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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
- 작성일
- 2021.4.27
실카의 여행
- 글쓴이
- 헤더 모리스 저
북로드
1945년 1월, 18살의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유대인 소녀 실카는 3년째 갇혀 있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마침내 풀려난다. 하지만 그녀가 전쟁 포로로서 상습적으로 강간당한 것을 “적군에게 몸을 팔아 살아남은 것”이라고 여긴 소련군 내무인민위원회는 실카에게 매춘, 스파이, 나치와의 결탁 혐의를 씌우며 노역 15년형을 선고한다. 그녀가 끌려간 곳은 시베리아의 북극권 내 보르쿠타에 자리한 강제노동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악몽이 여전히 생생한 가운데 실카는 ‘하얀 지옥’으로 불리는 보르쿠타에서의 끔찍한 15년의 첫날을 맞이하게 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세실리아 ‘실카’ 클라인은 헤더 모리스의 전작인 ‘아우슈비츠의 문신가’에도 등장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를 직접 읽진 못했지만 이 작품에도 실카가 아우슈비츠에 갇혀있던 시기의 이야기가 플래시백처럼 소개되곤 해서 당시 실카의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16살에 아우슈비츠로 끌려와 폭력과 강간에 시달리며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긴 실카가 자유의 순간을 얻자마자 억울한 누명과 함께 또 다른 지옥으로 끌려가게 되는 장면은 초반부터 독자의 속을 울렁거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베리아 북극권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또 다시 아우슈비츠의 악몽을 원점부터 겪게 된 실카를 지켜보고 있으면 “죽음이 곧 희망”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실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숨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려고 애써도 결국 어떻게든 도드라지고 마는, 그래서 적에게든 동료에게든 금세 눈에 띄고 마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합니다. 그 결과 아우슈비츠에서는 나치의 노예가 되어 동족을 다그치고 그들의 죽음을 코앞에서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됐고, 또 그로 인해 ‘나치 부역자’로 낙인 찍혀 보르쿠타의 강제수용소에서의 15년의 지옥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미 한 번 지옥을 경험한 실카에게 보르쿠타에서의 ‘폭력과 강간과 추위와 배고픔’은 더 이상 큰 자극을 주지 못합니다. 같은 막사의 수용자 중 누군가는 그런 실카에게 몸과 마음을 의지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똑같은 이유로 실카에게 의심과 공격을 퍼붓습니다. 실카의 유일한 두려움이라면 아우슈비츠에서의 자신의 행적이 알려지는 것인데, 그건 동시에 실카 스스로 절대 잊지 못할 혐오스런 화인(火印)이자 평생 안고 가야 할 죄책감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타고난 재능과 성실함 덕분에 험한 강제노역 대신 의료병동 간호사로 발탁되면서 실카는 다른 수용자들에 비해 덜 고통스러운 수용소 생활을 보장받습니다. 하지만 마치 거대한 인력(引力)이라도 지닌 듯 실카는 타인의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탄생과 파괴를 끊임없이 자기 주위로 끌어당겼고, 그것은 때론 찰나의 안도감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녀 자신을 무기력과 자책과 암담함으로 이끌 뿐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강제수용소로 이어지는 그녀의 비극적인 삶을 ‘여행’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으로 그린 점이 다소 의아하긴 했지만, 다 읽은 뒤에는 실은 이 작품이 실카가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경험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래서 미래를 꿈꾸고 사랑할 수 있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단죄하고 용서하고 치유하기 위해 발버둥친 그녀만의 지난한 ‘여정’을 그렸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출판사가 소개글을 통해 ‘실카의 여행’을 읽는 5가지 키워드로 ‘여행’, ‘죽음’, ‘모성애’, ‘사랑’, ‘희망’을 언급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이 강제수용소의 실상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였다면 오히려 감흥도 여운도 강렬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면에서 충실한 자료조사에 기반한 팩트와 적절한 수준의 허구를 잘 배합한 작가의 노력에 새삼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 독자에게 ‘실카의 여행’이 남다르게 읽히는 이유는 일제강점기라는 고통과 분노의 역사 때문일 것입니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성 노예로 고통 받은 할머니들과 강제징용의 참극이 벌어진 군함도가 자주 떠올랐는데, 이미 오랜 시간이 흘러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에게도 여전히 ‘헤더 모리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낀 건 아마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 같습니다. 잊히거나 아예 흔적조차 사라진 한국의 ‘실카’를 찾아내 그 혹은 그녀의 여정을 알리는 것은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멈춰선 안 될 후대의 소중한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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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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