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꼬리를 무는 책 이야기
힐씨쨩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7.6.20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아~ 엄마" 라는 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책들을 떠올렸지요.
작가의 삶에서 어머니는 각별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머니를 그려왔고, 꼭 한 번은 어머니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윤석남의 어머니는 어떤 인물이었기에 반복해서 작품에 등장한 것일까? 그녀의 어머니 이름은 원정숙, 19세에 윤석남의 아버지 윤백남과 결혼했다. 윤백남은 일본 유학을 다녀와 식민지 시대와 해방 후 소설, 연극, 영화계에 몸담아 온 문화예술계의 원로였다. 문학을 좋아하는 앳된 하숙집 딸이던 어머니와 집안에서 정혼한 부인과 별거 중인 중년의 소설가로 만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만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위의 두 언니에 이어 셋째 딸로 태어난 윤석남은 부모님의 아들 소망 덕에 사내 남(男)자가 든 이름을 얻게 된다. 그러나 부모님은 아들과 딸을 동등하게 대해주셨고, 특히 그녀는 아버지의 기대를 받고 자랐다. 하지만 그녀가 열다섯 살 때 아버지는 예술에 대한 열정만 물려준 채 변변한 재산도 없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때 어머니의 나이가 서른아홉이었다. 몸밖에 가진 것이 없던 어머니는 그 후 몸으로 할 수 있는 온갖 노동과 행상으로 가계를 꾸리며 일곱 남매를 훌륭히 키워냈다. 신세 한탄이나 푸념을 늘어놓을 만도 한데 어머니는 그러지 않으셨다. 오히려 고된 일과 후에도 자식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며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몸소 실천하며 자식들이 자긍심을 잃지 않게 지켜주셨다. 작가는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깊은 사랑과 삶에 대한 용기에 감사하고 존경을 표하며, 모성에 내재한 실천적 힘과 가부장제의 질서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윤석남의 미술과 여성 이야기 중.
출처 : http://yunsuknam.com/zboard/zboard.php?id=text&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
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제 어머니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게 되었다고 고백해봅니다. " 아, 엄마도 그때 이러셨겠구나. " 하면서 말이죠. 크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인 " 너 같은 자식 낳아봐라. " 라는 말을 왜 하셔야 했는지도 이제야 알겠습니다. 이제서야 제 어머니의 '엄마가 아닌' 모습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더군요. 우리 엄마도 OO엄마가 아니라 OOO씨 라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제가 OO엄마라고 불리면서야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그 마음과 통했던 그림책입니다.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 하나입니다.
엄마의 초상화 유지연 글/그림
책을 펼치면 왼쪽 페이지와 오른쪽 페이지의 이야기가 비교되며 흐릅니다. 왼쪽은 "엄마"의 이야기고, 오른쪽은 "미영씨" 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엄마(왼쪽) 그리고 미영씨(오른쪽)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다시피 두 인물은 같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표정도, 분위기도 다릅니다. 판화 같은 느낌의 절제된 색의 왼쪽 페이지와 화려한 채색의 오른쪽 페이지가 서로 대비되지요.
" 익숙한 엄마의 모습 속에는 낯선 미영씨도 살고 있어요"
왼쪽 페이지의 엄마는 파마머리로 성긴 세월을 감추고, 손은 바짝바짝 메말라있으며, 일상은 지루해보입니다. 반면 오른쪽 미영씨는 꺼지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멋진 모자로 성긴 마음을 감싸며,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이렇게..
"내가 아는 엄마의 모습 뒤엔 상상치도 못할 미영 씨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더라구요. 이제서야 제대로 마주한 제 어머니는 정말 열정이 넘치고 다재다능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함께 살고 있던 동안에는 엄마는 그저 엄마였지요. 언제까지나 제가 편히 쉴 수 있는 집이라고 생각했지요. 엄마로서의 역할을 힘들어하신 건 아니지만 때론 엄마가 아니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죠.
" 엄마는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집이지만
미영 씨는 집이 아니고 싶을 때도 있을 테니까요 "
" 엄마는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자랑스러워하지만
미영 씨는 내가 그린 초상화를 좋아하지 않았아요. "
표지에는 두 여성이 있습니다. 서로 닮았죠. 모녀 사이인 듯 하지요.
표지에 함께 붙어있는 종이를 슬쩍 옆으로 밀면 또 다른 인물, 여자아이가 등장하는군요.
한 아이가 태어나 맘마라고 엄마를 부르기 시작해서, 제대로 엄마라고 발음하고, 그리고 한참동안 엄마, 엄마, 엄마를 외쳐댑니다. 책의 본문에는 엄마라는 단어 밖에는 나오지 않는 답니다. 그러나 우리도 누군가의 딸, 아들이기에 책 속 아이의 성장과정을 따라가며 "엄마" 를 부르는 감정, 목소리 톤이 저절로 맞춰지게 되더라구요.
큰 글자로 쓰인 "엄마!" 에 담긴 짜증이 느껴지시려나요.
( 아... 저도 기억납니다. 엄마가 제 일기를 읽다가 들켰을 때의 분노. 짜증! 저도 꽤 소리를 질러댔더랬죠. )
엄마의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어느날 돌아가셨을 때 부르는 "엄마.." 의 글자는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습니다.그 그리고 책 속 아이가 첫 페이지 엄마의 나이처럼 보일 때 누군가 옷을 잡아당깁니다. 그리고 다시 들리는 소리.
아이에게 읽어줄 때는 따뜻한 마음이 가득 퍼지는 것을 느낀 그림책이죠. 그런데 저 혼자 찬찬히 읽고 있다보면 살짝 불편함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성인 (여성) 독자로서 그림책을 접하시는 분들 중에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제가 불편하게 느꼈던 점이 오나 도나스 [엄마됨을 후회함] 에 잘 나와있더군요. 한 리뷰를 링크해볼께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9769
... 엄마들에게만 모성성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문화는 국경을 건너서도 일치한다. 이런걸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하는 걸까. <중략>
" 여성들은 엄마로서의 삶을 후회하는 것이지 아이 그 자체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고 뚜렷하게 구분짓는다. (..) 이 소망이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109쪽)
그녀들이 후회하는 '엄마 됨'은 단순히 아기와 엄마의 개인적인 관계가 아니다. '엄마 됨'이란 훨씬 더 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며, 그 전반의 과정에서 엄마가 된 여자의 내면부터 육체까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예컨대 피로에 지치고 찌든 엄마, 그래서 아이가 대충 빨리 자기를 바라는 엄마는 제대로 된 엄마가 아니다. 돌 이전의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직장에 복직하는 엄마는 모성성이 부족한 것이다.
<하략>
저도 종종 " 엄마됨을 후회한다" 라고 호기있게 외치기도 합니다. 밤톨군의 엄마인 것을 후회한다는 것이 아니라 밤톨군의 엄마로'만' 살고 있는 듯한 제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올때요. 그러기에 다시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 의 작가인 윤 작가님의 삶과 도전에 더욱 강한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 [나의 엄마] 가 조금 불편해진 이유일런지두요.
물론 윤 작가님처럼 모든 딸이 엄마와 사이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딸과 엄마사이는 뭐라고 꼭 짚어 말할 수 없는 애증의 관계인 듯 하지요. 때론 엄마와의 갈등, 때떄로 느껴지는 분노, 채워지지 못한 사랑 등으로 가슴 아파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엄마의 나르시즘이 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하면서 여러가지 사례를 들고 있어요. 흥미롭더군요.
그림책 한 권으로 주욱 뻗어가는 생각들이 참 많네요.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 를 함께 읽던 어떤 이는 펼쳤다가 덮었던 경험 때문에, 또 다른 분은 '다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불편함 때문에. 등등... 대부분 '어렵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저도 책장 속에서 한참 나오지 않던 책이기도 했죠. 그러나 윤석남 작가에 대해 들여다보고 그의 작품을 함께 보며 그림책 속 그림과 글, 그리고 그것들에 공명하는 제 마음 속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정리가 되는 듯 합니다. 한동안 이 그림책을 오래 들여다보게 될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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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