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림 단상

사랑지기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8.12.21
스페인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레메디오스 바로(Remedios Varo, 1908~1963)는 어린 시절을 수녀원에서 보냈습니다. 엄격한 규율과 기독교적 윤리에 의해 억압된 성장기를 보냈요. 게다가 제1차 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지켜보면서 인간이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올린 문명과 삶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절망하게 됩니다.
바로는 현실을 왜곡된 상태라 생각했고, 논리와 합리, 이성 등 인위적인 요소들이 진실을 구속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성의 굴레를 초월해 무의식과 꿈의 세계에서리얼리티를 찾고자 한 것이죠. 바로는 정신분석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1920, 30년대 유행한 다다이즘은 전위적인 작가들이 개인의 본능과 자발성, 합리성을 추구하기 위해 기존의 문명과 예술에 반발한 문화 운동이었지요. '다다'는 '어린이가 갖고 노는 말 머리가 달린 장난감'을 뜻합니다. 즉 어린이의 순수성을 닮고 싶은 욕망을 말해요. 바로 역시 다다이즘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바로는 1936년 바르셀로나에서 국제여단에 참여했던 프랑스 시인 뱅자맹 페레를 만나 이듬해 같이 파리로 건너갑니다. 1940년 6월 독일이 파리를 점령하자 바로는 급히 남부 마르세이유로 도피하지요. 미국으로 건너가려했지만 페레의 사상 때문에 미국이 거부합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소련연방 외 유일하게 도와줬던 나라가 멕시코입니다. 총기 2만 정을 배에 실어 혁명군에게 보내 주기도 했지요. 그런 멕시코가 스페인 난민들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면서, 바로는 페레와 함께 1941년 멕시코로 건너갑니다.
멕시코시티에서 말도 통하고 친근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맘에 들어 바로는 안정감을 느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1947년 페레와 헤어진 후 잠시 파리로 되돌아갑니다. 스페인은 프랑코 총독이 정권을 잡아 공포 정치가 횡행하고 있었지요. 전쟁의 참상과 공포 정치 탓에 어디 의지할 데가 없었던 바로는 1949년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 광고 회사 일을 합니다.
바로는 1952년 오스트리아 출신 정치 망명자 발터 그루엔과 재혼합니다. 이때 광고 회사를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작품에 매달리지요. 1963년 10월 8일 바로는 스페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염원을 뒤로 한 채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Vegetarian Vampires (채식주의자 흡혈귀들), 1962, 캔버스에 유채, 83.8*58.5cm 개인 소장
Naturaleza muerta resucitando (공전하는 정물), 1963, 캔버스에 유채, 112*79cm 베아트리스 바로 데 카노, 발렌시아 (바로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
불화 1955, 메소나이트에 유채, 91.5*56cm 개인 소장
Celestial Pablum (천체의 양식) 1958, 메소나이트에 유채, 92*62cm 개인 소장
- 좋아요
- 6
- 댓글
- 1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