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HERO
- 작성일
- 2008.4.20
눈먼 자들의 도시
- 글쓴이
- 주제 사라마구 저
해냄
내가 '눈'을통해 바라보고 있는 이 모습들과 '진실'이라 부르고 있는 '진실'들의 벽을 짚고 있는 기분이다. 처음 서점에서 흘깃 보고 지나치며 짐작했을 때, 눈먼 사람들만 있는 도시를 상상하는 건 별거 아닌 일 같았고 다소 진부한 이야기와 그에 어울릴 사회적 메세지를 담고 있을 것 같다며 가벼이 여겼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내게 엄청난 마음의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20대의 첫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내게 사소해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어렸을적 꿈꿔왔던 반짝반짝한 20대가 아닌 현실을 마주함에 숨가쁨을 느끼고 있던 터라, 대개 희망적인 모습을 통해 힘을 얻게 만드는 것과는 달리 애써 아닌듯 숨기며 사는 무시무시한 이면의 진실들을 아무렇지 않게 표현하여 말로는 다 설명못할 것들을 느끼게끔 해주는 또다른 기분을 갖게 해준 것이다.
이 책은 ','와 '.' 그리고 '글씨'로 이루어져 있다. ' 뭐 이렇게 불친절한 책이 다 있담..' 생각했지만 작가의 어떤 의도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내내 눈뜬 장님의 기분을 느꼈다고나 할까? 일반 책들과 달리 친절함이 없는 이 책은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읽었던 곳을 다시 읽기도 하고 읽다가 인물간 대화에 혼동을 느끼기도 한다. 버젓이 두 눈을 가지고도 헤매는 꼴이 우스웠다. 물론 인물간 나누는 대화를 이해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묘한 기분과 함께 내가 세상을 바라볼때 선입견에 갇힌 편협한 마음으로 바라보진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변화에도 이해하는데 있어 큰 '다름'을 느끼는데 하물며 인간사,인간관계라고 다르겠냐 싶은 마음에 말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잠깐 눈 감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 이것만으로도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 말 다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나는 감히 이 소설이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섬뜩하다고 말하겠다. 첫장부터 서서히 다가오는 백색실명의 공포. 작가는 어떤 잔인한 표현을 통해 독자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보다 물이 서서히 스며들듯 조금씩 조금씩 공포가 배게 한다. 갑작스레 찾아온 눈부신 실명은 한사람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눈이 멀게 만든다. 오직 안과의사 아내만을 제외하고. 눈이 멀었다는 표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들은 실명아닌 실명을 겪게 된다. 실명이 되기 전의 사람들은 실명된 사람들을 피하기 급급했고 그들을 격리수용하기에 이른다. 그 안에서 겪는 추악한 인간의 모습-누군가에게 보여질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됨으로써 드러나는 인간의 감추어진 본능-. 정말 평범하던 사람들인데 어떤 조건의 변화로 폭력,강간,살인을 일삼게 된다. 그런 인간성을 잃은 모습 가운데 인상적이였던 것중 하나가 그 격리수용 된 곳에서도 총을 가진 이들이 그것으로 사람들을 휘두르려 했다는 것이다. 눈이 먼 사람들끼리 있는 가운데에서 조차 인간 개인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권력욕, 그리고 도덕성의 상실. 또한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금에 일어나는 일들과 책 속 눈이 멀어버렸을때 나타나는 경악을 금치 못할 일들이 어느정도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는 것에 한숨이 나왔다. 작가는 정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책을 읽고 일어나는 '어떤'것을 다 쏟아내질 못하겠다. 그냥 그 느낌만이 계속 맴돌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눈에 보여지는, ‘보고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에만 열중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을 가꾸는데에만 열중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이루고 싶어하던 꿈들을 잃곤 한다. 의사 아내가 보여준 어떤 희생, 그리고 추악한 인간의 본능들이 흐르는 공간속에서도 옅은 희망 한줄기를 붙잡고 끝까지 함께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통해 삭막한 요즘에 잊고있던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의사의 아내는 모두 시력을 잃고 자신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그 순간에 개인만의 ‘눈’이 아닌 모두의 ‘눈’이 되어 주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은 그녀가 부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 소설에서 가장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던 사람이 의사아내라는 걸 느꼈다. 상상도 할 수 없던 행동들을 본능에 이끌려 일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 소설엔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작가는 의사아내라는 사람들 통해 어두운 이야기 속에 희망을 계속 조금씩 남겨두었던 것 같다. 눈먼 사람들 가운데 눈뜬 사람이라는 어찌보면 가장 행복할 것 같지만 가장 불행한 그녀를 통해 더 늦기 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잊고있던 진정한 일상을 찾으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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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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