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외국
하나비
- 작성일
- 2024.2.26
도플갱어 살인사건
- 글쓴이
- 애슐리 칼라지언 블런트 저
북플라자
10대 때 메신저로 알게 된 남자에게 지독한 스토킹을 당했던 탓에 26살이 된 지금도 스마트폰 없이 살고 있는 레이건 카슨은 어렵게 꾸려가고 있는 꽃집에서 은둔자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두 동강이 난 여자의 시신을 발견한 그날 아침 이후로 레이건의 삶은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레이건을 더욱 충격에 빠뜨린 건 살해당한 여자가 자신과 쌍둥이마냥 닮았다는 점.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비밀스런 사연 때문에 시신을 발견하고도 경찰에 알리지 못한 레이건은 5년 전부터 종적을 감춘 스토커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하며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실제로 그날부터 스토커가 과거에 했던 짓과 똑같은 흔적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자신을 꼭 닮은 두 번째 시신까지 나타나자 레이건은 패닉에 빠지고 맙니다.
‘도플갱어 살인사건’은 2017년의 호주 시드니를 무대로 SNS, 다크웹, 스토킹, 여성혐오, 연쇄 토막살인 등 다양한 소재를 흥미롭게 버무린 살인미스터리이자 심리스릴러입니다. 심리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 상 중간에 살짝 동어반복의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사건 자체도 특이한데다 누가 범인인지, 목적이나 동기가 무엇인지 좀처럼 가늠하기 쉽지 않아 심리스릴러에 거부감이 있는 독자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10대 시절 불장난처럼 시작한 메신저 때문에 스토킹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던 레이건은 지금도 늘 주변을 경계하며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인물입니다. 한국계 호주인이자 범죄전문기자인 민 외에는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그런 레이건이 한꺼번에 두 개의 사건 ? 하나는 과거 스토커가 했던 짓과 똑같은 일들이 5년 만에 다시 반복되기 시작한 일이고, 또 하나는 자신과 꼭 닮은, 그것도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을 하필이면 자신이 발견한 일 - 에 휘말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경찰에 알리는 것이 상식이지만 레이건은 과거의 악몽 때문에 경찰과 엮이기를 결단코 거부합니다. 하지만 동일범에게 살해당한 자신과 꼭 닮은 시신들이 연이어 발견되고 정체불명의 인물로부터 협박에 가까운 이메일까지 받게 되자 레이건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고 맙니다.
레이건의 입장에서는 등장인물 중 누가 범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수상해 보입니다. 스토커와 살인범이 동일인 같기도 하고, 두 명의 범인이 함께 모의하여 레이건을 공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연관 없는 두 명의 범인이 우연히도 동시에 레이건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경찰에게마저 선을 그어버린 탓에 레이건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맥없이 공포를 견디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 대목이 심리스릴러의 몫인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긴 해도 레이건의 공포가 워낙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무척 흥미진진하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습니다.
경찰도 등장하고 범죄전문기자인 민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하긴 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단서를 붙잡는 건 레이건 본인입니다. 문제는 그 단서 자체가 스토킹이나 살인사건의 진실로 바로 이끌어주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 장면 뒤로 100여 페이지의 긴 분량이 남아있다는 점, 그래서 레이건의 혼란과 공포가 더욱 극심해진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엽기적인 방식으로 여성을 살해하며 레이건을 위협하는 범인이 70년 전에 벌어진(하지만 지금도 미제상태로 남아있는) ‘블랙 달리아 사건’을 모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947년 미국 L.A에서 벌어진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사건은 영화와 소설로 제작될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는데, 범인은 허리를 경계로 피해자를 두 동강 낸 것은 물론 가슴까지 끔찍하게 훼손했으면서도 현장에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아 경찰의 수사를 막다른 벽에 부딪히게 만들었습니다. 레이건은 현재 호주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물론 70년 전 ‘블랙 달리아 사건’의 피해자마저 자신과 꼭 닮았다는 사실에 더욱 극렬한 공포를 느끼는데, 그 때문에 독자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미스터리에 대한 궁금증을 놓을 수 없게 됩니다.
처음 만나 작가인데다 살짝 고전의 냄새도 풍겼고 심리스릴러에 대한 선입관까지 가세한 탓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품인데 의외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미스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고 일부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여러 개의 사건이 긴장감을 적절하게 유지시켰고 소소한 반전들도 매력적으로 읽힌 작품입니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다른 미스터리나 스릴러 작품은 없는 듯 한데 나중에라도 신작 소식이 들리면 꼭 찾아보려고 합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