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 출신의 할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봤다는 도깨비불과 모제르 권총의 도움으로 중국 공산당을 피해 대만에서 포목점을 하며 삶의 터전을 꾸려왔다. 할아버지의 신비한 무용담을 들으며 자란 주인공 예치우성. 17살이 된 어느날 가게에서 살해된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조금씩 실체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물고기가 말했다.

나는 물속에 살아서 

당신은 내 눈물을 볼 수 없어요."

-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류> 가운데

히가시야마 아키라(東山彰良)의 <류(流)>는 1970년대와 80년대 대만의 정치상황과 생활상, 중국과의 관계 변화 등이 녹아 있다. 예치우성의 파란만장한 청소년 시절, 군 입대, 사랑과 결혼이 함께 흘러 간다. 할아버지를 살해한 진범을 찾기 위한 추적은 그가 남긴 도깨비불, 모제르 권총과 함께 예치우성의 삶 한 구석에서 꾸준히 자리한다.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류>는 6.25 전쟁이 끝난 후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가족을 그린 이문열의 대작 <변경>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저마다 가진 사연이 가진 눈물-물고기의 눈물과 같을지라도-까지 헤아리게 한다는 점에서다.

청일전쟁 이후부터 대만을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과 환경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이 남긴 상처, 대만의 독재적 정치체제와 극심한 사회분열상 등이 "중화민국 만세!"를 읊는 구관조의 입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50여 년간 일본의 통치를 받은 대만이지만 '이상하게도' 일본을 좋아하는 분위기가 강한 이유역시 어슴푸레 느낄 수 있다.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그들' 공고히 구축해낸 세계. 예치우성의 가족, 친구, 연인은 조금씩 허물어지는 세상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며 더디더라도 진보한다. "우리 마음은 늘 과거 어딘가에 붙잡혀 있지. 억지로 그걸 떼어내려 해봤자 졸을 게 없단다."

조직폭력배지만 의리로 뭉친 샤오잔의 우정, 서로의 거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이별한 연상의 여인 마오마오, 자신과 지나치게 같은 모양의 아내 시야메이링, 허풍쟁이 삼촌 밍첸, 거리의 양아치이자 마오마오의 오빠 뚱보 등 등장하는 캐릭터의 조합은 책의 재미를 더해 준다.

<류>속에서 그들이 표현하는 대만의 모습 속에서 조금씩만 변형하면 우리네 과거가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온갖 소리와 냄새가 진동하는 대만의 거리로 우리를 데려가는 이 작품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과 사람, 공간을 이야기하는 듯하다"는 역자의 풀이에 공감하게 된다.(*)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