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후안
- 작성일
- 2012.11.14
그 남자네 집
- 글쓴이
- 박완서 저
현대문학
『그 남자네 집』은 박완서 작가님의 자전적 소설 3부작의 완결편이다. 또한 그분 생전에 기록한 마지막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박적골에서 태어난 이후 지낸 어린 시절부터 20살까지의 삶을 그린것이라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꿈같던 20살 대학 생활을 막 시작하려던 때 일어난 6.25전쟁부터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남자네 집』은 전쟁 후 결혼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이다. 이로써 그 자로 시작하는 작가의 자전적 애기는 마무리가 된다. 저 그 자는 3인칭 대명사일까? 아니면 관형사일까 작가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은 대목이다. 그 남자네 집의 주제는 첫사랑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그 남자네 집』은 작가의 첫사랑인 그 남자네 집을 뜻한다. 먼 외가친척뻘 되는 작가의 집 근처에 사는 그 남자. 시를 좋아하고 언제나 천진난만한 웃음을 입가에 짓고 있던 그 남자. 그와 누나 동생으로 사귀던 작가는 생활이 안정적일 것 같은 은행원과 결혼한다. 어느 시대나 그렇지만 은행원은 촉망받는 직업인 듯하다. 은행원 하면 생각나는 정갈한 외모, 그리고 금융기관이 주는 신뢰, 생활의 안정 등을 상징한다. 어느시절의 결혼풍습이 응당 그러하겠지만 홀어머니에 외아들인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문화와 문화의 충돌로 이어진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시집살이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네 어머니 세대의 애기들이 마치 세밀화를 보는 것처럼 상세히 묘사되어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들에서 느껴지는 세밀함과 마치 한편의 기록영화를 보는듯한 상세한 묘사는 이 책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결혼식에서 신혼여행, 신행으로 이어지는 전쟁 이후의 풍속, 오로지 아들 해 먹이는 것이 인생 최고의 낙으로 생각하고 아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시어머니, 그리고 그 시대의 먹거리에 대한 묘사, 시집의 풍습과 미신에 의한 전통,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문화적인 갈등과 충돌로 인한 시집살이의 어려움, 전후 시대의 물가의 폭등으로 인해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대한 묘사, 그리고 재산을 늘리고, 집을 넓혀가며 느끼는 주부로써, 엄마로써의 보람등이 담담하게 묘사되어 간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이 책에선 그저 양념일 뿐이다. 이 책의 진짜 이야기는 첫사랑이다. 결혼 후 문득 들려온 첫사랑 그 남자에 대한 소식, 안정적인 생활을 찾아 그 남자를 내치고 난 후 그 남자가 거의 폐인이 되어간다는 소식에 죄책감을 느낀 작가는 그와의 재회를 가진다. 거기에 시집살이의 고달픔과 일상의 반복으로 인한 지루함을 탈피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한 첫사랑과의 재회. 그리고 이어지는 그와의 만남, 만남은 이어질수록 그 자체가 주는 내밀함과 희열, 그리고 안정을 찾아가는 그 남자를 향한 모성애적 발로를 넘어 일탈을 꿈꾸게 된다.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작가의 연배는 우리네 어머님들의 연배, 그리고 그의 자식들의 애기는 바로 내가 살아온 기억들이다. 자녀들의 성장, 그리고 이웃들과의 삶의 모습을 통해 전쟁이후 그런대로 온 나라가 먹고 살게 되기까지 우리네 부모들이 어떤 역경들을 헤치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그 애기와 애기들은 현실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문득문득 과거의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는 조그마한 계기로 시작한다. 그 추억의 자락을 잡아당기면 그 자락을 따라 과거의 기억들이 마치 고구마 줄기 엮어 나오듯 그렇게 끊임없이 엮어 나온다. 『그 남자네 집』은 그렇듯 엮어져 나온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기억들이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첫사랑! 누구나 가슴속에 간직한 가장 소중한 추억, 하지만 그 남자와의 하룻밤을 기대한 그날에 그 남자에게 닥친 불행, 그 남자와의 마지막 포옹과 결별, 그리고 그 남자의 부고. 마주보는 철길처럼 그렇게 맺어지지 못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는 인연이 아니라 길을 가다 문득문득 마주치는 교차로처럼 작가와 첫사랑과의 인연은 그렇듯 질기게 이어졌고, 그의 부음으로 그 모든 만남과 인연은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인연이 마무리되었다고 사랑도 끝난 것일까? 첫사랑은 반드시 과거의 사랑일까? 첫사랑은 있는데 왜 중간사랑과 마지막 사랑은 없는 것인가? 왜 과거의 사랑은 아름답고 현재의 사랑은 생활이고, 미래의 사랑은 다가가지 못하는 꿈일까? 시간이란 그걸 수평으로 놓고 볼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시간의 거리속에 존재하지만 그 시간의 막대를 수직으로 놓고 본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 한순간이다. 이렇듯 사랑이라는 감정의 유희도 어찌 보면 첫사랑도 중간사랑도 마지막 사랑도 다 하나의 사랑이 아닌가? 그 사랑이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한 말이다. 작가는 남편도 사랑했고, 그 자녀들도 사랑했고, 그 부모도 사랑했고, 그 조카들도 사랑했다. 또한 그 첫사랑도 여전히 사랑했다. 이러한 모든 관계는 사랑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관계이다. 하지만 우린 첫사랑은 과거이니 추억이고, 지금의 사랑은 현실이니 그 현실을 위해서 과거의 사랑은 잊어버리라고, 첫사랑에 연연해하는 것은 죄악이고, 더군다나 가정을 가진 주부가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의 만남을 이어가고, 일탈을 꿈꾸는 것은 비 현실적이라고 애기할수 있을까. 그 감정의 일탈과 연속을 불륜이라는 한마디 단어로 왜곡시켜 그 사랑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다 같은 사랑인데 말이다. 왜 다른 사랑은 한 마음속에 담아질 수 있지만 이성을 향한 사랑은 왜 한마음에 담아질 수 없을까? 아니 없는 게 아니라 우린 왜 용납하지 못할까? 그래서였을까. 작가는 이 소설에서 약간의 왜곡을 가한다. 전작에서는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병환으로, 오빠는 6.25 전쟁때 총상으로 돌아가신 것으로 되어있었다. 실제로도 박완서 작가님의 이력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버지와 오빠 모두다 6.25 전쟁 때 이웃집의 고발로 인해 빨갱이로 몰려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애기를 풀어나가는데 중요한 요소가 아닌데도 왜곡을 가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미군부대 PX 초상화부에서 일을 했던 작가는 이 소설에서는 그저 직원들의 출입을 통제했던 일을 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작가는 이전의 소설에서의 자신과 이 소설에서의 자신과 동일시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어쩌면 가장 하기 힘든 첫사랑으로 인한 일탈을 애기하면서 이 소설속의 주인공을 자신이 아닌 제 3자로 독자들이 인지해주기를 바랐을까? 자신의 애기를 풀어내면서도 독자가 이를 자신의 애기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자신의 치부라 생각하여 독자들의 질타를 피해가고 싶었을까? 물어보고 싶지만 그 작가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이 애석할 뿐이다. 얼마전 히트한 영화중 건축학 개론도 첫사랑을 소재로 다룬 영화였다. 그 영화관 관객중에는 여자보다 중년 남자가 더 많았다고 한다. “당신도 한때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그 영화의 광고 문구가 말해주듯 우리네 가슴속 저 깊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는 첫사랑의 소중한 기억, 작가의 소설은 그 앙금을 휘저어 물위로 떠오르게 했다. 잊어버린 줄로 알았던 그 기억은 잊혀진것이 아니라 작가의 소설처럼 그 추억의 끄트머리를 누군가가 잡아당겨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을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그렇게 쓰셨나 보다. 어차피 삶에 있어서 시간이라는 의미를 제외한다면 과거도 곧 현재인 것을. 그리고 현재도 곧 과거인 것을.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 버무러진 그저 그런 인생인 것을. 그리고 사랑이란 끝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을. 어쩌면 첫사랑도, 지금 사랑도, 모두 다 우리의 기억속에 또아리를 틀고서 주저앉아 있는 기억이라면 그 기억의 주체인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는 것을 작가는 애기하고 싶은것을 아니었을까? 작가도 가고, 그 남자도 가고, 그럼 이 사랑은 끝난 것일까. 아니다. 이제 그 사랑은 우리의 기억속에 존재하고 또 작가의 작품속에 존재하는 한 그 사랑은 끝나지 않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사랑일 뿐이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첫사랑이 영원히 남겨둘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에 그 기억을 우리들 가슴속에 남겨두어 영원한 기억으로 존재시킨건 아닐까. 기억이 존재하는 한 사랑은 끝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기억을 다른 사람들 가슴속에 아로새겨 영원히 존재하고픈 그런 유혹에 이글을 쓴건 아니었을까? “사랑이란 그 흔적의 여운을 가슴에. 영혼에 아로새기는 것이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이라는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이제 그 사랑은 우리들 가슴에 새겨진 흔적이다.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우리의 첫사랑도. PS : 이 책을 읽고 10여일이 지나도록 그 모티브를 찾지 못해 마무리하지 못한 이 리뷰에 모티브를 제공해준 그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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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