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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0.12.26
성당 평전
- 글쓴이
- 우광호 외 1명
시공사
이 책을 읽고 난 후, 당장 이탈리아로 떠나고 싶어졌다!
성당을 중심으로 따라가는 아주 특별한 유럽 문화 기행!
언젠가 이탈리아 여행 가이드북을 읽다가 나는 하나의 사진을 보고서 감탄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바로 밀라노를 대표하는 건축물, 밀라노 대성당 때문이었다. 135개의 첨탑과 3천 개가 넘는 조각상으로 화려함과 세련미를 갖춘 밀라노 대성당은 이제껏 본 성당 중에 단연 인상적이었다.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인데도 나는 밀라노의 대성당이 갖춘 위용과 경이로움에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평소 유럽 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중심의 여행을 생각하곤 했었는데,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성당이야말로 유럽 여행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당이 고결한 것은 건축물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위대한 티끌들이 수백 년 공들여 빚어낸 삶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 7p
『성당 평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성당이 위대한 이유는 소박함과 화려함, 고난과 영광, 혼돈과 질서로 가득한 유럽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아주 특별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피렌체, 나폴리, 베네치아, 바리, 밀라노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성당 80곳을 따라가는 이 여정은 살아 숨 쉬는 유럽 문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에 가깝다. 즉, 성당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양한 건축 양식이나 기법뿐만이 아니라 각 성당의 유래와 그곳에 얽혀 있는 사연, 유럽인들의 신앙과 유럽사의 관계를 엿보는 일이다. 무엇보다 성당에는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이 깃들어 있다. 유아세례는 인간이 공동체로 진입하는 의식이자 삶의 출발점이며 축제의 장이었고, 서민들은 일상의 대소사와 나라의 위기 극복을 위해 이곳에서 하나로 기도했으며, 죽은 이의 대한 마지막 예도 바로 이곳에서 함께 했다. 이처럼 성당에 깃든 옛 유럽인들의 삶과 이야기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유럽인들의 땀과 기도로 쌓아 올린 성당의 역사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곰브리치 세계사』에서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중세가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이라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시대는 아침에 비유할 수 있다.” 14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경건하며 풍부한 지식과 합리적인 교양을 갖춘, 돈 많은 신흥 엘리트 계급이 피렌체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이때 피렌체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르네상스 문화와 예술, 건축이 꽃피게 되었는데, 그 맨 앞에 피렌체 대성당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있다. 당시 피렌체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성전을 건축하기로 결심했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캄비오를 총지휘자에 맡기면서 시작은 활기차게 출발했다. 그러나 6년 후에 캄비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흑사병이 창궐하는 바람에 무려 1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꽃의 성모 마리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비록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기도가 차곡차곡 쌓인 결과물이었기에 피렌체인들은 이 성당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에서 시작해 구약성경 10대 명장면을 표현한 이 문은 청동 바탕에 금박을 입힌 것으로 초기 양식의 르네상스 한 획을 긋는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보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며 감동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래서 이 문은 지금까지 ‘천국의 문’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세례당의 문은 복제품으로, 진품을 두오모 미술관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세례당의 볼거리는 ‘천국의 문’ 하나가 아니다. 세례당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과 둘레가 온통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그 황금빛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 그리고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응답 역사가 쏟아진다. / 32p
여러 성당들 중에서도 인간의 절망과 희망, 좌절과 용기, 무기력과 삶에의 의지를 동시에 담고 있는 성당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다. 성당 이름에 좀처럼 붙지 않는 ‘살루테’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건강’을 뜻한다고 한다. 도대체 왜 성당 이름에 건강이라는 의미를 붙인 것일까. 여기에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 최초의 흑사병이 1348년부터 1350년까지 전 유럽을 휩쓸었고, 전체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했다. 베네치아에도 흑사병이 강타하면서 공포심이 극에 달한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신앙뿐이었다. 하지만 전염병과 관련한 수호성인 성 로코를 모신 성당을 지었지만 효과가 없었고, 마지막으로 의지처를 삼은 이가 성모 마리아였다. 그렇게 해서 50년에 걸쳐서 완공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에는 여기저기에서 성모 마리아를 볼 수 있다. 제단을 비롯해 곳곳에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성화와 석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면면에서 우리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얼마나 흑사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전구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과거 베네치아인들처럼 페스트가 휩쓸고 있었을 때 레체 사람들은 성 푸블리오 오론초에게 전구를 청했다. 성 푸블리오 오론초는 레체와 오스투니에 처음 그리스도교 신앙을 심어준 인물로 레체 사람들은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간절히 기도했고 그때마다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에도 1백 일 넘는 기도가 끝나갈 즈음, 기적적으로 페스트가 사라진 것이다. 때문에 레체 사람들은 이후 도시 곳곳에 성인의 동상과 기념물을 세우고 그를 통한 기적을 기억했다. 몬테로소 사람들 역시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카푸친 수도원 성당을 찾아가 영적 위안을 얻었다. 질병으로 고통 받을 때도, 먹을 게 없어 힘들 때도 그들은 수도원을 찾았다. 그렇게 되찾은 힘을 동력 삼아 몬테로소 사람들은 다시 세상으로 내려갔다.
나는 다른 곳들을 그 앞에 세우고자 한다.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산 마르코 미술관을. 왜? 대성당과 피렌체 내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장식했던 미술품들이 모두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피렌체의 그리스도교 신앙유산은 우피치가 아닌 이 두 박물관에 모조리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우피치만 가고,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산 마르코 미술관을 가지 않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실제로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산 마르코 미술관은 신앙의 도시 피렌체의 자부심이다. / 60p
이 외에 서민 성당으로 낡은 겉옷을 입은 듯 겉은 소박하지만 마초가 그린 <낙원에서의 추방>, <성전세> 등 미술사 최고봉의 작품들로 내면은 탁월함을 품고 있는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한 도시에 두 개의 유력가문이 자존심 경쟁을 벌인 끝에 무려 1백여 개에 달하는 탑을 쌓아올림으로써 자신이 더 위대하다는 욕망을 증명하려 했던 산 지미냐노, 1천 년 전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절실한 희망이었던 중재자 모세를 기억하며 광야의 고통을 버틸 수 있게 했던 산 모이세 성당 등 이탈리아 성당들은 아주 오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아름다운 생명력을 지닌 채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안드레아 사도는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그 어떤 육체적 고통도 영적인 황홀함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안드레아는 고통의 신비 안에서 복음을 당당하게 증언했다. 영광의 신비, 빛의 신비만이 진정으로 도달해야 할 의미라고 설파했다.
(…)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예수의 옷자락을 잡았을 손, 예수와 함께 식사를 나눴던 그 몸 아닌가. 안드레아 사도의 몸을 빌려 2천 년 전 예수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복이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많은 언론이 아말피를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명소’로 선정했다는데, 뜬소문이 아니었다. / 183p
성 니콜라오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 둔갑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성 니콜라오의 이야기가 전설로 이어져오면서, 이후 유럽에는 성 니콜라오 축일(12월 6일)에 자선을 실천하는 전통이 자리 잡는다. 이 풍습이 신대륙 발견 이후 네덜란드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파된다. 네덜란드인들은 가톨릭 주교인 성 니콜라오를 ‘산테 클라스’ 즉 ‘자비로운 요술쟁이’라고 불렀고, 이 말이 영어 ‘산타클로스’가 됐다. 또 산타나클로스의 복장은 가톨릭 주교 복장에서 유래하는데, 현재 우리가 아는 모습은 1931년 코카콜라 광고 그림이 시초라고 한다. / 308p
『성당평전』을 통해 이탈리아 곳곳을 누비다보면 성당이라는 건축물이 유럽의 문화 그리고 역사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간 성당이라고 하면 신에게 가 닿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화려함에만 주목했던 나로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곧 우리가 하나의 건축물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성당평전』은 이탈리아의 성당을 따라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지만, 다양한 상식과 유럽 역사에 관한 통찰력 그리고 신에게 소망함으로써 삶을 구원하고자 했던 시민들의 간절함을 읽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책이다. 새로운 희망을 향한 염원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에, 얼마나 믿음과 의지를 쏟고 있을까. 이 책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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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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