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The Author

helenkr76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1.11.12
응모소설 제목 : 할아버지의 9명 딸과 사위들
우리 외할아버지는 경상도 대구에서 태여나서 자라셨고 10년전에 폐암으로 이미 돌아가신 상태다.
외할아버지의 젊었을 때 사진을 보면 아주 잘생기셨고 미남이셨다.
젊고 장생기고 카리스마도 있으셔서 결혼하고도 많은 여인들이 쫓아다녔다고 들었다.
나는 어렸을 때 우리 외할아버지의 경상도 사나이의 그 특유의 과묵함 때문에 항상 두렵고도 유일하게 존경하는 분이 셨다. 그리고 난 그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나 정겹게 느껴져서 듣기가 좋다.
어릴때 다른 집안은 전부 남편 때문에 시댁에 가서 명절을 지내지만 우리 외할아버지는 딸 들만 있어서 모든 딸 가족이 전부 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고종할머니(외할아버지의 모친) 함께 보냈다.
둘째 딸의 시댁은 시골이고,셋째 딸의 시댁은 두분 다 돌아가셨고 형제도 없고, 넷째 딸은 시댁과 이웃집으로 지내서 매일 만나고, 다섯째딸의 시댁은 바로 길건너에 있고 그래서 모두 명절이면 외할아버지 집에 7시에서 8시정도에 아침일찍 도착한다. 그리고 모두들 맛있는 요리를 하시고 맛있게 행복하게 명절을 보내고 특히 우리는 세배돈을 받아서 좋았다.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우리가 동네에서 가장 행복한 집안으로 보였고 그렇게 생각했었고 자신있게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말해왔다.
그런생각이 중학교쯤에서 부터 삐걱하기 시작했고
결혼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가졌고 혹시 나중에 결혼하더라도 애기는 갖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왜 어른들은 행복한 순간을 아끼지 않고 만들어가지 않고 불행한 일들을 만들어 갈까?
그들은 왜 그런 결정을 지어서 여러사람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줌으로서 쾌락을 느끼면서 살까?
-아들없는 외할아버지-
우리 외할아버지는 자기의 친 아들을 갖고 싶어서 첫쨰 부인한테서 딸 4명, 두번째 부인에게서 딸 5명 , 이렇게 아이를 계속~낳았지만 딸만 9명이고 아들은 끝내 태어나지 않았었고 마지막 여덟번째 하고 막내 아홉번째는 쌍둥이 딸까지 낳았다. 나중에는 입양을 보내서 난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듣기로는 아주 예뻤다고 했다.
지금도 다른 이모들은 외할아버지에게 친아들 없기 참~ 잘했다고 가끔 말한다. 왜냐면 아들을 손위의 진주알 처럼 애주중지하게 키워서 아들을 완전 버릇없이 키울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셔서 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외할아버지의 9명의 딸들이 다 잘 되고 있지는 않다. 그 누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라고 했던가 참말로 너무나도 정확하게 맞는 말씀이다. 나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언젠가는 책으로 내야겠다고 오래전부터 맘속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얘기 하고 싶은 이 집안의 이야기가 너무도 많아서 차근차근 얘기해야겠다. 딸들에겐 집집마다 괴로운 사실과 현실과 아픔과 상처가 있다, 그들에겐 행복도 조금 이라도 있었던가? 어릴때는 행복해 보였지만 지금은 왜 이렇게도 상처투성인지 안타깝다.
외할아버지가 첫째부인과의 만남은 외할아버지의 장인어른이 중매쟁이 셨는데 마침 외할아버지가 그 장인되신분의 집에가서 사진들을 보고 고르고 있는 그날 ,그때 그 수 많은 사진속에서 우연희 한장이 떨어져 나오면서 외할아버지의 시선에서 뗄수가 없었고 바로 결혼으로 맺어진 인연이 였지만 첫째 부인은 결혼후 7년도 안되서 딸만 4명을 남기고 기차에 머리부딛혀서 피도 별로 흘리지 않은채 그자리에서 바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자실인지 아니면 단순 기차와의 사고 이였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실은 외할머니의 친정아빠는 그가 우리 외할아버지에게 그의 딸을 중매시킬 맘은 전혀없었다고 한다. 아마 그날 그 사진이 삐져나오지만 않았다면 다른 여인하고 결혼했을 지도 모른다 .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당일날은 넷째 이모가 아직젓도 안뗀 돌도 안된 간난 아이였고 잠시 일하러 갔다 온다고 아시는 분께 맡기고 일하러 나갔다고 했다. 외할머니의 사진을 모면 셋째 이모하고 똑 닮았고 아담한 키에 한복입은 사진을 보면 전형적인 조선인 어머니 생김새와 자태다.
첫째부인이 딸 네명을 낳고 돌아가시자 할아버지는 두번째 부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두집 살림이 시작되었다. 친엄마를 하루 아침에 잃은 어린딸 4명은 어쩔수 없이 원래부터 같이 한집에서 생활해오신 그들의 친할머니하고 살게 되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외할아버지의 친어머님이시고 하나님을 믿으시는 독실하고 신실하신 기독교 신자이고 매일아침 깨끗이 세수하시고 머리를 빗고 성경을 읽으셨고 또한 손녀들에게도 성경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내용을 이야기처럼 수없이 알려주셨고 셋째 이모는 그래서 지금도 주기도문을 외울수 있게 되셨다. 손녀 들에겐 친할머니가 친엄마와 같은 존재이였고 말도 잘 들었다.
다들
두번쨰 부인은 원래 아주 돈 많은 부자집에 시집을 갔었는데 결혼후 몇년동안 임신도 안되고 애도 없어서 이혼하게 되었고 키도 아주 크시고 미인이셨고 노래도 동네에서 아주 잘 부렀고 명절날이나 잔치날에 노래를 청함을 받아서 가끔 불렀다고 하셨다.
그러다 할아버지랑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아셨는지 아니면 돌아가신후에 만남을 갖게 되서 결혼하셨는지는 나는 모른다. 내가 물어 봤지만 아무도 알려주시지를 않았다.
두 집 살림을 시작하게 되면서 애기를 낳았고 그때마다 이모들은 궁굼해서 외할아버지에게 물어보셨고 할아버지는 항상 똑 같은 말씀으로 대답하셨다."너같이 똑 같은 애야!" 하나님도 참 이상하시다. 왜 우리 외할아버지에겐 그 흔한 고추 달린 아들을 주시지 않았을까??? 참 궁금하고도 모를 일이다. 알고싶다. 하나님~ 왜 우리 할아버지에게 아들을 주시지 않았나요??? 내가 나중에 천국에 가면 까먹지 않고 꼭 물어보고 싶다.^^
그렇게 어려운 생활속에서 할아버지의 비상한 머리로 혼자서 딸 9명 과 부인, 그리고 군대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큰형의 딸에다가 친어머님까지 총 13명의 식구를 먹여 살려다. 큰형님이 군대에서 돌아가시자 그분의 와이프는 바로 어린딸을 버리고 다른 지방에 계신 남자분과 바람나서 도망쳤다고 들었고 그 딸은 우리 외할아버지가 어릴때부터 데리고 친딸 처럼 먹여주고 키워주고 시집갈 때까지 챙겨줬다.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쌍둥이는 나중에 애기 없는 두가정의 집으로 각각 따로따로 입양보냈다.
두번째 부인은 그 일로 시어머니를 너무나도 미워했다고 들었다. 그 두 쌍둥이 이모들은 내가 한번도 본적은 없었고 남은 7명의 이모들은 쌍둥이 동생을 찾을 려고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그누구도 그들에 대해서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 가끔 내가 물어보면 다들 그 쌍둥이가 몸이 허약해서 아마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대답해줬다. 그리고 찾은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고 원망만 들을 텐데 라고 말하신다.
외할어버지는 여러종류 장사를 하셨고 과일장사, 고무신 장사, 동을 다시리는 공장에서 쓰레기로 버리는 동재를 구매하셔서 그 속에서 동을 체취하는 기술로 많은 동을 구하게 되어서 업체에 판매하여서 돈도 많이 모았다고 들었고 동네에서 아주 인지도가 있으시고 꾀 유명하다고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어렵게 딸들을 키워서 결혼까지 시켜서 , 첫딸의 결혼식날 엄청 우셨고 그 다음부터는 덜 우시고 나중에는 빨리 시집가라고 재촉 하셨단다. 딸들의 결혼식을 여러번을 하다보니 면역력이 생기신것 같아. 그리고 나이가 먹어가는 막내 이모 결혼을 위해서 많이 기다리신것 같다.
우리 외할아버지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사위는 첫째 사위다,
그는 똑똑한 머리와 자동차 설비 기술을 갖고 있었고 작은 신입 사원에서 몇년만에 큰 공장장으로 성공하였다. 불행한것은 그가 체력이 약하고 과도한 직장 스트레스로 인하여 두 아들을 남기고 감기증상으로 병원에 찾아가게 되면서 백혈병 발견 6개월만에 돌아가셨고 제대로 된 수술을 받지 못하여서 너무다 안타깝다. 수술할 돈이 있었다면 골수이식하는 큰 수술 하면 그래도 살아 날수도 있었을 텐데... 큰이모부가 돌아가시기전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수혈을 받으면 손바닥하고 발바닥이 불그스레 살아나고 수혈을 받지 않으면 백지장보다 더 희다" 고 말했다. 그당시 내가 봤을 땐 이모부는 걸어다니는 시체 같이 피부는 완전 하얗게 보였고 좀 메스겁게 느껴졌다. 문제는 큰이모부가 죽음의 문턱에서 안깐 힘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 그의 철부지 큰 아들은 불량친구들과 어울려서 식당에서 술을 먹고 취하고 술값을 내지 않고 그 친구 두명중에 한 명이 식당주인하고 시비가 걸려서 칼로 식당주인을 찔러서 죽이게 되었고 그 시간에 큰이모의 큰아들은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올때 이미 칼에 찍려서 바닥에 쓰러진 식당주인을 보고 얼떨결에 깜작놀라서 "사람죽였어" 소리치면서 식당에서 도망쳐 달아나오는데 마침 근처에 있었던 동네사람들이 수상하게 여겨 그를 현장에서 잡았고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여서 큰이모는 당신의 남편과 큰아들 때문에 아주 힘든 시련을 겪는 시기였다. 큰이모는 점쟁이에게 찾아가서 물어 봤다,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몰라서다, 점쟁이는 큰 이모에게 남편과 아들 중에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고 하였고 선택은 큰 이모더러 하라고 하였다. 당시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몇차례해야하는 큰이모부의 수술비용으로는 부족하고 수술이 성공될지 실패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큰이모는 아들이 옥중에서 몇년 살다가 나오기를 바라게 되었고 그는 큰아들에게 집중적으로 신경쓰고 남편을 소홀하게 하였고 얼마 안되서 큰이모부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칼로 식당주인을 죽인 불량친구는 현장에서 도망쳤고 경찰에게 잡힌 다른 친구는 어이없게도 우리 큰이모의 큰아들이 죽였다고 거짓증언을 하여서 억울하게 10년 판결을 받게 되었고 그는 옥중에서 자살할려는 사람을 살렸고 10년이 되기전에 옥생활을 끝내고 나와서 좋아했었던 애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딸을 낳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아빠의 피를 닮아서 자동차 수리 기술이 뛰어나지만 술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몸이 허약해 지고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약에 큰이모가 그 때 당시 남편을 선택하였더라면 현재는 어떤 생활을 갖고 있었을까??? 큰이모부가 살아계셨을 때 그는 귀부인으로 십몇년을 생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현금과 뇌물을 주게 되어서 아주 부유하고 넉넉하게 살아온 큰이모는 지금 남편 없이 청소부로,가정부로,병간호인으로 어렵고도 힘든 일을 하시면서 월세방에서 생활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일본에서 몇년동안 불법체류로 있다고 땡전 한푼도 못 벌고 추방당해서 지금은 작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돈 모아서 이쁜 여친이랑 결혼할 생각으로 목표 삶고 생활하면서 큰이모에게 생활비도 잘 주면서 착한 아들로 살고 있다. 몇년만 더 있으면 큰이모는 국민연금이 나옴으로 그것으로 생활하고 몸이 너무 아프고 체력도 안되서 일을 그만두실려고 하신다.
불쌍한 우리 큰이모 일찍 남편을 여위고 혼자서 철없는 두 아들을 키워오시느라 많은 맘고생도 하셨고 눈물도 많이 흘리셨고 앞으로는 아프지 않고 사셨으면 좋겠다.
큰 이모는 불교도 믿고 하나님도 믿고 점쟁이도 잘 찾아간다. 난 그런점이 이해가 안간다.
외할아버지는 큰 사위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게됨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워 하셨고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실때 까지 큰딸을 불쌍해하면서 걱정하면서 돌아가셨다.
자식에게 줘야하는 매을 아끼면 자식을 버릇없게 가르친다라는 말이 있다.
큰이모는 맘이 너무 너그럽다. 아들을 혼내는 적이 없다, 나쁜 습관을 보고도 혼내지 않았다.
그 결과는 비참하다.
외할아버지의 첫째부인이 낳은 둘째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주 똑똑하지만 이기적인 AB형 혈액형을 갖고 있고 도박을 30년 넘게 해오면서 지금도 도박하면서 여러명의 남자와 바람피면서 살아온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외할아버지의 두번째 사위가 모든 사위중에 가장 바보스럽고 좀 멍청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의 부인을 사랑할줄도 모르고 애기들을 챙길줄도 모르고 오로지 자기가 좋아하는 낚시에 목숨을 걸고 사는 시골 촌동네 사람이다. 둘째 사위는 결혼하는 당일날이 자기 생일 날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결혼식이 다 끝나고 당일 저녘에 "어, 오늘 내 생일이네!" 라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하였고, 배가 너무 고파서 쥐도 먹었었다고 했다, 얼마나 가난하고 못 살았으면 쥐를 먹었을까?? 쥐맛은 어떤 맛일까?? 닭고기,돼지고기,소고기,양고기,토끼고기,산양고기,물고기는 먹어봤어도 쥐고기는 먹어 본적이 없어서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비리고 오줌 찌린내 나는 냄새가 날것 같다.
이런 인간미가 전혀없고 지식도 없고 볼 품도 없고 사회 친구 한명도 없는 남편을 둔 외할아버지의 둘째 딸은 결혼하면서 불행하기 시작하였다.
남자가 아내가 싫어지면 결혼생활이 바로 파토가 되고 유지가 않된다고 했고
여자는 남편이 싫어도 아이 때문에 라도 참고 살아준다는 말을 들은적 있다.
아내가 멍청하여도 데리고 살지만 남편이 멍청하면 아내는 참고 못산다는 말을 들은적도 있다.
이 둘째 사위는 술만 마시면 취하고 취하기면 하면 술수정을 하고 술수정은 보통이 아니라 온 동네 떠들석하게 하고 한번은 동네 운동회에서 술취하여서 씨름선수들의 시합에도 방해를 하고 벌러덩 누워서 아주 추한 모습을 보여준적도 있었다.
그는 아내가 아이를 업고 넘어져도 모른척하고 지나간다. 부인이 속상하다고 말하니깐 답은 "자기가 넘어진것을 왜 나 한테 화내?" 라고 했다. 억청이 넘어 지는 소리에 그 때부터 두사람의 대화는 없어지기 시작하였고 다툼은 없지만 애정도 없었다. 부인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고 이 악물고 애쓰면서 살지만 남편은 낚시에만 신경쓰면서 살아왔고 그러다가 부인은 눈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게 되었다.
20년의 결혼생활을 부인의 바람때문에 이혼하게 되었고 모든 재산을 남편이 갖게 되었고 그는 불여우에게 결혼해서 평생 잘 살자라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서 모든 재산을 집,현금,보석,사기당하게 되었다. 원래 이혼 당시에는 그 집을 나중에 아들에게로 남겨주기로 약속했지만 이기적이고 멍청한 둘째 사위는 모두 불여우에게 줬다. 그리고 빈 털털이가 되었고 한 동안 혼자서 살았다.
외할아버지는 둘째 사위의 실수를 듣게되고 너무나 속상해하셨다,재산을 첫째 부인에거 넘겨줬더라면 나중에 다 본인의 자식들에게라도 돌아갈텐데 라고 한탄해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죽기전에 유언을 남겨서 유산을 자기 자식들에게 잘 나눠서 줘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식들가 큰 싸움으로 이어져서 가족불화가 생기게 된다.
셋째 딸은 외할머니늘 닮아서 가쯤 외할아버지가 술 드시고 첫째 부인이 생각이 나면
셋째 딸의 얼굴을 만지면서 첫째부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다가 잠드신적이 몇번 있었다고 들었다.
아마도 죽은 첫째 부인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갖고 계신가 보다,
아니면 생활이 힘들어서 첫째부인이 살아계셨더라면 하는 안타까움 때문일까??
외할아버지는 정이 아주 많으신 분이시고 집안 일도 많이 도와주셨고 마늘도 잘 까줬다고 들었다.
그 셋쨰 딸은 잘 생긴 남자를 만났지만 불햏하게도 의처증이 있어서 매일 매일 맞으면서 살아왔다.
셋째 이모부의 친 아빠도 의처증 때문에 매일 술 마시고 와이프를 때려서 동네 소문이 자자한 분이셨다.
그 아빠에 그 아들이란 말씀 참말로 맞다,
그 셋째 사위는 역시 놀고 먹기를 좋아하고 낚시를 좋아한다. 장점은 맛있는것을 잘 챙겨 먹는 사람이다.
부부는 하나님이 맺어 주신 인연이라고 들었다, 셋째 딸이 가장 밥 잘하는 딸인데 그는 그를 아내로 맞이하여서 살면서 매일 반찬 투정을 부렸다 ""아니! 맛이 왜 이렇게 없어? 내가 발로 만들어도 이것보다 더 맛이 있다!" 화가난 셋째 딸은 대꾸했다" 그러면 당신이 직접 해보세요! ~앗! 아파라!" 셋째 사위가 맥주병을 힘껏 던졋다, 그 병이 깨지지 않은 채고 셋째 딸의 허벅지에 도장을 팍 찍고 바닥에 떨어졌다.
순간 셋째 딸의 허벅지에 빨간 동그란 멍이 마치 불에 달군 쇠로 찍어 놓은 듯 했다. 너무나 아파서 그는 부엌에서 도망쳐 나왔다. 울면서 언니집에 갔다, "난 더이상 못살아~~ 엉엉"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도 살고 있다. 다른점이 있다면 셋째 딸이 자궁에 혹이 생기면서 자궁을 전부 제거하는 수술을 한 뒤로부터 셋째 사위는 더이상 의처증이 없어지고 따로 잠을 자게 되었고 셋째 딸은 인제 부터 자유로워 졌다, 그가 결혼하는 동안 남편에게 너무 폭행과 학대를 당하여서 현재 우울증, 약간의 기억 상실증, 그리고 밤마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잘 수 없는 불면증까지 있어서 폐인으로 되었다.
10여년전에는 식당도 잘되고 돈도 잘 벌고 잘 살았는데 셋째 사위가 경마장에가서 전재산 수억원, 집여러채,자동차까지 전부 다 날리게 되었고 지금은 집도 없어서 외할아버지가 살았던 집에서 살고 있다.
그 집은 우여 곡절 끝 몇년 뒤에서야 셋째 사위의 딸에게로 주기로 결정이 되었다.
도박을 좋아하면 손을 잘라버리면 도박을 끝을 수 있을까?
가끔 손가락이 잘린 사람을 보면 물어 보고 싶다, 처음에는 살짝 이렇게 물어볼거다. " 아저씨~ 일하다가 손가락 다친거에요? 아니면 태여 나실때부터 손가락 없이 태여 나신거에요? " 그러면 답이 나온다.
근데 둘다 아니야 라는 대답을 주신다면 아무래도 도박하다가 자르게 된것이란 생각으로 남게 된다.
모두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이 도가 지나치면 독이 된다.
독은 약간은 병치료가 되지만 과하면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된다.
셋째 사위는 도박, 의처증,술,그 외에도 자기만 믿고 다른 사람의 말과 의견을 들을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악순환의 시작으로 인하여 그 셋째 사위의 아들도 그 저주의 검은 그림자를 벗어 날수가 없다.
그 아들은 그 아빠를 그렇게도 싫어하지만 그 아빠를 똑 닮아 가고 있고
어려서 부터 아빠에게 폭행을 당해서 머리가 좋은 편이 안되서 지금 하고 있는 사업도 점점 망하고 있고 직원 한명만 데리고 있다. 그는 엄마에게 전화하면 항상 "엄마, 돈줘" 그 엄마가 "없어" 라고 대답해도 소용이 없다. "빌려서라도 줘" "빌릴떼도 없어" " 나 죽어버릴꺼야" "알았어 송금해줄께 몇일만 기다려"
셋째 이모는 아픈 몸으로 일해서 송금해준다. 지금도 그렇게 생활하고 있고 아마 죽을 때 까지 이렇게 살것 같다.
유대인의 자녀교육에 대한 책에 보면 자녀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대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고 말한다. 외할아버지의 셋째 사위는 낚시를 좋아하고 도박을 좋아하여서 그의 아들은 놀고 먹는 것을 좋아하고 육체적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 왜냐면 그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아빠가 전부 다 탕진하여서 그 다음부터 아들까지 일하지 않게 되었다.
셋째 사위는 처음에는 좋은 아빠가 될려고 생각하였을까??
셋째 딸의 건강은 너무도 악화되가고 있어서 화장을 하지 않으면 죽은 사람처럼 꼴이 보기 흉해지고 있다.
하나님은 왜 인제서야 그녀의 자궁에 혹이 생기도록 했을까 ??? 더 빨리 생겼으면 덜 얻어 맞고 살텐데.
물론 혹이 빨리 생기면 건강도 악화되서 안 좋을 것이란것을 나도 알고 있지만,
그녀의 폭행을 보지 못하셨으면 말하지 마시라.
만약 당신이 매일 매일 억울하게 폭행을 당하게된다면 당신도 사는것보다 차라리 죽는게 낳다고 생각할것이다. 그 사람의 상황에 처하지 않고서는 그사람의 입장을 이해 할수가 없다.
그사람의 신발을 신어봐야 안다 -라는 말도 있다.
난 그런 상황이 너무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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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