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사회과학 출판사를 대표하는 후마니타스,오월의봄을 모셔봤습니다. 첫 질문입니다. 두 출판사를 라이벌로 꼽아봤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윤상훈(후마니타스) :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가면 후마니타스 책이 있는 서가에는 늘 오월의봄 책들이 있어요. 서점 신간 코너에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주제로 나온 책들을 종종 만납니다. 예를 들어 작년 봄에 『전사들의 노래』가 오월의봄에서 나왔는데, 그 직전에 후마니타스도 필자 중 한 분인 이규식 선생님이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라는 책을 냈어요. 김도현 선생님이 쓰거나 옮긴 『장애학의 도전』(오월의봄)과 『장애의 정치학을 위하여』(후마니타스), 이문영 기자님의 『웅크린 말들』(후마니타스), 『노랑의 미로』(오월의봄)도 생각나네요. 이렇게 필자가 겹치거나 출간 분야가 맞닿아 있는 게 보이는데, 그럴 때마다 두 출판사가 라이벌이기보다는 이웃 같다고 느끼곤 합니다.
한의영(오월의봄) : 저도 말씀하신 것처럼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동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무실 참고 도서 책장에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책이 후마니타스의 책들이기도 해요. 일하면서, 기획이든 편집이든 아니면 개인적인 관심사로든 많이 찾아서 읽게 되는 출판사입니다.
안중철(후마니타스) : 라이벌이라고 하면, 흔히 경쟁자라는 느낌이 강한데요, 라이벌이라는 말은 원래 “같은 대상이나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해요. 이 말은 '같은 개울(강 river)을 쓰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나는 이쪽 강변에서, 상대방은 저쪽 강변에서 말이지요. 이처럼 같은 개울을 쓰다 보면, 서로 경쟁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또 서로 협력을 해야 하잖아요. 저는 강이 마르거나, 넘치거나, 오염되는 걸 함께 고민하기 위해 협력할 필요성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후마니타스와 오월의봄을 비롯한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그런 관계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월의봄 (좌) 신연경 (우) 한의영
두 출판사가 걸어온 길을 알려주시죠.
안중철(후마니타스) : 2002년에 출판사 등록을 했습니다.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 세 명이 시작했어요. 한 연구실에서, 한 명은 학위를 마쳤고 둘은 학위 과정 중이었습니다. 다들 앞으로 뭘 할지 고민하다가, 좋아하는 책 읽고 좋아하는 글을 쓰며 살아 보자고 해서 출판사를 만들었죠. 초기에는 학술 단체 자료집이라든가 논문집, 학술지를 만들면서 종잣돈을 모았습니다. 벌써 20년이 조금 넘었네요. 그사이 북카페도 실험해 보고, 출간 도서들에 대한 독자 강독 모임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봤습니다. 좋은 성과도 있었지만, 수많은 실수와 우여곡절도 겪고 있어요. 지금은 모두 5명이 출판사에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한의영(오월의봄) : 오월의봄은 2011년에 박재영 대표님이 1인 출판사로 설립을 하셨어요. 그 뒤로 지금까지 구성원이 5명으로 늘었고 올해로 15년 차를 맞이했습니다. 현재는 대표님 포함해서 편집자 3명에 마케터 1명, 디자이너 1명 이렇게 총 5명이 일하고 있어요. 2011년 7월 첫 책 『부동산은 끝났다』를 시작으로 인문사회 분야에서 진보적인 관점의 책들을 꾸준히 펴내고 있는 출판사입니다. 출판사마다 책 만드는 과정이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를 듯한데요.사회과학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윤상훈(후마니타스) : 사회과학 출판사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아요. 저자나 역자분들에게 출간 기획을 제안하기도 하고, 쓰고 싶거나 옮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분들이 먼저 연락해 주시기도 하고요. 어떤 원고나 주제를 맡아서 진행하고 싶은 편집자가 있으면,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사람의 결정을 믿고 밀어 주는 편이에요. 물론 모두가 검토하며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칩니다.
한의영(오월의봄) : 저희도 당연히 판매에 관해 고려를 안 하지는 않지만, 다른 출판사와 차이점이라면 편집자 개개인의 권한, 자유가 높은 편이에요. 사회과학이라고 해서 다른 분야 책들과 다르게 특별한 과정이 있지는 않을 것 같고요. 오월의봄만의 특징이라면 내부에서 따로 기획회의를 하거나 공식적인 절차가 있지 않아요. 담당자가 확신을 가지고 해보고 싶다고 하면 웬만하면 진행을 하는 편이고요. 당연히 판매에 관해서도 고려를 하지만 편집자 개개인의 권한, 자유도가 높은 편이에요. 그래서 책이 다양하게 많이 나올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책이 만들어지고 나서는 알려야 하잖아요.사회과학책의 마케팅은어떻게 진행하나요?
신연경(오월의봄) : 다른 출판사도 그렇겠지만, 저희도 고민하며 찾아가는 중이에요. 사회과학책을 포함한 타 분야의 책들도 지금 시대에 단권 마케팅은 어려운 일 같아요. 특히 규모가 작은 출판사에서는 단권마다 거대 자본을 투입할 수 없으니까요. 오월의봄에 입사한 이래로 출판사 브랜딩에 관해 고민 중인데요. 책 한 권마다 충실히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출판사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해 나갈 것인지 보여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은 내용에 관한 불확실성이 큰 상품인 만큼 독자의 불안 요소를 최대한 소거해주는 것이 마케팅의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과학책은 최근 이슈가 되는 사회문제나 시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잘 파악하려고 해요. 원고 전문을 최대한 읽으려 하고, 연결 포인트를 잘 잡아서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그러한 시도를 유지하는 것이 출판사 차원에서 브랜딩의 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독자들께서 이 출판사의 책이라면 믿고 읽어도 되겠다고 생각하실 수 있도록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연장선에서 오레터라는 메일링 서비스도 진행 중인 거죠.
신연경(오월의봄) : 네, 맞아요. 저희 채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해보려고 하죠. 어떤 통로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떠올린 게 뉴스레터였어요. 기존 채널에서 다루지 못한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싶다고 생각하니 퀄리티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독자를 확장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 저희 출판사를 신뢰하며 책을 선택하고 있는 독자에게 확신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월의봄 출판사는 기존 독자 풀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 느낌을 받아서 그 독자들에게 책에서 확장되는 내용을 메일로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독서하면서 책 바깥으로 넘어가는 경험을 할 때 독서 경험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뉴스레터를 계속 발행해보려고 해요. 지금은 구독자 수가 거의 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윤상훈(후마니타스) : 후마니타스도 몇 년 전까지 ‘후마니타스 통신’이라는 이름의 뉴스레터가 있었어요. 출판사 근황도 전하고, 무엇보다 책을 만들며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 혼자만 알기엔 아까운 이야기, 인상적인 구절 등을 독자분들과 나누려는 목적이 컸어요. 후마니타스가 주목하는 주제들이나 저자분들의 활동도 간간이 소개했고요. 책에 껴있는 별책부록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서 하고 있지만 독자들과 끈을 갖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 만큼, 그래서 더 오월의봄이 보내는 뉴스레터를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후마니타스 (좌) 윤상훈 (우) 안중철
후마니타스는 편집자가 직접 마케팅까지 담당하잖아요.어려움은 없나요.
윤상훈(후마니타스) : 어렵습니다.(웃음) 원고를 편집할 때는 다른 데 눈을 돌리지 않고 그 작업에만 집중하면 되는데, 마케팅은 그런 방식으로 접근해선 안 될 고유한 영역 같아요. 그래서 마케팅에 필요한 기어로 자유자재로 갈아 끼워야 할 텐데 아무래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홍보 수단이나 매체는 늘어났지만, 공들여 만든 책들과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맞춤하게 만날 수 있도록 소개할 방법은 의외로 많지 않은 듯도 합니다.
안중철(후마니타스) : 후마니타스는 소규모 출판사이다 보니, 비용이 들어가는 영업보다는 책을 소개하는 자료를 최대한 충실하게 만들어 언론이나 서점 등에 배포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출간의 의미라거나 시사적 함의, 그 책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요. 이를 바탕으로, 몇 년 전만 해도 언론사나 서점 MD분들이 책을 잘 소개해 주면, 판매에서도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 영향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로 보입니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낮아진 데에 따른 영향이 더 크기는 할 텐데요. 이 고민은 계속 가져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나 외부 채널을 이용하는 건 소규모 출판사들에게는 굉장히 제한적인 수준일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요즘 주목하시는 현상, 주제가 있다면?
한의영(오월의봄) : 오월의봄은 그간 장애, 페미니즘, 노동, 자본주의 비판, 젠더 등의 주제에서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들을 많이 냈는데 이는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될 것 같아요. 올해는 돌봄 관련한 책들이 좀 나올 예정입니다. 점점 더 돌봄이 중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환경 문제를 다루는 책, 진보적인 관점의 진중한 교양 학술서도 꾸준히 펴내려고 합니다.
안중철(후마니타스) : 후마니타스는 주로 민주주의, 정치, 노동 주제의 책들을 내왔습니다. 이 주제에 더해, 저희가 많이 다루지 않았던 부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선 정치사상 고전 시리즈의 책들이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나올 것 같아요. 다양한 번역 판본이 있는 고전 분야는 저마다 출판사의 색채가 들어간 편집을 거치는 만큼, 서로 경쟁함으로써 독자들이 좀 더 좋은 판본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밖에도 젠더 이론, 기후 위기/생태 쪽에 관심을 기울이며 기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점 쪽에서 보면 사회과학의 축소가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사회학 등 예전이라면 당연히 사회과학 책으로 분류될 책이 인문 매대에 놓이기도 하고요.
안중철(후마니타스) : 사회과학 출판사로서 난감한 상황이긴 합니다. 오프라인 서점의 매대에서 정치 신간 코너가 아예 없어졌으니까요. 사회과학 분야 책들이 인문으로 통합되고 있고, 정치학이나 사회학 등을 대학에서 연구하며 공부를 이어 가는 사람도 줄고 있어요. 공부하더라도 외국에서 학위 과정을 하거나, 읽어도 외국 책을 주로 읽다 보니 국내에서 사회과학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상황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연구자가 굳이 한글로 된 책을 안 써도 되고(오히려 그게 학자로서의 전망에 더 낫고), 한글로 써도 독자들에게 소개될 공간이 별로 없는 상황이죠. 악순환 같아요. 코로나19 여파도 있었지만, 그보다 학과가 통폐합되는 사회구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쏠림 현상이나 극단화 경향이 심해지다 보니, 독자들이 찾는 책도 그런 쏠림 현상이 많아지는 듯합니다. 요즘 방법론 관련 책들이 인문사회과학 쪽에서 유행하고 있는데요, 반가우면서도 좀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방법론은 유행하지만 정작 그 방법론들을 통해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책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신연경(오월의봄) : 저는 독서 인구가 줄고 있는 현상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간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많은 시간 노동하거나, 노동하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학업에 열중하잖아요. 여러 가지 매체가 많이 등장한 시대의 영향도 있겠지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타인의 괴로움이나 고통, 지금 우리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질문을 접하기에는 너무나도 개개인의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 보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문책이라든가 심리학 책에 시선이 쏠리고요.
한의영(오월의봄) : 정부에서 계속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이상의 의제이기도 하죠. 비정규직 노동자라든가 다른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그 외에도 노동 관련한 문제들이 너무 산재한 상황인데요.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서 독자를 만들어내고 사회과학이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는 게 어렵습니다. 각자도생하기도 바쁘니까요. 물론 저희도 열심히 만들긴 해야겠지만요.
결국은 정치네요.마침 곧 총선이잖아요. 정치인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은?
안중철(후마니타스) :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입니다. 좀 오래된 책인데 작년부터 다시 들춰 보며 주변에 추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다양한 심리 실험 사례들이 나오는데, 저는 이 책의 핵심 주제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즉, 다수 의견을 따르는 사람, 또 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바가 없는 반면, 소수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야말로 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한다는 거예요. 소수 의견은, 그것이 옳은 정보이건 그릇된 정보이건, 사회에 새로운 정보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소수의 의견이 옳다면 기존의 잘못된 다수의 생각을 바꿀 기회가 되고, 소수의 의견이 틀렸다면 기존의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셈이죠. 저는 이게 지금 우리 사회에 여전히 필요한 교훈이 아닐까 합니다. 무엇보다 소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정치의 시작이니까요.
신연경(오월의봄) : 장애인 탈시설을 다룬 『집으로 가는, 길』을 추천하고 싶어요. 최근 서울시에서 장애인 자립지원 절차를 논의한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장애인의 자립 역량을 국가에서 평가하겠다는 거예요. 국가에서 정한 평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시설에 머무르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아무런 변화가 없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 개개인의 적응 역량에 따라 시설 입소 여부를 따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 탈시설이 필요한지조차 국가에서 잘 모르는 것 같고, 그걸 알아보려는 의지가 있는지도 미지수이고요. 이 책은 최초로 스스로의 의지로 문을 닫은 시설 ‘향유의집’의 이야기인데요. 시설 내부 비리를 척결하자는 취지였던 애초의 투쟁이 탈시설운동으로 확장되고, 시설이 문을 닫기까지의 일을 시설 거주인과 운영진의 언어로 담았어요. 이후 자립하신 분들의 이야기와 관점까지 담겨 있어서 탈시설 논의를 전체적으로 알 수 있는 책입니다. 더불어 장애인 문제를 다룬 『유언을 만난 세계』 『전사들의 노래』도 읽어보시면 좋을 듯해요.
한의영(오월의봄) : 저는 실질적인 제도 변화를 얘기하는 책들을 뽑아봤는데요. 일단 산재 관련해서, 『김용균, 김용균들』이라는 책이 있어요. 여전히 1년에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는 한국사회에서 이 책 꼭 읽어보면 좋겠고요. 한국 사회의 정상가족 담론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책으로 『가족을 구성할 권리』도 추천합니다. 특정 정책보다는 사회적 인식 변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책인데요. 이미 한국사회에서 가족이 많이 변화했고 앞으로도 가족은 더욱 다양해질 테니까 이 책도 꼭 한번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나온 책으로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이라고 청년여성들의 자살생각에 대해 연구한 책이 있어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한국의 저출생, 자살률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책이에요. 20대 여성들의 인스타그램 문화사가 담긴 『인생샷 뒤의 여자들』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윤상훈(후마니타스) : 누구나 스스로 짊어져야 할 몫의 책임은 있지만, 어쩌면 사회가 그 이상으로 많은 짐을 부과하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어요. 개인의 결함을 운운하거나 죄인 취급까지 하는 시선도 매섭고요. 좋은 정치, 그리고 적절한 정책은 적어도 시민들 사이에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거나 이를 이용하지 않는 데서 시작하지 않나 싶어요.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이나, (제목에 띄어쓰기가 없어서 한 번에 읽어야 하는데)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 책이 있어요. 재개발 탓에 원래 살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역사나 공원, 거리 구석구석에서 살아가는 여성 홈리스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세상이 어떤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는지와는 무관하게, 같은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무엇보다 이미 그렇게 존재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만나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윤상훈(후마니타스):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장애 해방과 동물 해방에 대한 고민이 서로를 배척하는 문제의식이 아니라는 점을, 그래서 함께할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더 많이 이야기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줬어요. 어설픈 답을 주는 대신, 좋은 질문을 건네는 책이 아닌가 싶은데, 오월의봄에서 오래전부터 출간하고 있는 ‘질문의 책’,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시리즈에도 그런 책들이 많아요.
신연경(오월의봄) :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이 가장 먼저 생각나네요. ‘치유’가 도덕적인 당위가 아니라 정치적인 개념이라고 말하는 책인데,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몸을 언젠가 치유되어야 하는 유예된 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 상태로 봐야 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오월의봄 면접 볼 때 관심사를 물어보셨는데 당시 여성 홈리스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답변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 찾아볼 만한 이야기가 많이 없어서 비어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후마니타스에서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 책이 나와서 반가웠어요. 최근에 출간된 『우린 모두 마음이 있어』도 추천합니다. 정신병을 앓는 동물에 관한 책이에요. 동물행동학에서 나아가서 동물에 대한 신화, 정상이라는 신화를 깨뜨리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게 되는 일이라는 걸 잘 알려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이 기억에 남아요.
한의영(오월의봄) : 제게 후마니타스라는 출판사를 처음 알게 해준 책은 김진숙 저자의 『소금꽃나무』라는 책입니다. 노동자로서 당당해질 수 있게 해준 책이었어요. 여전히 유용하게 읽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또 한 가지 편집자로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데 이 책의 보도자료가 재밌거든요. 요즘에는 보도자료의 형식이 어느 정도 좀 정형화된 면이 없지 않은데요. 특히 정치 사회 분야는 더 그런 거 같고요. 문학은 조금 다른 것들을 보게 되기도 하는데, 아무튼 이 책 보도자료는 지금 봐도 신선해요. 또 이문영 기자의 『웅크린 말들』, 쌍용차 문제를 다룬 정혜윤의 『그의 슬픔과 기쁨』 등도 기억이 나네요. ‘우리 시대의 논리’ 시리즈는 한국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그때그때잘 다루는 것 같습니다. 어떤 주제를 떠올릴 때마다 후마니타스의 책을 꼭 참조하곤 합니다.
안중철(후마니타스) : 오월의봄 책들이 반갑고 좋았던 건, 후마니타스가 기획한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보완하는 책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예요. 물론, 후마니타스가 기획하는 주제가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그 주제로 오월의봄에서 먼저 책이 나와 부러웠던 적도 많았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제가 세미나 모임을 하는 곳에서 『현대조선잔혹사』(후마니타스)라는 책을 읽으면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오월의봄)를 함께 읽었어요. 두 책을 비교하며 읽는 게 재밌었어요. 후마니타스에서 『그런 여자는 없다』가 나온 다음에 오월의봄에서 『그런 남자는 없다』라는 책이 나온 적도 있죠.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저출산 노령화 사회, 독자는 어떻게 변할까요. 사회과학 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윤상훈(후마니타스) :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책은 원래 ‘소수’가 찾는 상품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그래서 어떤 시절이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얼마 안 되는 독자를 늘 전전긍긍하며 기다리는 운명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입학 인원이 부족해 처음 폐교된 공립 고등학교가 마침 제가 사는 동네 근처였어요.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도 높아지고 있고, 책을 찾는 사람이 여러 이유로 줄고 있는 건 분명해 보여요.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독자가, 또 사회가 어떻게 달라질지를 예상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달라지는 사회를 보여 주는 책을 계속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고령화의 의미가 나이 들어 외롭게 살아가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라면, 도서관이야말로 점점 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책과 함께 더 큰 세상을 만나고 또 만들어 갈 공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공공 도서관 지원 예산이 삭감되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줄어 운영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소식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안중철(후마니타스) : 인구 감소, 저출산 노령화가 사실 큰 문제일까 생각해요. 피할 수 없는 문제일까요? 정책이 달라지면, 또 사회가 바뀌면 바라보는 시선이나 시각, 아니면 현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폐쇄적인 인구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언제까지 이주 이민과 관련해 보수적인 정책을 취할 수 있을까요? 당장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노동할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도, 정작 제1 국민, 제2 국민으로 나누고, 이주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으로 유지되는 삶이 언제까지 보장될 수 있을까요? 이들이 정당한 노동권을 가지고, 또 그만큼 시민권을 가질 수 있다면, 인구가 감소하는 게 문제일까요? 시각을 바꾸고 정책을 바꾸면 저출산 노령화, 인구 감소 같은 부분들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 차원에서도 결국 이런 부분들에 대해 좀 더 고민하게 됩니다. 좋은 정치, 좋은 정책, 좋은 대안을 함께 고민할 만한 책들을 말이죠.
한의영(오월의봄) : 새로운 독자를 창출하는 데 출판계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잖아요. 다른 매체가 등장한 영향도 있을 테고요. 독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하죠. 특히 학술서, 사회과학서 책 독자들이 함께 나이를 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오월의봄이 작년에 처음으로 국제도서전에 부스를 냈는데요. 그때 20대 독자들이 정말 많이 부스를 찾았고 실제로 구매도 많이 하셨거든요. 좀 다른 양상을 피부로 느낀 계기였어요. 독서인구는 확실히 줄었지만 발견의 문제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 지점에서 저희도 계속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오레터 같은 시도도 해보는 듯합니다. 좀 희망적인 얘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신연경(오월의봄) : 저도 어쩌면 노출 빈도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책을 좀 더 보이게 만들 수 있는가 고민을 하는 중이에요. 저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곳 중에 하나가 서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특히 사회과학 책과 관련해서 어떤 의제, 같이 논의해야 하는 주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서점에서 함께 그 논의를 끌고 가줄 수 있다면 서로 시너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말에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도서 시장은 언제나 어렵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여전히 서점에서 책을 들춰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유의미한 지표라고 생각되는 것에 조금 더 주목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