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 자료

사랑지기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8.2.15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는 간음(Adultery)을 뜻하는 A라는 낙인이 찍힌 헤스터를 통해 미국의 도덕적 완벽주의를 비판한 소설로 유명하다. 소설에서 죄를 범한 불완전한 인간으로 등장하는 헤스터 및 딤즈데일과, 무쇠같이 엄격한 인간으로 등장하는 벨링햄 총독을 비롯한 보스턴 시민을 대비시키면서, 작가 너새니얼 호손은 지상에 완전한 '하느님의 집'을 건설하려는 종교적 이상주의자들이었던 청교도들이 사실은 상당히 비인간적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어 19세기 미국의 도덕적 완벽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일곱 박공의 집』을 읽는 또다른 방식
너새니얼 호손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주홍글씨』고 『주홍글씨』 하면 너새니얼 호손이 떠오르듯이 이 소설은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100선에도 들어가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1850년에 쓰인 이 소설 다음으로 너새니얼 호손의 또 다른 장편소설로서 1851년에 나온 『일곱 박공의 집』이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의 어느 마을, 몰락한 핀천 가의 노처녀 헵지바는 오래전 선조가 부정하게 땅을 빼앗아 지은 저택에 은둔하다 생계를 위해 그곳에 잡화점을 연다. 때마침 친척 조카 피비가 그녀를 방문하고 숙부 살해 혐의로 오랜 옥살이를 끝낸 헵지바의 오빠 클리퍼드도 집으로 돌아온다.
명랑하고 재주 많은 피비는 사람 상대에 서툰 헵지바를 도와 잡화점을 꾸리고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클리퍼드를 위로하며 저택에 든 회의적인 청년 홀그레이브를 사랑으로 이끈다. 한편 헵지바의 사촌인 저명한 판사 재프리는 클리퍼드가 돌아온 것을 알고는 친절을 가장해 그들에게 접근한다. 그가 헵지바 남매를 협박해 잃어버린 땅문서를 찾으러 저택에 들어왔다가 그 집의 선조처럼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자 옛 살인 사건의 전말과 오랫동안 핀천 일가를 사로잡은 저주의 정체가 드러난다.
애드거 앨런 포가 호손을 가리켜 미국이 낳은 몇 안 되는 명백한 천재 중의 하나라고 극찬한 이유는 이 소설 『일곱 박공의 집』이 일곱 개의 박공을 가진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일곱 개의 박공을 가진 저택’은 핀천 가문을 상징하는데, 호손은 몰락해가는 귀족 계급을 핀천 가문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진행되던 세계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상류계급으로서 말할 수 없이 사악하고 냉혹한 핀천 판사, 양반집 부인이라 할 헵지바를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신분사회에 속한 상류계급 출신이면서도 새롭게 변하는 근대적인 삶의 방식에 환호하는 클리퍼드, 세습되는 귀족 가문에 대해 극단적인 반감을 나타내는 홀그레이브를 보여주면서 과거와 현재, 전근대와 근대가 교차로에 서있는 미국 사회를 그리고 있다. 소설에서 또 다른 주인공인 피비는 핀천이라는 귀족 계급의 성을 갖고 있긴 하되 평민의 피가 섞여 평민으로 자라난 피비가 가정의 중심이 되어 새로운 가치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간다. 이 소설을 번역한 정소영 교수는 피비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피비는 세상과 단절된 클리퍼드와 헵지바에게 현실 세계와 잇는 끈을 쥐어 주고 세상과 냉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 안착하기를 거부하는 홀그레이브와 함께 가정을 이루어 정착하는데, 이렇게 이루어진 공동체는 핀천이라는 귀족 가문과 몰이라는 평민 집안의 화해이자 고택에 갇혀 되물림되는 가계와 뿌리 뽑힌 근대적 삶의 화해이다.
과학기술 발달에서 비롯한 소설
『일곱 박공의 집』을 애드거 앨런 포처럼 추리소설로 읽든, 정소영 교수처럼 피비를 중심으로 두 집안의 화해라는 눈으로 읽든, 소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 필자는 여기서 홀그레이브와 클리퍼드를 중심으로 전혀 다른 각도에서 소설을 ‘비소설적으로’ 읽고자 한다. 소설에서 작가 호손은 화자의 눈으로 홀그레이브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홀그레이브에게는 과거의 어떤 때보다도 지금 이 시대가 썩고 이끼 가득한 과거를 완전히 부수고 생명을 다한 제도를 밀어내 길을 트며, 그 죽은 시체를 묻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때인 것 같았다.
도래할 더 나은 시대라는 핵심(사는 동안 그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기를!)에 대해서는 그 예술가의 생각이 분명 옳았다.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나 미래의 어떤 시대보다도 이 시대가 부분 부분을 이어서 점차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식이 아니라 너덜너덜한 구시대의 옷을 완전히 새 옷으로 갈아입을 운명이라고 가정한 데 있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과 달리, 시대의 점진적 변화를 기대하던 홀그레이브와 달리, 클리퍼드는 근대적인 삶의 진보적인 성격을 확신한다.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고 계속 향상하고 있는 교통시설이 분명 우리를 유목민의 상태로 되돌려 놓을 거라는 게 제가 받은 인상입니다. 아시겠지만, 분명 경험상 인식하셨겠죠? 모든 인류의 진보는 순환합니다. 그보다 더 정확하고 훌륭한 비유를 사용하자면 나선형으로 돌며 상승한다고나 할까요. 똑바로 나아가서 매 단계마다 완전히 새로운 지점의 상황에 도달했다고 상상하지만, 사실은 오래전에 이미 한 번 봤다가 버려진 것을 그 이상에 비추어 더욱 정교화되고 세련되고 더 완벽해진 상태로 발견하게 되는 거지요. 과거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조악하고 감각적인 예언일 뿐입니다.
클리퍼드가 이토록 근대적인 삶의 진보적인 성격을 낙관하는 것은 바로 철도, 전신, 사진 등의 발명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이 소설이 씌어진 19세기 미국은 소설 제18장 <핀천 주지사>에서 보듯이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핵이라 할 부동산업, 보험업, 은행업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곳이었다.
클리퍼드가 “오히려 반대로 이 놀라운 철도의 발견은 속도에 있어서나 편리함에 있어서나 우리가 바라는 만큼 광범위하고 불가피하게 점점 향상되면서 가정과 난롯가라는 그 케케묵은 생각을 없애 버리고 그보다 나은 것으로 대체될 것입니다.”라고 확신하는 곳에서 핀천 가문은 클리퍼드의 생각대로 이러한 시대의 변화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클리퍼드는 자기의 낙관론을 다음과 같이 재차 밝힌다. “지붕 아래와 화롯가라는 조건’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쓸려 나가 잊힐 것이라는 게 저의 굳건한 믿음이자 희망입니다”.
장밋빛 미래예측도 있어
그러나 클리퍼드의 낙관론은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인 측면도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부동산 업 등 당시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생겨나는 모순까지 해결할 것이라는 다음과 같은 생각은 과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단 하나의 변화만으로 얼마나 많은 인류의 악이 사라져 갈지 잠깐 상상만이라도 해 보세요! 우리가 부동산이라 부르는, 집을 지을 단단한 집터는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죄가 기초하는 광범위한 기반입니다. 자신이 그 안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그 후손들이 비참하게 생활을 영위할 음산하고 어둑한 방을 가진 거대한 저택을 짓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어떤 악행이라도 저지를 것입니다. 화강암처럼 단단하고 무지막지한 사악함을 계속 쌓아 올려 이후 영원히 영혼을 무겁게 짓누르겠죠.
클리퍼드의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하우스 푸어가 넘쳐나는 한국 사회를 돌아보더라도 상당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지만, 과학적 유토피아주의가 현실의 디스토피아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은 미래를 지나치게 장밋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너새니얼 호손(사진, Nathaniel Hathorne, 1804년 7월 4일 - 1864년 5월 19일) 미국의 대표적 소설가. 외교관으로도 근무했다.
하지만 클리퍼드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미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주장은 네트워크의 시대의 도래를 이미 160여 년 전에 예언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놀랍다.
“그렇다면 전기를 생각해 보세요. 악마이자 천사, 강력한 물리적 힘이자 어디에나 세력을 떨치는 지능!” 클리퍼드가 외쳤다. “그것도 속임수인가요? 내 백일몽에 불과한 게 아니라면, 전기로 인해 물질세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 킬로미터를 진동하는 거대한 신경조직이 되었다는 게 사실이 아닌가요! 아니, 둥근 지구가 일종의 거대한 머리이자 지능이 가득한 뇌입니다! 아니면 그것이 사고력일 뿐이라고, 오직 사고력일 뿐 이제는 우리가 생각하듯 물질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요?”
호손은 속도의 문제를 철도에서만이 아니라 전신에서도 보았고 그 속도가 시대의 변화를 무서운 속도로 이끌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호손의 미래에 대한 예언에서 놀라운 것은 앞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사고를 물질로 파악하고 그 물질계와 정신계가 거대한 신경조직을 이루고 있다고 본 것이라든가, 지구 자체를 뇌 조직을 이루는 뉴런들의 거대한 네트워크 조직으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클리퍼드가 “세계는 갈수록 지극히 무형의 정신적인 것으로 변해 가기 때문에 이러한 거대한 몸뚱아리를 앞으로도 오래 지탱할 수는 없어요. (중략) 더 나은 시대를 알리는 전령사는 의심의 여지 없이 분명합니다” 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과거와 전근대를 놀라운 속도로 대체하는 미래와 근대의 속성만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으로, 유형의 것들이 무형의 것들로 변하는 미래에 대한 그의 통찰이 16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와 다른 측면에서 보면 호손이 마치 오늘날의 무형자산의 확산마저 예언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전신으로 보내는 발신자의 감정을 예견
더더군다나 너새니얼 호손은 카카오톡이 대중화한 오늘날 이모티콘이나 문자로 발신자의 감정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이미 그 시대에 전신에서 발견했다.
호손은 앞 인용문에서 보듯이 “전기로 인해 물질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 킬로미터를 진동하는 거대한 신경조직이 되었다는 게 사실이 아닌가요?”라고 말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글로벌하게 사용하는 스마트기기는 전신 기술에 더 진전된 과학기술을 덧씌운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세계가 무형의 정신적인 것으로 변해 가는 과정에서 전신이 정신적인 매체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클리퍼드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감정을 전달하는 오늘날 SNS의 전신(全身)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전신과 같은 거의 정신적인 매체는 고귀하고 심오하며 즐겁고 성스러운 임무에 헌신해야 합니다. 연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혹은 마음이 통한다면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영원히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을 가득 싣고 내 마음이 달려가요,’ ‘말할 수 없이 당신을 사랑해요,‘ 같은 말들을 실어 메인 주에서 플로리다 주까지 그들의 심장박동을 보낼 수 있겠죠. 그리고 또 그다음 전신에는 ’내가 한 시간을 더 살았는데 당신에 대한 사랑은 두 배가 되었어요,‘ 라고 쓰고 말이죠. 또는 착한 사람이 세상을 떴을 때 멀리 있는 그의 친구는 ’당신의 사랑하는 친구가 하늘나라의 축복 속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전신의 떨림을 마치 행복한 영혼의 세계에서 온 것인 양 느낄 수도 있을 거고요. 혹은 집을 떠나 있는 남편에게 ’당신의 자식인 불멸의 존재가 지금 막 신에게서 우리에게 왔어요!‘라는 전언을 받으면 그 즉시 아기의 여린 목소리가 그 멀리까지 닿아서 그의 마음에서 메아리치겠지요.
미래학자 재러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이라는 자기 저서에서 전자공학, 인터넷, 원격통신 등 단일화된 통합 통신망의 발달로 세계 전체를 감싸는 글로벌 신경계로 통합되면서 인간의 모든 경험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 방향에 대해 통찰한 바 있다.
호손은 재러미 리프킨보다 이미 160여 년 전에 물질계가 거대한 신경조직으로 변할 것이라고 에언한 바 있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가령 카카오톡 같은 매체가 호손이 말한 정신적인 매체로서의 전신의 기능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재러미 리프킨이 말하듯이 인간의 모든 경험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카카오톡 같은 것이 인간 감정의 상품화를 넘어서서 얼마나 전신 같은 매체의 정신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말이다.
과연 다음과 같은 이모티콘에서 당신은 너새니얼 호손이 말한 전신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심장박동의 전달, 전신의 떨림, 메아리치는 마음을 얼마나 느낄 수 있겠는가?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노어노문학과 석사와
박사를 거쳐 지금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참세상》 편집위원, 《문화과학》 편집위원 등을 지내며 이땅의 올바른 문화정착을 위해
애쓰고 있으며 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 공동 소장, 한국러시아문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러시아의 코뮌 운동》 《오토포이에시스와 통섭》 《바흐찐
읽기》 등의 저서가
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