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교양

사랑지기
- 작성일
- 2019.2.13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글쓴이
- 유성호 저
21세기북스
‘서가명강’이라는 타이틀은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를 줄인 말이다. 언뜻 서울대(에서 하는) 강의는 곧 명강의라는 뜻이 함축돼 있으니 그리 편하지만 않은 타이틀이다.
저자 유성호 교수는 서울의대에서 법의학을 가르친다. 그는 매주 월요일 시체를 검시한다. 유 교수에 따르면 2013년도 1학기 60명 정원으로 맨처음 죽음에 대한 강의를 개설했다. 수강생들의 반응이 좋아 현재 210명의 대형 강의로 발전했다. 그는 강의에서 16년간 법의학자로서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지 고민한 내용을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책의 구성을 보면 3부로 나뉜다. 1부는 검시를 통해 시체의 사망 원인과 사망 종류를 밝힌다. 2부와 3부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먼저 2부는 죽음의 과학적 의미를 살펴보고 뇌사, 연명의료, 안락사와 자살에 관해 다룬다. 3부는 생을 마무리 짓는 죽음 준비 활동에 대해 알아본다.
1부는 저자의 전문성을 십분 만끽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죽음’은 어떤 것인지 다양한 시체 검시 사례와 부검 경험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검시는 검안과 부검을 포함한 용어다.
범죄는 사회 환경적 차원과 개인 심리적 차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물론 범죄의 동기와 유형을 분석하는 데는 두 차원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저자 서울의대 법의학과 유성호 교수
책에 소개된 애틋한 사연을 하나 들어보자. 남편은 성실했고 작은 중소기업을 정년까지 다녔다. 평생을 모아 작은 평수의 서울 시내 아파트까지 장만했다. 한편 아들은 그동안 구상해 두었던 사업을 위해 이곳저곳에서 돈을 끌어대기 시작했다. 사업은 처음부터 잘 되지 않았다. 불과 1년여 만에 부모가 평생 모은 집과 저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들과 부모 모두 큰 빚을 지게 되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인생의 막판에서 남편은 아내의 상해보험 몇 개를 들었다. 어느 날 부부는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산을 올라가는 산책로에서 한참 떨어진 으슥한 곳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아내는 풀이 깔린 널찍한 곳에서 양 손목이 묶인 채 목이 졸려 사망했다. 조금 떨어져 남편은 나무에 목을 맨 채로 발견되었다. 남편의 주머니에는 자신이 큰 죄를 저질렀다며 하늘의 용서를 구하는 유서가 들어 있었다. 부검 결과 아내는 남편의 촉탁 살인에 의한 타살 가능성이 높았고, 남편은 자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법의학자는 어쩔 수 없이 시신을 통해 자살을 마주하기도 한다. "자살은 개인의 내밀한 결정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흐름과 무관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나라 자살에 관해 관심 깊게 주목한다. 우리나라에서 2017년 살인에 의한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0.8명인데 비해,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3명, 80대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23.3명으로 급등한다. 살인에 의한 사망자는 한 해 400명이 조금 넘지만 전국 경찰서에 전담팀이 적어도 1개씩 있다. 하지만 자살은 이보다 30배, 150배 더 높지만 국가차원의 대응이나 예방 조치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살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보는 것은 사실상 그것에 대해서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면서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는 대중적 매체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껨은 자살이나 살인의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입장은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껨과 일맥상통한다. 뒤르껨은 『자살론』에서 자살이나 살인의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면서, 사회의 묵인과 무관심 때문에 그런 행동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살은 사회 경제적 요인과도 관련돼 있다. 급속한 경제발전과정에서 나타난 소득과 부의 불평등, 사회적 소외 그리고 국가차원의 지원 부재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개인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유 교수가 일반인을 위한 교양 도서에서 자살에 대해 깊이 들어갈 수는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가 자살(나아가 죽음)에 관해 좀 더 깊은 이해와 배경 지식을 쌓을 수 있다면 서술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죽음에 관한 학문적 깊이를 지니고 있다면 한 두 문장을 통해서라도 능히 독자에게 전해지는 법. 내 생각에는 적어도 이 책을 통해 보면 저자의 통찰력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앞으로 저자가 자살(나아가 죽음)에 관해 좀 더 깊은 이해와 배경 지식을 쌓는다면 어떨까.
한국죽음교육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김달수 원장은 평소 죽음준비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죽음준비교육이란 죽음학을 기반으로 인문사회학, 의학, 심리학 등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일반인에게 알려주고 실천하게 하는 과정이다. 호스피스 운동을 일으킨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어떻게 죽느냐'는 문제가 삶을 의미 있게 완성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죽음 준비 활동, ‘슈가쯔’에는 장례, 묘소, 불단과 상속이 포함된다.
저자는 일본의 죽음 준비 활동, ‘슈가쯔(終活)’를 소개하면서 지금 건강할 때 조금은 치밀하게 삶의 마지막이 어떻게 마무리되어야 하는지 계획해두라고 조언한다. 이어 『관촌수필』로 유명한 이문구 작가와 1970년대 단발머리를 유행시킨 헤어디자이너 그레이스 리가 삶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들려준다. 그리고 자신도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긴다.
“결혼할 때 집사람이 마련해준 예복을 입히고, 신발은 마지막에 애장하던 것을 신기며, 와이셔츠는 단골 와이셔츠 양복점에서 구해서 입히라.”
끝으로 저자는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라고 말한다.
이 책은 최근 내가 읽은 정현채 교수의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와 김달수 원장의 『죽음학 스케치』와 연계된 읽기가 되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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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