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현답
- 작성일
- 2017.4.26
벙커 다이어리
- 글쓴이
- 케빈 브룩스 저
열린책들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다면 극한 공포에 떨며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거리를 배회하며 노숙자 생활을 하던 열여섯 살 소년 라이너스가 바로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소설은 바깥세상과 철저하게 차단된 벙커 안에서 두 달 간의 라이너스의 시선으로 바라 본 지옥 같은 생존이야기를 그렸다.
벙커 안에는 6개의 방이 있다. 라이너스가 최초로 들어왔고, 이후 5명이 더 채워져야 할 것을 암시한다. 며칠 후 5명의 사람들이 차례대로 납치되어 벙커에 도착한다. 아홉 살 여자아이 제니, 경영컨설턴드 버드, 마약중독자 프레드, 부동산업자 아냐, 흑인 물리학자 러셀이다. 이렇게 총 6명이 원치 않던 동거를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윗층 남자에게 모든 행동과 말을 감시당하면서 벙커 안에서의 삶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벙커 안에 걸린 시계만으로 하루의 흐름을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더 이상 희망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중 라이너스만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추리를 하며 자신의 생각을 일기에 꼬박꼬박 기록을 한다. 마치 생각하는 사람만이 인간으로서 존재가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원하는 것을 알아낸다. 혼돈이다. 6명이 벙커 안에서 맞닥뜨리는 상황들을 보며 즐기는 <그>는 그러다 막판에 혼돈에 빠지는 상황을 원했던 것이다. 이에 굴복하고 싶지 않은 라이너스는 결국 탈출을 시도한다. 실패를 거듭하며 더욱 위험에 빠지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 즐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과연 라이너스는 탈출을 할 수 있을까?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해 폐쇄적인 공간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잃어가는 과정이 파격적으로 그려져 있다. 역시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그런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며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고, 순수함을 간직한 아이지만 어른처럼 보이는 열여섯 살 라이너스는 생존을 향한 집념을 불태웠다. 라이너스는 한정된 환경 속에서 의도적인 변화를 꾀하며 존재의 의미를 잘 부각시켰다. 라이너스를 보며 인간은 곧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어둠, 공포, 살인이 주를 이루어 흘러가는 이야기에 섬뜩함과 긴장감을 느끼며 읽었다. 그렇다고 공포소설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단순한 무섭기만 장면을 연출한 것이 아니라 공포라는 감정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인간의 욕구와 존재가치를 다뤘기 때문이다. 왠지 철학적인 요소가 배어있는 소설 같았다. 다만 사람들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안타까움이 짙게 베었고, 특히 한창 뛰놀 아홉 살 여자아이 제니의 죽어가는 과정은 마음이 아팠다. 강한 인간인 것 같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라이너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탈출을 했을까? 작가는 결말을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버렸다. 책 뒤에 남겨진 몇 장의 빈 여백에 나만의 상상력에 맡겨 소설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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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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