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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걷는 독서
글쓴이
박노해 저
느린걸음
평균
별점8.6 (255)
동그란세상



이름으로만 유명한 시인이었습니다. 내게는 어떤 공유도 없는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그의 시집<너의 하늘을 보아>를 읽으며 그를 조금 내 안에 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서평으로 읽었어요. 나를 붙잡던 ‘소멸하는 독서’라는 한 문장으로 인해 이 책을 꼭 읽어 보고 싶었습니다.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읽는 것이 좋겠다 싶어 독서 모임 첫 책으로 추천도 했지요. 푸른색 표지의 두꺼운 책을 보고 역시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노해 시인이 말하는 소멸하는 독서는 어떤 것일까요?



 



시인이며, 사직작가, 혁명가라고 저자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1984년 27살에 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었으며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죠. 1991년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사형을 구형 받고 환히 웃도 모습은 강렬한 기억으로 새겨졌어요.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 침묵 정진 속에 광활한 사유와 독서, 집필을 이어가며 새로운 혁명의 길 찾기를 멈추지 않았고,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습니다. 그 후 20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 활동을 펼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왔어요. 고난의 인생길에서 자신을 키우고 지키고 밀어 올린 것은 ‘걷는 독서’였다고 말합니다.



책은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과 짧지만 여운을 깊이 남기는 문구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어요.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시인의 따뜻한 마음과 평화에 대한 마음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900페이지에 가까운 두께지만 글이 많지는 않아 읽기에 부담은 없어요. 하지만 짧은 글이 쉽게 읽히지 않는 깊이와 사유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길이 잃지 않기를 바라며 천천히 걸어라고 당부하는 첫 페이지를 읽으며 쉽게 다음 장을 넘기기 힘들어요. 저도 제 마음에 당부를 합니다. ‘마음아, 천천히 걸어라. 책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책으로의 도피나 마취가 아닌 온 삶으로 읽고, 읽어버린 것을 살아내야만 한다. 독서의 완성은 삶이기에. (p12)



온전한 문단들이 이루어진 것은 서문밖에 없습니다. 이 서문을 통해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말들과 마음을 알 수 있어요. 서문이 너무 좋아서 서문을 따로 필사해야겠다는 마음까지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서의 완성은 삶이라고 해요. 아무리 많이 읽고 알아도 삶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독서는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우월함을 나타내기 위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은근히 과시하기 위해 독서를 이용하는 때가 얼마나 많았던지. 스스로 소멸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부끄러웠지요. 늘 제가 하던 것이 책으로의 도피였으며 순간적인 마취였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합리화하며 위로하죠. ‘책이라도 읽잖아.’라고. 그 책이 지금 저의 삶에서 어떤 흔적들을 남겼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요. 그냥 도피나 마취의 목적이던 적이 많았으니까요. 온 삶으로 읽고, 읽어버린 것을 살아내야만 한다는 말을 읽으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두렵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들이 이어질지 상상조차 안되니까요.



 



내가 가장 상처받는 지점이 내가 가장 욕망하는 지점이다. (p33)



이 말을 읽는 순간 그동안의 상처들이 한순간에 이해되었어요. 다정한 남편, 배려심 많고, 말이 잘 통하는 남의 남편들을 보고는 늘 상처받았거든요. 왜 인지도 모르고, 그냥 잘해주는 남의 남편들 이야기에 부럽기도 했지만, 늘 상처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이 글을 읽자 번개처럼 깨달아졌어요. ‘그랬구나! 가장 욕망하는 것이 남편의 사랑? 존중이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또한 남편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지적 성취를 볼 때도 늘 마음이 편치 않았죠. 어떤 모임에서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을 싫어했고요. 그것은 내 안의 욕망들 때문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과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이었죠. 그 욕망들이 이해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늘 상처받았습니다. 지금은 어떤 상황에서 마음이 상하려고 할 때 나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떤 욕망으로 인해 상처받는지를요. 어쩌면 아주 조금이지만 이것이 삶으로 살아내는 독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온몸으로 살아낸 하루는 삶의 이야기를 남긴다. 나만의 이야기가 없는 하루는 살아도 산 날이 아니다. (p151)



살아도 산 날이 아닌 날들을 무수히 흘려보냈어요. 아프다는 핑계로. 하루를 반복해서 보내면서 나만의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밥 먹고, 운동하고, 책 보고, 자고의 연속이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아주 큰 벼슬처럼 여기며 살아도 산 날이 아닌 날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 의지도 의욕도 없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견디고 버텨야 했지요. 누군가에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책임지고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나를 빼고 상대를 채우며 살았습니다. 내 속에서 내가 없어지는 아우성과 몸부림을 모른척하면서요. 그러다 깨닫습니다. 무언가를 남기는 하루, 무언가를 하는 하루가 아니라 나로 온전히 존재하며 비슷한 일상을 살아도 나만의 이야기가 있는 의미 있는 하루라고요. 의미를 찾는 것, 어떤 일들에 의미를 두는 것, 모두가 내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비슷한 하루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소소한 재미들을 길어 올리는 중입니다. 더 오래 더 잘하기 위해 오늘은 쉬어가는 길이라고 천천히 마음을 타이르면서요.



 



참된 독서란 자기 강화의 독서가 아닌 자기 소멸의 독서다. (p411)



자기 강화의 독서만을 해 온 사람에게 이 말은 혜성 같은 말입니다. 찬란한 꼬리를 태우며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혜성 같은 충격으로 내 속을 헤집어 놓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자기 강화의 독서만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는 저에게 소멸이라는 단어는 충격이에요. 어떻게 읽은 것으로 자신을 소멸할 수 있을까요? 소멸의 의미를 다시 찾아봅니다. ‘사라져 없어짐’이라는 뜻을 어떻게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까지 실천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독서, 참된 독서를 하게 되면 내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상대만 남는 상태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자연만 남고 내가 사라져 없어질 수 있을까요? 왠지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고 나니 저자의 독서는 자기 소멸의 독서인 것 같습니다. 그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이던지 그가 보이는 것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사물들이, 자연들이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상황들이, 자연들이 오롯이 저자를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이 자기 소멸의 독서인가 어름 포시 헤아려 보지만 까마득한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도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등산에서 정상을 알고 내 위치를 아는 것처럼 최고 수준의 독서를 알고 지금 저를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선택합니다. 언젠가, 아니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소멸의 독서를 흉내 내면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9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서평을 쓰려는 것은 무모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른 봄을 알리는 눈 속의 꽃이 핀 사진과 함께 실린 사진에도 글에도 오래 머물다 다음 장을 넘깁니다. 내가 욕망했던 것과 욕망하고 있는 것들 사이를 어지럽게 휘청이면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차곡차곡 밟아 온 길입니다. 책을 읽고 2달을 정리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곳에 책을 둡니다. 읽어야 할 책들 위에 항상 두면서 약간의 부채감도 느꼈지요.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또한 번 느낍니다. 특히 좋은 책을 만났을 때 더 한 느낌을 받아요. 책이 너무 좋고 훌륭한데 무엇을 얻는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져서입니다. 푸른 책의 언저리를 두 달 가까이 맴돌다 용기를 내어 글을 씁니다. 지금 상태에서 느끼는 것들과 생각들을 솔직하게 써놓습니다. 한참 부족하고 부끄러움이 몰려오지만, 용기를 냅니다. 용기를 내서 소멸의 독서로 가기 위해, 책으로 삶을 드러내기 위해 조금 몸부림친 흔적 정도라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풋내기 독서가의 귀여운 투정으로 읽어주셔도 좋고요. 책을 읽으면서 전에 없던 행복을 느낍니다. 좋은 사람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커지고 있어서요. 책을 읽지 않았다면 박노해라는 멋진 사람을 알 수 없었을 테니까요. 또한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를 발견하는 기쁨도 꽤나 쏠쏠합니다. 그것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지만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게 나인 것을요. 좋은 사람을‘ 삶이 독서고 소멸하는 독서를 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기쁨을 함께 누려보시길 권합니다. 그가 던지는 말들이 주는 깊이와 사랑을 체험하기를요.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운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도요.



천천히 오래 읽으며 영혼의 길을 잃지 않을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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