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v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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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글쓴이
윌리엄 셰익스피어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8.7 (6)
hanvitz

고전을 보는 것은 그 시대의 감성을 요한다. 작가의 정신에 울타리를 지운 시대 정신과 이전의 사회 문화의 관습들과 한계들 위에 서서 봐야 그 고전의 가치가 제대로 보인다. 

그러나 이게 미션 임파서블이고 보면 고전은 종종 실망을 안기곤 한다. 맥베스도 마찬가지다. 캐릭터는 요즘 유행하는 트라우마를 가진 상처받은 영혼들 캐릭터에 비하면 밋밋하고, 플롯은 단조롭다. 그럼에도 맥베스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를 곱씹어보면 솥 바닥에 가라앉은 왕건이 처럼 건져지는 것이 있다. 


맥베스의 가장 중요한 열쇠말은 equivocation이 아닐까 싶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모호한 말', '이중의 의미' 정도 된다고 한다. 

맥베스가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역모를 하고, 왕이 되고, 그의 영혼이 핍폐해지고, 결국 반역자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매 사건의 단면들은 그 자체로 복이거나 불운의 징조를 겸하여 갖고 있다. 우리 식으로 얘기한다면 '세옹지마'가 아닐까. 이렇게 매 순간의 상황들이 진전되면서도 이에 대한 가치의 판단은 결국 끝까지 뒤로 미루게 되고, 그리고 극이 끝난 이후에도 관객들은 맥베스의 선악에 대한 이렇다할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런 의미의 보류는 라캉이 말한 '흐르는 시니피앙'과 같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들은 항상 그 뒤의 사건들로 재해석되고 판단되면서 그 사건 자체의 의미는 겹겹이 분화한다. 


이런 의미의 층위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물론 캐릭터다. 밋밋하다고 한 것은 이들이 감정의 전형에 머물렀다고 보였기 때문인데, 그러나 매 순간 그런 전형을 보이면서도 극의 전개에서 변화를 보이면서 의미를 생성한다는 것은 캐릭터 작화에서 참고할 방법이 아닌가 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요즘의 극에서 보이는 과도한 자의식, 세상을 다 책임질 것 같은 트라우마로 인해 정작 인물들의 행동은 더 소심한 햄릿에 머물고 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매 순간 명백한 표상들을 이어가면서도 맥베스의 인물들이 보이는 변화의 괘적은 여름이 겨울로 바뀌는 폭 정도다. 


플롯 면에서도 짚어 볼 것들이 있다. 전체 순환구조도 그 단순 명쾌한 구조에 일여를 했지만 반복되는 서사에서도 교묘한 배려들이 눈에 띈다. 가령 뱅쿠오의 죽음의 경우 던컨 왕의 시해와 반복되는 듯 하지만, 집권 후의 맥베스의 타락을 보여주는 유일한 장면으로 기능한다. 물론 뱅쿠오의 후예인 제임스 1세를 위한 궁정극이라 뱅쿠오의 비장한 죽음을 (무대 밖 처리한 던컨과는 다른 비중으로) 묘사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관객을 범죄 행위의 증인으로 초대하고 공분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적절한 힘의 안배다. 


요즘의 감성과 정치색으로 읽으면 시대 착오가 보이는 면도 적지 않지만 캐릭터나 플롯의 단순함이 밋밋한 것이 아니라 우아함으로 승화되는 것은 생명력 있는 고전이 갖춰야 할 미덕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제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글로 보지 못해서 뒤늦게 순례에 들어간다.  왕비가 죽었을 때 맥베스의 대사가 너무 좋다. 

 

 

"왕비도 언젠가는 죽어야겠지.

그런 소식을 언젠가 한 번은 들어야겠지.

내일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하루하루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순간까지 더딘 걸음으로 기어가는 거지.

우리의 어제는 우리 모두가 죽어 먼지로 돌아감을 

바보들에게 보여 주지.

꺼져라, 꺼져, 단명하는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고 종종거리고 돌아다니지만

얼마 안 가 잊히고 마는 처량한 배우일 뿐. 

떠들썩하고 분노 또한 대단하지만,

바보 천치들이 지껄이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 

 

- 맥베스 5막 5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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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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