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를 읽고

동그란세상
- 작성일
- 2022.8.22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 글쓴이
- 나태주 저
열림원
풀꽃으로 유명한 시인의 시집을 읽는 것은 처음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집을 멀리하기도 했고, 내 시선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시의 깊이 때문이기도 했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시집에 싱그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제목이 너무 좋지 않은가?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1945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4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시를 써온 시인은 현재까지 150여권의 시집과 산문집, 그림 시집, 동화집을 펴냈다. 풀꽃의 선풍적인 인기로 풀꽃 시인이라 불리며 많은 상도 수상했다. 현재는 2014년부터 공주에서 나태주 풀꽃 문학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시집은 시인의 가장 최근 시들이 실려 있으며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그래도 괜찮아를 주제로 시들이 모여 있고, 2부는 너무 애쓰지 마라를 주제로 시들이 빼곡히 실려 있다. 3부는 지금도 좋아이고, 4부는 천천히 가자는 제목으로 시인을 닮은 시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평생을 시와 함께 산 시인의 입으로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큰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책의 시작에서 나오는 말처럼 가끔은 실수하고 서툴러도 너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란다는 말이 내게 하는 것처럼 들린다. 시가 시인의 바램처럼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들이 일으키는 푸른 바람 속으로 들어가 본다.
채송화
난쟁이 꽃/ 땅바닥에 엎드려 피는 꽃
그래도 해님을 좋아해/ 해가 뜨면 방글방글 웃는 꽃
바람 불어 키가 큰 꽃들/ 해바라기 코스모스 넘어져도
미리 넘어져서 더는/ 넘어질 일 없는 꽃
땅바닥에 넘어졌느냐/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나거라!
사람한테도 조용히/ 타일러 알려주는 꽃.
꽃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시인답게 시인의 눈을 통해 보는 채송화는 겸손을 말하고 위로를 말한다. 처음 나팔꽃을 보았던 때가 불쑥 떠올려지는 시다. 해가 뜨면 꽃잎을 펼치고 해가 지면 꽃잎을 오므리던 나팔꽃을 위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책에서 몇 줄의 글로 나오던 해가 뜨면 피고 해가 지면 오므린다던 나팔꽃을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 꽃이 단순한 꽃이 아니고 생명으로 다가오던 순간. 마당 다 덮던 시멘트 끝자락에 그 나팔꽃과 함께 색깔별로 피었던 채송화. 그 선명한 색깔을 무엇으로 표현할지 몰라 오래 들여다보던 꽃이었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노란색 빨간색 피던 채송화가 기억 속에서 불쑥 떠오른다. 기억의 저편 어딘가에 떠돌던 파편처럼 흩어졌다가 시를 읽는 순간 어제처럼 시간을 뛰어넘어 말을 한다. 그렇구나! 미리 넘어져서 더는 넘어질 일이 없는 꽃으로 우리에게도 조용히 타일러 주는 꽃으로 오래도록 살아남았구나! 형형색색 화려한 꽃들 속에서도 꿋꿋하게 소박한 아름다움을 품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만들면서 우리 주위에 가까이 그렇게 있었구나. 시를 읽으면 시를 통해 시인의 마음과 눈을 갖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오늘 말을 걸어오는 채송화처럼, 주위의 사람들을 하나의 꽃으로 보는 사랑의 눈을 가져야지 다짐해 보게 되는 아름다운 시다.
지지 않는 꽃
하루나 이틀 꽃은/ 피었다 지지만
마음속 숨긴 꽃은/ 좀 더 오래간다
글이 된 꽃은/ 더 오래 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꽃이 피고, 글이 꽃이 되는 아름다운 말과 사랑이 그리운 요즘이다. 오래 두고 사랑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시인의 시선이 꽃이 된다. 마음속 숨긴 꽃이 스스로 드러나서 그 향기를 풍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일깨우기를 기도하는 심정이 된다. 뉴스 속 넘쳐나는 사건 사고들을 모두 가리고도 남을 꽃들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타인을 향한 시선이 꽃이 되고, 말이 꽃이 되고, 글이 꽃이 되는 아름다운 이어짐이 생활 속에서 깨어나기를.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깨어나기를 바란다. 이미 갖고 있었던 아름다움과 존엄이 조용히 강력하게 깨어나기를 바라는 심정이 된다. 꽃이 된 글이 오래 지지 않아서 사람들의 얼굴 위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읽어 본다. 누군가에게 꽃이 되는 말과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
정말 모른다고 --이어령 선생
모른다는 말을 그는/ 평생 모르고 살았다.
모른다는 말은 그에게/ 수치였으며 패착이었으니까
인생의 종반에 가서야 겨우/ 죽음과 사랑에 대해서만은
모른다고 정말 모른다고/ 어린아이처럼 고백했다
가전제품 가게 주인이/ 골동품 가게 주인으로 바뀌는 순간
정말로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시인이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추억하면서 쓴 시중 하나이다. 이어령 선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어령. 살아있는 지성이라고 불리던 사람. 얼마 전 그렇게 고대하던 큰 따님을 만나러 먼 길 떠나신 분. 이름으로 유명한 분이었지만 이분을 가까이 느낀 것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고 난 후였다. 그 책을 통해 종교를 갖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래 화해하지 못했다고 하시던 큰 따님 이민아 목사님도 알게 되었다. 고작 책 몇 권으로 사람을 어떻게 안다고 말하겠는가 마는 그분의 마무리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의 탁월함을 느끼는 시이기도 했다. 그분의 이름 정도만 안다고 해도 시를 읽으면 아하하고 공감을 하게 된다. 모른 다는 말을 평생 모르고 살았다는 말. 죽음과 사랑에 대해서만은 모른다고 아이처럼 고백했다는 말이 누가 봐도 이어령 선생이지 않은가? 정말로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만이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 이어령이라는 이름과 함께 무게를 갖는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느라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모른다는 고백이 담담하지만 울림이 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자.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따지기 전에. 사소한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진솔한 관계를 만들고 싶다. 먼저 다른 사람의 무지를 비난하지 않는 내가 되는 것부터 실천하자.
오직 너는
많은 사람 아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너는 한 사람
우주 가운데서도
빛나는 하나의 별
꽃밭 가운데서도
하나뿐인 너의 꽃
너 자신을 살아라
너 자신을 빛내라.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갖게 되는 이름들이 있다. 누구의 아내, 엄마, 딸, 며느리 등등. 거기에 직장에서의 직급이 호칭이 되기도 하고, 모임에서의 호칭이 이름이 되기도 한다. 그런 많은 이름들 가운데 오직 나는 한 사람이다. 시를 읽고 뛰는 가슴으로 잠을 설치는 사람도 나고, 딸아이의 고민에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느끼는 사람도 나다. 피곤으로 집안일을 대충대충 마무리하는 것도 나고, 먹을 것을 참지 못해 기어이 과자를 먹는 것도 나다. 이런 나이지만 나 자신으로 살기로 결단한다. 누구의 평가나 인정, 비난에도 단단한 나로 살기로 결정한다. 존엄을 깨달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존엄을 일깨우며 살아가기로 선택한다.
이 시는 그런 나 자신의 선택에 강력한 응원이 되어 주었다.
마치 나를 위해 쓰인 시처럼. 시인의 바람이 시에 모두 들어가 있어서 읽는 사람이 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 시인은 시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주고 싶었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책을 시작에서 말했다. 열매를 위한 삶인가? 꽃을 피우기 위한 삶인가?
나 자신 스스로 빛나는 삶으로 열매 맺으며 살리라 다짐하게 되는 시. 굳이 꽃이 아니어도, 혹은 꽃이 화려하거나 크지 않아도 괜찮다고 무심히 웃게 해주는 시. 괜찮다. 꽃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인정이 없어도 나 자신이어서 나 자신이므로 빛나는 웃음을 지을 수 있다. 그 웃음에 힘을 더하여 준시와 함께.
시집에는 시인의 마음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읽을 사람, 함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시인의 사랑이 꽃처럼 피어 있다. 꽃이 되는 말처럼 오래 지지 않는 아름다운 시들이 꽃밭을 이루고 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오래 함께 했던 어린이들을 향한 마음이, 항상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내조해 준 아내에 대한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눈 내린 겨울 풍경에서 느껴지는 아늑함과 포근함에 꽃향기까지 나는 시집이다. 시와 함께 살아온 시인의 삶이 자연스럽게 시가 되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정말 어렵지 않게 대화처럼 이어지는 말들이 시의 옷을 입는다. 마치 물 위를 우아하게 떠있는 오리의 물밑 발처럼 일상을 시로 채우는 시인의 몸부림도 있겠지 짐작만 해 본다. 그 시인이 우리에게 말한다. 너무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직 너로 살라고 말한다. 그 말에 용기와 위로와 힘을 얻는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너무 못나 보여서 자기를 사랑할 수 없을 때 조용히 꺼내 읽어 보길 권한다. 세상 속에 오직 하나인 당신을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잔잔하지만 힘 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어린 벗에게는 제목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람이다!!!.
지금 모습 그대로 있어도 너는 가득하고 좋은 사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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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