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인물

사랑지기
- 작성일
- 2018.12.9
강기동과 한국 반도체
- 글쓴이
- 강기동 저
아모르문디
저자 강기동 박사는 지난 11월 3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1934년생 함경남도 함흥 출생인 강 박사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를 11회로 졸업했다. 소년 시절부터 아마추어무선에 큰 매력을 느껴 대학 재학 중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KARL)을 창설하기도 했다.
1958년 그는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반도체연구소를 만들기도 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모토롤라 반도체사업부에서 최첨단 반도체 기술을 연구했다.
그는 늘 조국에 최첨단 반도체 기술을 이식할 것을 꿈꿨고, 각고의 노력 끝에 1974년 1월 부천에 한국 최초의 반도체 공장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세웠다.
당시 한국 당국은 반도체 '조립'이 아닌 제조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커녕 온각 규제와 몰이해 속에 자신이 직접 거의 모든 것을 떠맡아야 했다. 그는 공장에서 전자 손목시계용 시계 칩 KS-5001을 개발해 큰 성공을 거뒀고,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얼마 안 돼 중동발 오일 쇼크로 자금난에 시달리던 회사는 삼성에 인수되고 말았다. 큰 좌절감을 맛본 그는 도피하듯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반도체 산업에 뜻을 품은 국내 대기업들의 요청으로 여러 차례 반도체 사업 계획을 세웠으나, 정작 한국에 다시 발을 들이지 않았다.
한국반도체의 공장. 삼성에 인수된 후의 모습(1978년경)이다.
한국반도체가 생산한 시계 칩이 내장된 전자손목시계 광고. 한때 420만 불 어치(현재 가치 약180억원)나 팔기도 했다. 그만큼 잘 나갔다.
그가 떠나고 '한국반도체'는 '삼성반도체'가 됐고, 오늘날 삼성전자로 이어졌다. 그는 현대전자가 설립될 무렵 현대 측의 자문에 응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두 기업의 모태가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내가 집에서 이것저것 뒤적거리며 만든 사업 계획서로 시작된 한국반도체주식회사와 현대전자는 지금은 삼성반도체와 SK하이닉스로 그 이름도 바뀌고 주인도 바뀌었다. 그후 두 회사 모두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정상을 바라보는 대기업으로 자라났다. 두 회사를 합치면 현재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략) 한때 부녀자의 머리카락을 팔아 연명하던 나라가 상상을 초월하는 반도체 메모리 왕국이 되었다. (331쪽)
저자는 오늘날 반도체 메모리 왕국 신화를 만든 현대 정주영 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의 자존심을 건 기 싸움을 자세히 알려준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업 비사가 아닐 수 없다.
난 여기서 그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로 명성을 드날리게 된 계기는 이건희 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반대를 무릎쓰고 독자적으로 부지와 공장을 확보하여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일화를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기업들이 대필 작가를 구해 책을 내는 등 자수성가 이미지를 퍼트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구나 싶다.
저자 강기동 박사(84)는 현재 미국 네바다주 리노에 살고 있다. 그는 진공관 라디오를 고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며 열성을 보인다. 지난 9월 한국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책 집필에 대해 "인생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세상을 떠돈 오해와 왜곡을 바로잡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60세 되던 해부터 아내와 함께 볼룸 댄스를 시작했다. 6년을 열심히 연습해 '인터내셔널 그랜드볼' 대회에서 시니어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컵을 거머쥐고 아내와 한께 환하게 웃는 사진이 참 인상적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진정 즐길 수 있는 인생이라면 더 없이 행복한 것이 아닐까?
나는 저자의 회고록을 통해 그가 어떻게 한국 반도체 사업의 뿌리를 내리게 했는지, 오늘날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그가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여실히 살펴볼 수 있었다.
비록 그는 스스로를 정치와 권력 다툼에 무지했던 실패한 사업가라 말하지만, 나는 책에서 한 인간의 때늦은 회환이나 못난 핑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 성공을 축복하는 한 인간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오직 반도체만을 생각했던 연구자이자 정직한 인간이었던 저자가 일군 성공과 실패담은 깊은 감명과 큰 울림을 안겨준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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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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