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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푸
- 작성일
- 2020.9.17
오후의 이자벨
- 글쓴이
- 더글라스 케네디 저
밝은세상
더글라스 케네디 장편소설.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 몇 권이 집에 있다. <빅 피처>, <템테이션>. 그리고 찾아보니 <더 잡>(http://blog.yes24.com/document/10783503)도 있네.
이번에 더글라스 케네디의 새 소설이 나왔다고 해서, 조금 고민하다가, 요즘 살만한 책도 별로 없어서 구입했다.
기억하기로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주인공을 한껏 쥐어짜다가 극적으로 회생시키는, 그런 류의 소설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 <오후의 이자벨>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다르다. 그 동안의 소설과는.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네.
일단 소설은 생각과 다른 방향이었지만, 스릴러는 아니었다는 말, 그렇다고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꽤 좋았다. 사랑, 외도, 불륜. 오히려 그런 것보다는 남자와 여자의 인식의 차이, 그리고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의 차이, 이런 것들이 더 와 닿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어쨌든 사랑 이야기. 또 어떻게 보면 철부지 같은 남자의 성장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몇 년 전이었다면 성장은 개뿔, 이자벨의 말은 그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마치 이 소설의 어린 샘처럼.
하지만 나이가 조금 더 들은, 지금은 이자벨의 말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경험이 쌓여서일까. 물론 샘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어릴 때의 남자의 생각은 거의 비슷할테니깐.
소설 속 이야기는 특별한 것은 별로 없다. 그런데 계속 읽게 된다. 빠져든다. 예상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의 나열이었지만 왜 자꾸 뒤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것일까. 아마도 똑같은 상황은 아닐지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또는 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소설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그런 경험이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경험, 그런 느낌이 이 소설에서 헤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오후의 이자벨.
오후 5시, 베르나르 팔리시 9번지. 사랑이 만들어지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아련한 기억들.
누군가에겐 그냥 그런 책일 수도, 또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이 생각나는 책일 수도 있는 그런 책이다.
만약 내가 샘이라면 달랐을까?
그리고 야한(?) 장면이 많아서, 책장 깊숙한 곳에 넣어 두어야겠다.
고통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건 아니야. 고통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 사이 어디쯤엔가 있는 마음상태일 거야.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행복이라는 성배가 찾아오리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혼란이다. 그 혼란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만 늘 현재의 처지에 만족해하며 즐거운 척하기를 바라지 마라.'하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지. (p.274)
인간은 얼마나 단순하면서 복잡한가? 어느 누구도 타인을 알수 없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 진실인가? 갈망하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최면에 빠지게 한 사랑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가?
호텔 방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흘깃 쳐다보았다. 이 끔찍한 순간, 정말이지 걷잡을 수 없는 상실감에 말할 수 없이 큰 허탈감을 느낀 이 순간에 뜻밖의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제 중년이네.' (pp.334-335)
'나는 당신이라는 사람을 완전히 알 수 없을 거야. 당신도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알 수는 없겠지. 인생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야. 인생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자기 자신이야.'
로리가 지금 내 옆에 있었다.
우리가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한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둠 속에 혼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전부가 아닌가? (pp.438-439)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 몇 권이 집에 있다. <빅 피처>, <템테이션>. 그리고 찾아보니 <더 잡>(http://blog.yes24.com/document/10783503)도 있네.
이번에 더글라스 케네디의 새 소설이 나왔다고 해서, 조금 고민하다가, 요즘 살만한 책도 별로 없어서 구입했다.
기억하기로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주인공을 한껏 쥐어짜다가 극적으로 회생시키는, 그런 류의 소설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 <오후의 이자벨>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다르다. 그 동안의 소설과는.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네.
일단 소설은 생각과 다른 방향이었지만, 스릴러는 아니었다는 말, 그렇다고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꽤 좋았다. 사랑, 외도, 불륜. 오히려 그런 것보다는 남자와 여자의 인식의 차이, 그리고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의 차이, 이런 것들이 더 와 닿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어쨌든 사랑 이야기. 또 어떻게 보면 철부지 같은 남자의 성장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몇 년 전이었다면 성장은 개뿔, 이자벨의 말은 그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마치 이 소설의 어린 샘처럼.
하지만 나이가 조금 더 들은, 지금은 이자벨의 말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경험이 쌓여서일까. 물론 샘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어릴 때의 남자의 생각은 거의 비슷할테니깐.
소설 속 이야기는 특별한 것은 별로 없다. 그런데 계속 읽게 된다. 빠져든다. 예상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의 나열이었지만 왜 자꾸 뒤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것일까. 아마도 똑같은 상황은 아닐지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또는 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소설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그런 경험이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경험, 그런 느낌이 이 소설에서 헤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오후의 이자벨.
오후 5시, 베르나르 팔리시 9번지. 사랑이 만들어지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아련한 기억들.
누군가에겐 그냥 그런 책일 수도, 또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이 생각나는 책일 수도 있는 그런 책이다.
만약 내가 샘이라면 달랐을까?
그리고 야한(?) 장면이 많아서, 책장 깊숙한 곳에 넣어 두어야겠다.
고통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건 아니야. 고통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 사이 어디쯤엔가 있는 마음상태일 거야.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행복이라는 성배가 찾아오리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혼란이다. 그 혼란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만 늘 현재의 처지에 만족해하며 즐거운 척하기를 바라지 마라.'하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지. (p.274)
인간은 얼마나 단순하면서 복잡한가? 어느 누구도 타인을 알수 없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 진실인가? 갈망하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최면에 빠지게 한 사랑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가?
호텔 방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흘깃 쳐다보았다. 이 끔찍한 순간, 정말이지 걷잡을 수 없는 상실감에 말할 수 없이 큰 허탈감을 느낀 이 순간에 뜻밖의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제 중년이네.' (pp.334-335)
'나는 당신이라는 사람을 완전히 알 수 없을 거야. 당신도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알 수는 없겠지. 인생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야. 인생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자기 자신이야.'
로리가 지금 내 옆에 있었다.
우리가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한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둠 속에 혼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전부가 아닌가? (pp.438-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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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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