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호푸
- 작성일
- 2018.5.31
모든 게 노래
- 글쓴이
- 김중혁 저
마음산책
김중혁 작가의 산문집. 이번엔 노래다.
영화로 <대책 없이 해피엔딩>과 <뭐라도 되겠지>(이 책에는 영화, 드라마, 책 등 다양한 것들이 담겨있긴 하지만)를, 몸을 가지고는 <바디무빙>을 쓰더니, 이번에는 노래에 대해서 쓰고 있다. 다방면으로 대단하단 생각이...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공부를 했었다. 고등학교 때는 소형 라디오를 가지고 다니면서 들었고, 이어폰을 구입하기 위해 야자를 땡땡이 치기고 했던 것 같네. 그 때는 처음엔 귓가에 음악들이 맴돌다 어느 순간 모든 것들이 들리지 않았는데, 요즘은 집중이 잘 안되는지 뭘 들으면서 다른 일들을 하기가 힘들다. (잠 잘때 빼고)
그리고 예전에 일본 갔을 때 구입했던 MD. 그것도 한참 사용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으려나.
언젠가부터 음악보다는 팟캐스트를 듣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지난 10년간 제대로 된 언론을 접하지 못해서 였을까? 정보에 대한, 우리 편에 대한 굶주림 때문이었을까? 다시 음악을 들으려, 돌아가려하는데 조금은 어렵네. 밀린 숙제들이 많아서 음악을 듣는 것이 미안해지는 느낌이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폰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에피톤 프로젝트>를 들었다. 나름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예전의 그 모습(음악을 들으면서 책 읽고 공부하고 ...)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온 것 같지만, 책을 읽는 동안, 팟캐스트를 줄이고 다시 음악을 들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이젠 그런 세상이 왔으니깐.
그나저나 책에서 이야기하는 음악들 중에 아는 것들이 별로 없네. 그 동안 정말 음악을 멀리하면서 살았나보다.
계절은 음악의 스피커가 되어 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하고, 음악은 계절의 공기가 되어 향기를 더 잘 맡도록 해준다. (p.53)
'이해'라는 단어는 언젠가 완료될 수 있는 명사가 아니라 영원히 진행할 수밖에 없는 동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는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지만, 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위로'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됐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 (pp.93-94)
책에서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데이브 에거스의 흥미로운 생각을 읽었는데, 그 사람 말로는 "사람이 노래를 반복해서 재생하는 것은 그 노래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음악도, 사람도, 물건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정체성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사랑해) 그 사람에게서 알 수 없는 묘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풀기 위해(흠, 푼다니까 좀 야릇한 어감이 되어버렸지만) 반복해서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pp.99-100)
영화로 <대책 없이 해피엔딩>과 <뭐라도 되겠지>(이 책에는 영화, 드라마, 책 등 다양한 것들이 담겨있긴 하지만)를, 몸을 가지고는 <바디무빙>을 쓰더니, 이번에는 노래에 대해서 쓰고 있다. 다방면으로 대단하단 생각이...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공부를 했었다. 고등학교 때는 소형 라디오를 가지고 다니면서 들었고, 이어폰을 구입하기 위해 야자를 땡땡이 치기고 했던 것 같네. 그 때는 처음엔 귓가에 음악들이 맴돌다 어느 순간 모든 것들이 들리지 않았는데, 요즘은 집중이 잘 안되는지 뭘 들으면서 다른 일들을 하기가 힘들다. (잠 잘때 빼고)
그리고 예전에 일본 갔을 때 구입했던 MD. 그것도 한참 사용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으려나.
언젠가부터 음악보다는 팟캐스트를 듣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지난 10년간 제대로 된 언론을 접하지 못해서 였을까? 정보에 대한, 우리 편에 대한 굶주림 때문이었을까? 다시 음악을 들으려, 돌아가려하는데 조금은 어렵네. 밀린 숙제들이 많아서 음악을 듣는 것이 미안해지는 느낌이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폰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에피톤 프로젝트>를 들었다. 나름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예전의 그 모습(음악을 들으면서 책 읽고 공부하고 ...)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온 것 같지만, 책을 읽는 동안, 팟캐스트를 줄이고 다시 음악을 들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이젠 그런 세상이 왔으니깐.
그나저나 책에서 이야기하는 음악들 중에 아는 것들이 별로 없네. 그 동안 정말 음악을 멀리하면서 살았나보다.
계절은 음악의 스피커가 되어 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하고, 음악은 계절의 공기가 되어 향기를 더 잘 맡도록 해준다. (p.53)
'이해'라는 단어는 언젠가 완료될 수 있는 명사가 아니라 영원히 진행할 수밖에 없는 동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는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지만, 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위로'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됐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 (pp.93-94)
책에서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데이브 에거스의 흥미로운 생각을 읽었는데, 그 사람 말로는 "사람이 노래를 반복해서 재생하는 것은 그 노래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음악도, 사람도, 물건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정체성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사랑해) 그 사람에게서 알 수 없는 묘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풀기 위해(흠, 푼다니까 좀 야릇한 어감이 되어버렸지만) 반복해서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pp.99-100)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