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해나
- 작성일
- 2019.11.25
나무
- 글쓴이
-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학창 시절부터 정말 좋아했던 작가이다. 베르베르의 작품은 상상력의 집합소 같은 느낌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특정한 주제에 한정되어 있지 않아서 미래, 과거, 종교, 인간 심리 등 여러 가지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 작가의 통찰력이 담긴 메시지를 담는다. 『나무』는 18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책이다.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간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나름대로의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유머가 담긴 친근한 문체로 짧은 이야기를 듣듯 편안하게 단편 소설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내고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 목차-
내겐 너무 좋은 세상
바캉스
투명 피부
냄새
황혼의 반란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조종(操縱)
가능성의 나무
수의 신비
완전한 은둔자
취급 주의: 부서지기 쉬움
달착지근한 전체주의
허깨비의 세계
사람을 찾습니다
암흑
그 주인에 그 사자
말 없는 친구
어린 신들의 학교
뤽은 그렇게 사람처럼 상냥하게 구는 물건들을 참고 받아들이는 데에 갈수록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물건들이 부담스럽고 짜증스러웠다.
나무 p.14 - 내겐 너무 좋은 세상, 열린책들
첫 번째 단편 『내겐 너무 좋은 세상』에서는 유리컵 하나하나를 비롯한 모든 물건들에 인공 지능이 탑재되어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분명히 우리 사회에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책이 출판됐던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더 많은 인공 지능 제품들이 출시되었고, 해당 제품들은 기능적 편리함뿐 아니라 현대인들의 정서적 불안감도 채워줄 수 있을 것처럼 광고되고 있다.
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사소한 행동까지 데이터화돼서 사물들이 스스로 해주는 세상이 온다면, 뤽처럼 이 물건들을 갑갑해할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소설처럼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주체적인 판단이 필요 없어지는 세상이 온다면 사람이 기계를 만들고 사용하는 것이 아닌, 기계가 사람의 삶을 설계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베르베르는 마지막에 또 하나의 충격적인 결말을 제시하며 소설을 마무리한다.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이여, 그대들에게 진정 영혼이 있는가?" 모든 사물이 인공화되었다면, 인간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당시에는 아무도 『하얀 가운을 입은 바보들의 결탁』을 읽지 않았어요. 인간 복제에 관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그것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책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지요. 어찌 보면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관심이 딴 데로 유도되었던 게 아닐까요?
나무 218p - 달착지근한 전체주의, 열린책들
『달착지근한 전체주의』는 조지 오웰의 『1984』를 언급하며 소설이 시작된다. 『1984』의 가상 국가처럼 개개인을 일일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숨 막히는 사회가 아닌, 미디어로 국민들을 교묘하게 눈속임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가장한 '달착지근'한 전체주의 국가가 소설의 배경이다. 하나의 짧은 단편 소설 속에서 작가가 비판하는 여러 가지 요소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 국가와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자유로운 세상인 것 같지만 정부는 언론을 이용해 대중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이끈다.
둘째, 대를 이어서 유명 작가를 배출하는 집안이 있고 모든 방송에서 그의 책을 홍보해주는 등 각 분야마다 기득권 층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셋째, 세상을 비판하는 책은 어렵게 출판되어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넷째, 100년 후 인간 복제 실험을 비판하는 책이 세상에 알려지고 빛을 보았지만 그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은 100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명한 작가 집안의 자손이다.
즉 사람들은 10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좀 더 나은 세상이라고 믿고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사회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대중들이 100년 전 정부의 복제 실험의 위험성에 관심을 가지는 동안 지금의 정부는 또 무슨 일을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하는 일은 참 재밌어. 하지만 너 혹시 이런 생각해 본 적 없니? 어딘가에서 우리보다 높은 차원의 신들이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게 아닐까? 마치 우리가 인간을 가지고 장난을 치듯이 말이야.
나무 309p - 어린 신들의 학교, 열린책들
『어린 신들의 학교』는 예비 신들을 교육하는 학교가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나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소설의 내용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작가의 상상력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민족들, 그에 반해 더 크게 성장해가는 국가들은 신들의 실수일 수도 성공적인 학습의 결과일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종교라는 심오한 학문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풍자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개 글에서 『어린 신들의 학교』는 『천사들의 제국』의 후속 작품의 실마리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음 소설인 『신』은 해당 단편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베르베르의 영적 세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각과 탄탄한 세계관을 느끼고 싶다면 『타나토노트』 - 『천사들의 제국』 - 『신』 순서로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한다고 손에 꼽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은 대부분 장편 소설이지만, 이 작가의 단편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7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해 왔다는 작가에게는 아주 거대한 이야기 창고가 있는 듯하다. 10년 전 읽었던 『나무』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흥미를 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이었고, 10년이 지나 성인이 되어 다시 읽은 『나무』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베르베르가 18편의 단편소설들을 통해 풍자했던 사회의 문제점 중 제대로 개선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여전히 환경적인 문제를 안고 있고, 기계가 사람을 대체할 미래에 완벽하게 대비하지 못했으며, 종교적 이념이 다른 민족들은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다만 이런 문제들을 모른척하지 않고 관심을 가진다면 원하는 정보를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대중의 눈을 현혹시키는 자극적인 매체는 점점 더 늘고 있지만 원하기만 한다면 개인이 좀 더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관련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류'와 '사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좀 더 나은 결과를 위한 다양한 과정들에 대해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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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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