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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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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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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9.6 (67)
힐씨쨩

2024년 4월, 작가인 폴 오스터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은퇴를 앞둔 노교수 '사이 바움가트너'를 통해 사랑과 상실, 기억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소설 『바움가트너』는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장편소설로 남았고, 1주기를 맞아 소개되었다. 마침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가제본으로 읽어볼 기회가 되어 출간 전에 냉큼 읽었다. ( 비록 리뷰를 쓰는 지금 시점에는 이미 출간되었지만. ) 

소설은 노교수 바움가트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때 그는 열정적인 학자였고, 한 사람의 남편이었다. 시인이기도 했던 그의 아내는 지금은 그의 곁에 없다. 이야기는 바로 그 ‘부재’로부터 시작된다. 『바움가트너』는 이야기 구조로만 보면 단순하다. 아내 안나를 떠나보낸 지 10년. 바움가트너는 어느 날 다시 그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 '애도'가 아니라 '생각'이다.) 주인공은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이 죽었다는 것에 대해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p67) 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사소한 일상 속에서 아내에 대한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나고, 바움가트너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 애도와 재생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 그때야 그는 자신이 애나와 관련된 모든 일에서 얼마나 깊이 분열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중략>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 p67~68

아내와의 기억은 서사의 중심이라기보다 그가 매일 거니는 기억의 바다 같은 것이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다시 잊고, 또 다른 기억과 섞이며 자신도 모르게 휘청거린다. 그러나 그 휘청거림 속에서도 그는 계속 나아간다. 그가 애써 외면해왔던 상실의 감정은 '팔다리가 몸에서 뜯겨 나간' 것 같은 고통이다. 죽음과 슬픔을 지나온 사람이 더는 슬퍼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는 건, 남겨진 이들에게 가혹한 일이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살아내야 하는 사람의 시간 위에 고요히 눌러준다. 



?? 그날 오후 신들은 아직 젊은 자아가 왕성한 힘을 내뿜고 있던 아내를 그에게 탈취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그의 팔다리가 몸에서 뜯겨 나갔다. 네 개 전부, 팔 둘과 다리 두 개가 모두 동시에. 머리와 심장이 그 습격에서 살아남은 것은 그저 삐딱한 마음으로 히죽거리기나 하는 신들이 그에게 그녀 없이 계속 살아도 좋다는 의아스러운 권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인간 그루터기,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었던 반쪽을 잃어버리고 반쪽만 남은 사람인데, 그래, 사라진 팔다리는 아직 그대로이고, 아직 아프다. 너무 아파서 가끔 몸에 당장이라도 불이 붙어 그 자리에서 그를 완전히 태워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p37

작가는 주인공의 감정의 소용돌이와 그로 인한 내면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아내가 남긴 글과 바움가트너 자신의 여행 기록들을 중간 중간 등장시키면서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기억과 이야기로 남는지 보여준다. 

폴 오스터의 전작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메타픽션이나 현실과 허구의 경계 허물기 등의 포스트모던적 장치들에 대해 언급되고는 한다. 나는 일반 독자로서 『뉴욕 3부작』 으로 폴 오스터를 처음 만났고, 이후 에세이 『낯선 사람에게 말걸기』, 자서전적 소설 『빵 굽는 타자기』 정도만 읽었던 터라, 이 작품이 '포스트모던적 장치들을 과감히 덜어내고, 초기작에서 볼 수 있었던 실험적이고 구조적인 장치 대신 훨씬 더 현실적이고 담백한 문제와 전개를 보여준다' 라는 식의 전문가 분석은 오히려 전작(全作)읽기를 해보고 싶은 도전의욕을 불태우게 하기도.

작가의 유작이었음을 미리 알았기에, 주인공이 아내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상실의 아픔과 그 너머의 아름다움,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의미들을 함께 생각해보았다. '노년의 작가가 삶과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남긴 절제된 감정과 사유' 에 집중하며 읽다보면, 삶의 끝자락에서 작가가 도달한 깊은 사유와 감정의 결이 잔잔한 물결처럼 겹겹이 스며든다. 

폴 오스터는 언어의 장인이였으며 그에게 문장은 세상을 정리하는 도구였다. 또한 자신을 은근하게 인물 안에 심어두는 데 익숙한 작가다. 그러나 작가의 분신처럼 느껴지는 주인공은 슬픔은 말로 끝나지 않고, 사랑은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리움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평생 데리고 가는 감정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듯 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문장을 쓰고, 반복해서 자신에게 되묻고 있다. 『바움가트너』는 남겨진 자가 문장으로 자기 자신을 쓰다듬는 방식을 보여주는 듯 했다. 

소설의 제목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도 된다. 바움가트너(Baumgartner)는 "정원사"라는 뜻의 독일어 성씨다. 바움(Baum)은 독일어로 "나무"라는 뜻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의 정원 속을 거닐듯, 과거와 현재, 아내와의 추억, 기억과 삶, 그리고 삶의 단편들을 하나씩 되짚어가는 과정이기에 주인공의 이름이자 소설의 제목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바움가트너 #폴오스터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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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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