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리뷰

신통한다이어리
- 작성일
- 2019.6.2
바다로 퇴근하겠습니다
- 글쓴이
- 이미진 저
생각정원
1.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나는 못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니라, 별로 못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었으니 미련은 없었지 않겠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 없이 젊은 날의 혈기로 그만둔 대가로 오는 재앙은 컸다. 이후로 다른 곳으로의 취직은 어려웠고, 일자리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 일자리를 구하기는 했지만, 정상적인 일자리는 아니었다. 그후로 나는 그때 일을 그만둔 나를 자책하면서 지내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때는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 모르지만, 그 선택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 그렇게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멀고 먼 길으 돌아서 나는 지금 여기까지 왔으며, 그리고 또다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렇게 멋지게 꿈꾸고 있는 나를 스스르 응원하기로 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 인간다움을 유지하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2.
"저는 혹시, 운동 다녀와도 괜찮을까요?"
"응? 점심 안 먹고?"
"네, 지하(구내식당)에서 간단하게 샐러드 먹으려고요."
"그래? 알았어."
'뭐야,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지구가 무너질 것만 같았던 내 걱정과는 달리, 막내가 점심을 같이 먹지 않는다고 해서 평화로운 점심시간에 갑자가 하늘에서 불기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구도, 나도, 선배들도 멀쩡했다.
- p.43
알고보면, 굉장히 어려울 것 같던 일도 쉽게 풀릴 때가 있다. 어디서부터 일을 처리해야 할지 모를 때도,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매듭은 풀어지고 그 문제가 풀려나감을 느낄 때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바다로 퇴근하겠습니다』이의 작가 미아에게도 처음에는 모든 게 어려울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하나하나 그의 삶에서 매듭을 풀듯, 풀어나가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그는 "서핑"이라는 아주 멋진 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서핑을 위해서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불안을 안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는 결국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긴다.
"충분히 그럴 만해요. 또 새로운 환경에 놓일 테니까. 그래도 나는 부러워요. 전에 1년간 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큼 좋은 시간들이 또 없더라구요.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봐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고, 행복할 자격 충분하니까."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진료실은 역시 신기한 공간이다.) 감사해요, 박사님."
"건강하게 돌아와요, 몸조심하고!"
박사님은 처음 만났던 날처럼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 충분히 있다. 이 말이 계속 맴돌았다.
- p.91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는 그녀. 그리고 나에게도 행복할 자격은 있다. 결국, 그녀는 그녀의 행복을 위해 떠났고,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글을 쓰기로 작정을 했다.
3.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파도도 늘 내 맘 같지 않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 조류의 흐름, 조수간만의 차 등등 모든 것이 파도의 모양과 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파도가 크고 조류가 센 날은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조심해야 한다.
- p.156
서핑을 하는데서도 삶의 굴곡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미아 작가에게도 현실에 닥쳐온 삶은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불안은 있다. 그 불안을 얼마나 받아들이냐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은 불안에 떨다 무너지지만, 어떤 이는 그 불안을 받아들이면서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불안에 무너지지 않는 내공은 어디에 있을까. 삶의 무게를 견뎌내면서 극복해야 헀던 많은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극복해 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떤 취미생활이, 때로는 어떤 특출난 장점이 불안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계기기 되는 게 아닐까. 미아에게는 서핑이 그러했다. 서핑이 그녀의 인생을 다르게 살게 했고, 그녀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Surfing, that ruined the life."
(서핑이 인생을 망쳤어.)
가끔 서퍼 친구들이 농담처럼 하던 말이다. 여기에 나는 이 말을 덧붙였다. "And that created the real one (그리고 진짜 인생을 만들었지)." 서핑은 말 그대로 내 인생을 망가뜨렸다. 그리고 진짜 내 인생을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서핑은 나를 현재에 잡아둔다. 거친 파도에 맞서고, 파도를 읽고, 파도와 호흡하는 그 순간만큼은 과거에 대한 미련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하얀 거품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서핑은 파도처럼 밀려왔던 내 삶을, 지금, 찰나뿐인 내 인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 p.196
4
힘들다고 아무 파도에 뛰어들거나 외롭다고 아무 인간이나 만나면,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물론 좋은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계속 반복되면 스스로가 지치고 만다.
나란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하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100퍼센트 장담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만큼 노력할 수 있으니까. 그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것만큼은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이 파도가 지나고 나면, 더 좋은 파도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분명 더 좋은 기회가 내 것이라고 찾아온다는 것을.
- p.189
『바다로 퇴근하겠습니다』는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내 삶도 비록 불안의 연속선상에 있기는 하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내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어주었으니. 미아 작가가 서핑이란 꿈을 꾸듯, 불안 속에서도 행복해하듯, 나 역시 불안 속에서 행복해하는 법을 배운다.
나는 이제 안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여유있는 삶이 꼭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것을. 아무리 돈이 많이 있고 아무리 유명해도 불행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도 꽤 많다는 것을. 그리고 스트레스가 없지도 않다는 것을. 조금은 부족해도 조금은 여유가 없어도 조금은 불안해도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나는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바다로 퇴근하지는 않지만, 바다가 보이는 사진이 가득했던 『바다로 퇴근하겠습니다』를 보면서 나는 새로운 행복을 느낀다. 참 아름다운 이 세상, 집으로 퇴근하는 그 순간이 내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생각정원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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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