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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스통 바슐라르 (Gaston Bachelard, 1884~1962)

《공간의 시학》(La Poetique de l'espace, 1957)


 



 


 


1.


가스통 바슐라르는 과학철학자로서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의 한 사람인 동시에, 이른바 프랑스 신비평의 한 유파인 테마 비평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 준 문학연구가이다. 전설과도 같은 그의 입지전적인 삶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는 바르 쉬르 오브라는 시골 마을에서 구두 수선공의 집안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파리에서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면서 공부를 계속하여 소르본 대학 교수까지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박사학위를 끝내고 디죵 대학에서 처음으로 대학 강단에 선 것은 43살 때의 일이었다. 그는 죽기 전까지 프랑스의 정신 및 정치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의 피선, 두 번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서훈, 국립문학대상 수상 등의 영광을 안았다.


 


여기에 소개하는《공간의 시학》은 문학에 관한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이른바 (시적) 이미지의 현상학이라는 비평방법론을 보여준 책이다.


 


2.


바슐라르의 문학도 신비평 일반이 그러하듯, 전세기 말의 실증주의에서 이론적 근거를 얻은 전기적 비평에 대해 반대 명제적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전기적 비평에 대한 반대명제로서의 바슐라르의 문학연구를 특징짓는다면, 그것은 전자가 작품을 작가의 전기적인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결정론적인 입장인데 반해, 후자는 작품을 창조한 작가의 상상력의 독자성을 강조함으로써 작품의 본질을 작가의 전기적인 상황에 초월적인 것으로 여기는 비결정론적인 입장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 바슐라르는 함께 신비평에 속하기는 해도 역시 결정론적인 입장인 정신분석적 비평과 마르크시스트 비평에 대해서도 대립적이다. 어쨌든《공간의 시학》에서는 전기적 비평과 정신분석적 비평에 대한 비판이 약간의 아이러니와 더불어 끊임없이 나타난다.


 


문학의 결정론을 비판함에 있어서 그 두 비평이 대상이 된 것은, 그 둘과 바슐라르의 문학이론에 있어서 똑같이 심리적인 것이 문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독자성, 창조에 있어서의 그것의 비결정성, 한마디로 그것의 절대적 창조성 - 이것은 달리 말하면 그것의 소산인 이미지의 독자성, 절대적 창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바슐라르의 문학에 관한 전 저작들을 통해 한결 같이 표명되지만, 가장 조직적이고 강력하게 표명된 것이 이 공간의 시학이다.


 


그리고 이 주장을 함에 있어서 이 책에서 선택된 논증은 다름 아닌 시적 교감의 현상을 통한 것이다. 바슐라르는 시적 교감의 문제를 가장 정직하게 다루려고 한 문학연구가이다. 기실 이 문제가 전기적 비평과 정신분석적 비평에 비판이 가해지는 계기를 이룬다.


 


그 두 비평에서 이미지를, 의식적인 것이든 무의식적인 것이든 작가의 생애의 한 요소에 비추어 설명하려고 하지만, 실제 우리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하나의 작품, 하나의 이미지에서 감동을 느낀 독서 체험을 돌이켜 보면, 그 감동은 작가의 생애에 대한 지식을 모르고서도 이루어진 것이었다. 바슐라르 자신의 말을 인용하면, ‘시인이 제공하는 말의 행복, 시인의 생애의 드라마마저 뛰어넘는 그 말의 행복을 체험하기 위해 시인의 괴로움들을 살아보아야 할 필요는 조금도 없는 것이다’(《공간의 시학》. 앞으로 특별한 지적이 없는 한 인용된 바슐라르의 말은《공간의 시학》에서 나온 것임).


 


그리고 이와 같이 이미지의 교감이 결정론적인 설명에서 벗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그 이미지를 창조한 작가의 상상력 및 그 이미지를 떠올림으로서 감동의 심리적 체험을 얻게 하는 독자의 상상력의 비결정적 성격에 대한 증거가 된다.


 


바슐라르의 독창적인 점은, 그 이전까지 사람들이 상상력을, 단순히 외계의 대상들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정신기능으로 생각했던 데 반해, 그는 상상력이 외계와는 관계 없이 독자적인 법칙에 의한 작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데 있다. 극단적으로 그는 ‘이미지 없는 상상력’《공기와 꿈》)의 존재를 가정까지 함으로써 상상력은 ‘하나의 관념철학의 근본적인 원리’(《공기와 꿈》)로 정립되게 되며, 바슐라르의 문학사상을 상상력 이론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바슐라르의 이와 같은 관념론적 상상력 이론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상상력의 독자적인 작용이 외계의 대상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달리 말하면 상상력의 독자적인 작용이 어떻게 외계의 대상을 변형시키는가를 밝히는 4원소론, 둘째, 상상력의 그 독자적인 작용 자체를 밝히는 이미지의 현상학, 셋째, 상상력의 궁극성을 밝히는 원형론이 그 셋이다.


 


하지만 이 세 부분은 따로 독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서의 상상현상의 세 측면을 각각 조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상상현상의 그 세 측면을 한데 묶어 쉽게 말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상상력은 외계의 대상의 이미지를 받아들여, 스스로 이상적인 것으로 삼고 있는 상태로 변화시켜 가는데, 그 작용이 우리의 실용적인 목적이나 생리적인 욕망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이기에 독자적인 것이다.


 


《공간의 시학》은 저자 스스로 이미지의 현상학을 행한다고 한 저서인데, 위에서 말한 대로 상상현상의 세 측면을 동시에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에서 문제되어 있는 상상력의 궁극성은 요나 콤플렉스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어머니의 태반 속에 있을 때에 우리의 무의식 속에 형성된 원형적 이미지로서, 우리가 어떤 공간에 감싸이듯이 들어 있을 때에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은 이 요나 콤플렉스 때문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집, 서랍, 상자, 장롱, 새집, 조개껍질, 구석 등 내밀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상상력이 이런 이미지들을 모두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하는 내밀한 공간의 범주로 파악하는 것이 그것의 독자적인 작용인 것이다.


 


그런데 시적 교감의 현상은 상상력의 보편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즉, 외계 대상의 이미지를 받아들여 스스로 이상적인 것으로 삼고 있는 상태로 변화시켜 가는 상상력의 작용이, 시인과 독자 양쪽에서 같기 때문에 시적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시적 교감으로써 주장된 상상력의 독자성은 상상력이 시인 개인의 특이한 경험적인 삶-의식과 무의식을 포괄하여-에 대해 독자적이라는 뜻이므로, 그 사실을 일반화하면, 우리 각자의 경험적인 삶의 집적체로서의 개아성(個我性)에 대립적인 보편적인 상상력의 존재가 상정된다고 하겠다.


 


다만 그 보편적인 상상력이 개아적인 우리 각자의 내부에서 더욱 깊고 본원적인 자아를 이루고 있다고 여겨질 따름이다. 원형이란 위와 같은 상상력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상상력의 보편적인 궁극성을 표현하는 이미지이다. 즉 그것은 우리 모두가 상상력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그리는 것을 나타낸다. 이로써 상상력의 작용이 가치창조적인 것으로 규정될 수 있고, 따라서 우리가 한 이미지를 아름답다고 하는 까닭이 이해된다.


 


시적 교감은 이와 같이 보편적이고 독자적인 상상력의 창조적인 작용을 함축하고 있는데, 그 작용은 이미지가 상상력 가운데 떠오르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시적 교감, 즉 시적 이미지가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의 감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이미지를 나타나게 한 원인, 즉 그것의 과거를 조사할 게 아니라, 상상력 가운데서 그것이 목하 창조적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 그 자체를 묘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바슐라르의 이미지의 현상학이다.


 


그가 이미지를 '그 현행성’에서 파악해야 한다거나, 이미지는 상상력의 '직접적인 산물'이며 '미래로 열려' 있고 '생성'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그와 같은 현상학적 태도를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쉽게 설명하자면 독자의 의식의 체험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시적 교감의 주관적인 느낌을, 우리 자신이 시적 이미지에서 아름다움의 감동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낀 것을 잘 묘사하는 것을 뜻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독자의 의식의 체험은, 누구나 스스로의 체험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깊은 심리적인 효과와 영혼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바슐라르는 (혼의) ‘울림’이라고 하는데, 다음의 말은 그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반향(反響)은 세계 안에서의 우리 삶의 여러 상이한 측면으로 흩어지는 반면, 울림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존재의 심화에 이르게 한다". 울림을 한결 평범한 표현으로 바꾼다면 의식의 각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우리의 의식이 잠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흔히 하는 말로 사람이 달라진다.


 


즉 울림-한 편의 시에서 얻는 감동이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슐라르가 ‘존재의 전환’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슐라르의 이미지의 현상학은 하나의 인간존재론을 함축하는 것이기도 하다-"(이미지는) 표현의 생성인 동시에 우리 존재의 생성이기도 하다. 이 경우 표현이 바로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존재론의 차원을 정의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반적인 주장으로서, 인간에게 있어서 특별히 인간적인 일체의 것은 '로고스'(말)라고 생각한다".


 


3.


《공간의 시학》의 독창적이고도 또 그 자체가 감동적인 점은, 이와 같이 우리 독서 체험의 인간존재론적인 의미를 드러낸 데 있다. 저자가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역설 같지만 미적 체험, 문학과 예술이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본질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삶에 바로 닿아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바슐라르의 문학에 관한 저작은《공간의 시학》을 포함하여 10여 권에 이르지만, 오히려 과학철학자로서의 활동이 더 주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토마스 쿤에 앞서 그와 비슷한 과학철학을 수립했던 사람이고, 오늘날 프랑스의 대가급 인식론자들은 대부분 그의 영향 밑에서 연구를 쌓은 사람들이다.


 


* 그밖의 주요 저서 및 논문

〈불의 정신분석〉 La Psychanalyse du feu, 1938


공기와 꿈〉 L'Air et les songes, 1943


대지와 의지의 몽상〉 La Terre et les reveries de la volonte, 1948


몽상의 시학〉 La Poetique de la reverie, 1960


 








공간의 시학


가스통 바슐라르 저
동문선 | 200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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