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톨군의 책
힐씨
- 작성일
- 2015.9.21
조개맨들
- 글쓴이
- 신혜은 저
시공주니어
이번 달의 신간들을 주욱 훑어보다가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OO맨"(들) 이야기인가?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습니다. 조개맨? 그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라고 생각했지요. 표지를 보며 얼핏 일본작가 다시마 세이조를 떠올리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달려 토토」/(보림) 에서 역동적인 일러스트에 큰 인상을 받았던 조은영 작가의 신작이었네요. 덕분에 그림에 먼저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 엉뚱한 제목을 생각했던 저를 당황하게 합니다. 들판 가득 하얗게 조개껍데기로 덮여있는 이 곳의 이름이 「조개맨들」이었던거군요. 실제로 강화군 교동면 대룡리 흔다리 서쪽에 있는 들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조개맨들
신혜은 글, 조은영 그림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 47
50쪽 | 516g | 230*310*15mm
시공주니어
주인공 영재가 사는 집으로부터 걸어서 한 시간 거리. 그렇지만 영재에게는 이 조개맨들은 정말 소중한 곳입니다. 아빠와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많은 추억으로 가득하거든요. 여름에 이 길에 피어있는 보라색 붓꽃에 감탄하는 영재에게 아빠는 '붓꽃보다 우리 영재가 백배는 더 예쁘다고' 말해주지요. 영재의 아빠는 못 고치는 시계가 없어서 마을 사람들이 몇 번씩 감사의 인사를 하는 존재랍니다. 아빠가 일하는 방 앞에서 놀면 영재를 보고 웃어주기에 늘 그곳에서 노는 영재입니다. 아빠의 팔에 매달려있는 영재가 정말 신나보입니다.
손재주가 좋은 아빠는 영재에게 밤나무로 신발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춥게 잠들지 말라고 서울 나들이 길에 턱받이 이불도 사다 주었습니다. 영재는 이렇게 아빠의 사랑 듬뿍 받으며 쑥쑥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 밖에선 전쟁이 났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영재는 천진난만하게 "엄마, 빨리 감자 쪄 먹고 우리도 피난 가자" 라고 말하죠. 영재는 엄마의 얼굴이 새하얘졌다고 느낍니다.
위 페이지는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았던 흥남부두에서의 철수작전이 떠오르는 장면이었습니다. 부두에도, 배에도 모두 피난민들이 가득합니다. 밤톨군에게 흥남부두대탈출은 꼭 이야기해주고 싶었다죠. ( 세월이 흐르며 윤색된 부분이 있을수는 있겠지만 ) 민간인의 철수를 돕기 위해 군인들이 작전용 중장비를 수송선에서 내려놓고 그 공간에 더 많은 피난민을 태워 구해낸 사실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큰 감동을 줍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전쟁에 마을은 피난민으로 가득 차고 아빠도 이모부도, 외할아버지도 인민군에게 끌려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빠, 어디 계세요?" 라고 불러보는 영재. 그림책은 그림일기 형식으로 이야기를 담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색과 표정을 달리하는 바다와 들을 영재의 시선에서 그려내주고 있습니다. 그림작가 특유의 강렬한 터치와 굵고 거친 색감으로 펼쳐 보인 영재의 이야기는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아빠. 이모부도 제대하고 돌아오셨는데.. 엄마는 매일매일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 놓고 기다리시고 영재는 동생들과 아빠를 기다리며 웁니다. 그 슬픔에 그림은 색을 잃은 듯 보이네요. 이 이야기는 글 작가의 시어머님이신 황영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6.25 전쟁 때 헤어진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하신 어머님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내었다고 해요.
영재는 기다리고 기다리다 아빠 없이 조개맨들에 갑니다.
아이는 전쟁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하지만 전쟁으로 인하여 가슴에 품게 된 묵직한 슬픔에 대해 밝고 천진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동발달 전공의 아동심리학자인 글작가는 '그림책 치유'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그림책심리학자로 '신혜은의 그림책 심리학과정 ' (http://cafe.daum.net/PrimingPicturebook) 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시미 산도, 조개껍데기도 그대로인데" . 목이 메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듯한 말. 제 귀에는 "아빠, 어디 계세요." 라고 외치는 주인공의 마음속 말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지금도 조개맨들에 서면 여전히 "영재야~" 하고 자신을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주인공의 독백에 코 끝이 시큰해질 수 밖에 없네요.
밤톨군은 제가 자랄 때보다는 전쟁에 대하여 짧게 배운 듯 합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도 어린시절 6월이 되면 6/25 전쟁에 대한 많은 사진을 보고, 노래도 많이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산가족을 찾는 방송도 보며 함께 울었던 세대이기는 하지요. 아이와 함께 전쟁에 대해서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주위의 많은 꽃들을 두고 남이 가진 작은 꽃 하나를 빼앗으려다 시작된 전쟁은
결국 모든 것을 없애버리고.
▷ 니콜라이 포포프의 「왜?」/ 현암사
평화로이 일하면서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일구어 잘 살게 되자,
자신의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군인을 고용하고,
남의 땅을 빼앗고 힘을 써보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며,
보초가 잘 못 날린 화살에 큰 싸움이 벌어지는가 하면.
▷ 데이비드 매키의 「여섯 사람」/ 비룡소
권력자인 왕의 콧잔등에 새똥이 떨어진 것을 보고 웃자 시작된 전쟁 때문에
백성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싸우고 싸우다 마주 서고 보니 서로의 아이들이 다른 편에 서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요.
오래 전부터 어른들은 아이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겁니다.
▷ 에릭 바튀의 「새똥과 전쟁」/ 교학사
아이들은 서로를 향해 달려나가 함께 어울려 놉니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두 왕을 위해 백성들은 장기판을 마련해주지요.
이제 두 임금님들은 장기판 위에서 전쟁을 벌입니다.
( 현실도 이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전쟁의 무서움과 슬픔을 이야기해보기 위해 모아서 읽어보았던 '평화 그림책' 모음에 이 책도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직접적으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주인공 영재로부터 전해오는 슬픔으로부터 전쟁의 아픔과 무서움을 느끼게 된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쟁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의 다른 전쟁으로 인해 아픔을 겪는 다른 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터키의 바닷가에서 죽은 시리아 난민 세살배기 쿠르디가 불러온 반향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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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