 여성인권의 신장과 이에 적응하지 못한 남성들 사이의 갈등을 보며 어느 나라나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b. 책 내용에 대한 요약과 이해한 부분
전후 독일인들은 그야말로 '민족 대이동'을 하게 되었다. 전체 인구 7500만명 중 절반이 넘는 4000만명이 고향에서 떠나게 되었고, 이렇게 지나치게 많은 인구의 이동과 교통 수단의 마비로 인해 수용소에서의 인구 해방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체 가옥의 절반 가까이가 파괴되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도 집을 잃게 되었으며, 자연스레 범죄가 증가했다. 연합국의 명령으로 이주민에게 집을 내주어야 했던 토착민들은 이를 매우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며, 상호간의 차이가 대두되고 불신이 싹텄으며 갈등이 촉발되었다.
한편 전쟁이 끝나는 시점은 독일 각지의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다가왔다. 공식적인 항복 선언보다 먼저 연합국에게 점령된 서쪽 도시들은 베를린의 시민들보다 한참 일찍부터 이미 종전을 맞이했고, 베를린에서 가장 늦게, 노르웨이와 북유럽에서는 그 이후에 더더욱 늦게 종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종전을 제로 시간으로 평가한다면, 제로 시간은 사람마다 서로 달랐던 셈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공공질서가 완전히 무너졌고, 중앙권력의 부재는 곧 각자생존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잔해를 건너 약탈을 하거나 살 자리를 마련했고, 건물을 무단 점거하기도 했다. 질서를 회복한 몇몇 도시들에서는 잔해를 치우기 위한 노력을 진행했고 일부 도시는 잔해를 산업 재료로 가공해 팔아 돈을 번다는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잔해를 처리했지만, 다른 곳에서의 잔해 처리는 매우 지지부진했으며 시민들의 참여 방식 또한 나치 시기의 국민 동원에서 달라진 바가 없었다.
그러나 폐허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기도 했다. 수많은 예술가들은 곧 폐허가 자신들이 갈망하는 이상을 건설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폐허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며, 곧 나아질 미래에 대한 낙관을 분출했다. 신문이 재간되었으며, 예술 활동이 재개되었다. 폐허 속에서도 예술과 언론은 꽃피웠다.
한편, 폐허 속에서도 또 한가지 꽃피웠던 것이 있다면 바로 댄스이다. 이 댄스열풍은 도시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았고, 삶의 기쁨과 열망을 분출하도록 했다. 폐허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었지만, 또한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게 되었고 삶이 새로 시작한다는 감정은 곧 새로운 삶에 대한 놀랍도록 뜨거운 열망이 되었다. 사람들은 도시를 재건하고, 집을 재건하고, 나라를 재건해 자신들의 쓸모를 찾거나 증명하고자 했으며 모든 곳에서 흘러넘치는 자유를 만끽했다. 영화관은 매진되었고 의상도 불티나게 팔렸다. 모델들은 폐허가 되어 덜렁거리는 건물 속에서 화보를 찍어야 했지만, 그것마저도 곧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독일이 전후에 가장 크게 직면한 문제 중 하나는 다름아닌 여성들에 관한 것이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전시 동안 남편을 대신해 집을 보고 일을 했는데, 이는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여성의 권리와 활동권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집으로 오랜만에, 그것도 전쟁에서 진 채로 터덜터덜 돌아와 '옛 권리'를 요구하는 남성들은 여성들에게는 있어서 꼴볼견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여성들은 본인들도 남성 못지않게 히틀러를 지지하고 전쟁을 부르짖었음에도 소위 '여성성'이라는 것을 앞에서 여성은 평화롭고 비폭력적인 족속이며 전쟁은 남성이 일으킨 것이라고 약속이라도 한듯 자신을 세뇌했다. 자신들을 전쟁의 피해자라고 대상화한 것이다.
한편 동쪽에서 거대한 강간의 물결에 휩싸인 여성들에게는 조금 다른 삶이 펼쳐졌다. 매우 놀랍게도, 이 여성들의 삶이나 감정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것과는 꽤 달랐다. 그 여성들은 물론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포식자 남성을 찾아 유혹해 상대적으로 덜 피해를 보고자 했으며, 남성들 역시 여성에게 무조건 달려드는 인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기간 동안 성폭행 군인과 피해자 여성 사이에 기묘한 라포가 형성되기도 했으며, 이 기억은 차후 여성들이 한동안 그 기억을 비교적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국가적 기억 억압과 페미니스트들의 '피해자다움'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며 이 기류는 즉각 탄압받았지만.
한편, 경제 부분에서 암시장은 시장경제을 위한 수업이기도 했고, 사회를 배워나가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배급과 암시장 사이의 기묘한 공존은 '국가의 통제'와 '방임적인 시장경제'를 모두 경험하게 함으로서 재건 후 자연스럽게 사람들로 하여금 '그 중간'을 찾게 만들었다. 사회적 시장경제가 독일에 폭넓게 받아들여진 것은 이러한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1947년 화폐개혁을 통해 두번째 제로시간이 시작되었다. 화폐개혁이 성공하면서 경제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재건되었고, 사람들은 암시장 대신 공식적인 경로를 선호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독일을 다시 서방 연합국의 일원으로 만들었고, 냉전 상황에서 나치에 대한 기억이 억압되도록 만드는데 일조했다.
독일인들에게 있어서 전쟁과 나치의 기억은 '반성'의 대상은 아니었다. 불과 전쟁이 끝난 후 몇년 뒤 '왜 사람들은 독일인들을 그리 싫어할까?'라는 한탄을 담은 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벌써부터 전쟁은 나치가 일으킨 것이며 우리는 억압당했을 뿐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앞서 말한 여성들의 사례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이런 기류가 포착되었고 곧 해외에서 복귀한 망명자들에 대한 증오로 이어지게 되었다. 홀로코스트는 외면받았고, 종교인들조차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지 않았고, 전쟁 이후에도 폐허 동안 유대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독일인들에게 보복 학살 당했다. 무엇보다 전쟁 직전 나치가 발악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군대에 징집하거나 반발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자행한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치 정권과 자신을 분리함으로서 자신들을 피해자로 여기게 하는 인식을 만들었다.
한편 나치 청산은 결과적으로 당시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서독이라는 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치 당원이었던 이들은 매우 많았고 설령 중요 간부였을지라도 이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독일인들에게 예상외로 상당한 반감을 샀다. 독일인들은 그들과 자신들의 입장을 동일시했으며, 철처한 나치 청산과 재교육을 요구하는 연합국의 태도를 '그들의 정의'로 보았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나치 부역자들이 풀려나거나 가벼운 형벌을 받았고, 이는 나치 부역자나 나치에 부역하지 않은 이들이나 반공,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대의 앞에 충성하게 만듦으로서 서독 국가 형성에 일조하게 되었다.
c. 이 책이 가지는 장점
예술부터 시작해 일상사, 미시사의 다양한 부분을 폭넓게 다루었고, 많은 참고문헌과 인용을 통해 풍부한 자료인용이 이루어진다. 평소에 궁금하거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이 책을 통해 대부분 알 수 있다.
d. 이 책이 가지는 단점
e. 추천하고 싶은 독자층
전후 독일의 재건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2차 대전에 평소 관심이 있는데 에필로그 이야기도 알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3. 별점 및 한줄 평
4.5/5.0. 전후 독일인들의 '일상'과 '회복'을 담아낸 훌륭한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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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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