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후안
- 작성일
- 2015.8.10
서유기 1
- 글쓴이
- 오승은 저
솔
중국의 4대 기서로는 원나라 시대의 소설인 시내암의 《수호지》와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 명나라 시대 때 오승은이 쓴 《서유기》와 왕세정의 《금병매》를 말한다. 이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것이 바로 서유기이다. 어린 시절 보았던 동화책의 애기도 그렇지만, TV에서 절찬리에 반영한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가 바로 서유기의 내용을 각색한 것이다. 1990년부터 반영한 ‘날아라 슈퍼보드’는 주간 시청률 42.8%(위키백과 참조)를 기록할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친 애니메이션이다. 주제가인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초’가 아직도 귀에 낯익다. 이 작품의 원작은 허영만 화백의 《미스터 손》이다. 이렇듯 손오공의 이야기로 알려진 『서유기』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친근한 작품이다. 하지만 다른 고전들이 그렇듯이 알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범주에 속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작품의 원전을 만나본 이들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랬다. “아직도 동화책을 보느냐”고. 그냥 웃었다. 웃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1편의 대부분은 우리의 주인공 손오공의 이야기다. 동승신주의 오래국 화과산의 돌에서 태어난 손오공, 수보리조사를 찾아가 술법을 배우고, 여의봉을 얻고 저승에 찾아가 생사부를 지우고 불사의 몸이 된다. 하늘에 대항하여 필마온이라는 벼슬을 얻지만 그 벼슬에 만족하지 못하고 제천대성이라고 스스로를 높인다. 천상의 천도복숭아를 따먹고 하늘에서 난동을 피우다 현성이랑 신에게 잡혀 하늘로 끌려간다. 한데 이미 신선의 단약을 먹어 강철같은 몸이 되고, 천도복숭아를 먹어 불사의 몸이 된 손오공을 죽일 방법이 없다. 하여 팔괘로에 넣어 문무의 불로 단련했지만 그를 조금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기에 그을려 눈이 벌겋게 되어서 노상 눈이 아파 핏발이 서는 바람에 그의 눈이 ‘불같은 눈에 금빛 눈동자’라는 의미의 화안금청火眼金晴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를 제재할 방법이 없어 나선 게 석가여래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손오공은 석가여래와 내기를 한다. 석가여래께서 ‘ 네가 내손바닥을 벗어날 수 있으면 온 천하를 너에게 주겠다’ 라고 손오공에게 제안한다. 손오공은 좋다고 하고 순간에 십만 팔 천리를 날아가는 근두운을 타고 한참을 날아가다 기둥 4개가 서 있 길래 제천손오공 왔다가다 라고 쓰고 오줌을 싸고 돌아온다. 한데 그것이 바로 석가여래의 손바닥이었다. 내기에서 진 손오공 오행산에 갇히게 된다. 이 부분이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가 가졌던 의문이었다. 이전에 작성한 리뷰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수 십 년을 궁금하게 생각하던 이 의문에 답을 얼마 전 어느 인문학 강좌에서 얻었다. 헌데 원전을 읽다보니 원전에 그 답이 있었다. 서유기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원전을 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제야 원전을 만났으니 애석하기 짝이 없다. 同虛空相 一無所有(동허공상 일무소유, 공과 상을 함께 비우면 하나라도 가진 게 없어지리라.)(232쪽)는 문구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이었다. 상相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세상에는 끝이 있지만 공空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에는 끝이 없다. 그러니 상(相)의 개념을 가진 손오공은 공(空) 자체인 석가여래의 영역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공(空)인 석가여래의 손바닥을 상(相)인 손오공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관념의 규율에 잡힌 시선으로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공의 영역을 벗어날 수는 없다. 유(有)는 무(無)의 개념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결코 무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손오공이 유였다면 석가여래는 바로 무의 화신이다.
1편에는 우리가 아는 동화에는 언급되지 않은 현장법사 탄생의 비화가 나온다. 현장은 장원급제한 수재 진악의 아들이자 승상 은개산의 외손자이다. 아버지가 부임지로 가던 도중 홍강의 도적들에게 피살되고, 임신 중이던 어머니는 강제로 도적의 아내가 된다. 어머니는 도적의 위험을 피해 어린 그를 강물에 띄워 보낸다. 요행히 금산사의 법명화상이 그를 구해 현장玄獎이라는 법명을 주었다. 이런 이유로 현장은 어린 시절부터 절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그의 탄생의 비화는 이후의 그의 행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더불어 시대적 배경으로 당태종 이세민이 나온다. 신령한 능력을 지니고, 저승에 갔다가도 인연을 만나 살아서 돌아온다. 원래 관음보살의 명칭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다. 헌데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이름 첫 자가 세(世)자이므로 이는 황제만이 쓸 수 있다. 하여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에서 세(世)자를 뺀 관음보살(觀音菩薩)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서유기가 써진 시대적 배경을 엿볼 수 있다. 그 시대의 종교관 또한 마찬가지이다. 서유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교와 불교에 대한 기본 지식과 동양의학에 대한 지식 또한 필요하다. 우연치 않게 이전에 읽었던 책의 영향으로 이 세부분에 대한 용어에 낯섬이 없다. 이 또한 인연이다. 이전에 서유기 원전을 만났으면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낯설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 책과의 인연도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이름 없는 한 마리의 돌 원숭이였던 손오공은 수보리조사로부터 이름을 받는다. 원숭이를 뜻하는 호猢자는 음기가 강하니 좌변을 바꾸어 원숭이를 뜻하는 손猻이라는 글자에서 짐승의 변을 뺀 손(孫)이라는 성을 주고, 보리조사 문중의 12문과 중 10번째 지파를 의미하는 오悟자를 더하고, 공을 터득하라는 의미에서 공(空)을 붙여 손오공孫悟空이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공의 의미를 터득해야 하는 운명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름 없는 객체에서 이름 있는 주체로 거듭난다. 그러니 그때부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싶은 욕심에 빠진다. 자신이 가진 재주와 변신술, 근두운을 타는 능력을 자신을 위해 쓴다. 자신을 드높이고자 하는 욕망에 빠지는 순간 하나의 평범한 주체는 사고뭉치가 된다. 도를 깨달아 공에 이르라는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세상적인 욕망으로 무장하는 하나의 주체로서의 욕망의 화신이 된 것이다. 무기는 여의봉을 쓴다. 사오정은 원래 천상의 영소보전에서 난여(황제의 수레)를 모시던 권렴대장이었다. 반도대회에서 실수로 유리잔을 깨뜨려서 그 벌로 세상에 내려와 유사하(流沙河)에서 괴물노릇을 하고 있었다. 9개의 해골을 목에 걸고 있는 사오정에게 관음보살은 그의 업보를 씻기 위해 서역으로 법전을 가질러가는 선승을 도울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이름을 유사하에서 사沙자를 따 성으로 하고 沙悟凈이라는 법명을 지어준다. 항요장을 무기로 사용한다. 사오정이 목에 걸고 있는 9개의 해골 또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뒤에 나오지만 불경을 찾으러 서역으로 떠나는 삼장법사의 전생의 해골이다. 즉 삼장은 전생에서 9번이나 서역으로 불경을 가질러 갔지만 번번히 유사하에서 사오정에게 잡아먹힌다. 삼장은 전생에 이루지 못한 업장을 위해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런 삼장을 유사하에서 잡아먹었던 사오정이 삼장법사의 길에 도움을 준다. 이것이 불교에서의 윤회이고, 업보이며, 인연이다. 은하수의 천봉원수였던 저팔계는 술기운에 천상의 항아를 희롱한 죄로 세상에 태어날 때 잘못해서 돼지의 태로 들어가는 바람에 돼지의 형상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돼지로 태어난 저팔계도 우연은 아니다. 이 또한 그의 업보이다. 저팔계도 본인의 업보를 씻기 위해 불경을 가지러 서역에 다녀올 것을 관음보살에게 약속한다. 관음보살은 그에게 돼지의 몸이므로 돼지를 뜻하는 저猪자에 오능悟能이라는 법명을 하사한다. 무기로는 쇠스랑을 쓴다. 우리가 아는 팔계라는 이름은 삼장법사가 부여한 이름이다. 식탐이 많은 저팔계가 오훈삼엽(큰 마늘, 작은 마늘, 파, 양파, 부추는 오훈, 도교에서의 기러기, 개, 뱀장어는 삼엽을 의미하며 금기시 된다)을 즐기자 그걸 먹지 말라는 의미로 준 계명이다. 즉 팔계八戒이다. 원래 저팔의 법명은 저오능이다. 이처럼 서역 길에 동참하는 세 사람 모두 깨달음을 뜻하는 오悟자 돌림의 법명을 갖게 된다. 이 또한 인연이다. 삼장법사가 타고 가는 말은 서해 용왕 오윤의 아들이었으나 궁전의 명주를 태워서 벌을 받다가 그 업보를 씻기 위해 서역 길에 동참한다. 이처럼 삼장법사의 서역 길에 동참하는 세 사람과 말은 모두 하늘의 신선이었으나 죄를 지어 지상에 내려온 요괴들이다. 그러니 이후에 세 사람과 말은 구름을 탈수 있지만 유일한 육신을 가진 삼장법사만이 구름을 타지 못한다. 그러니 그 긴 서역 길을 발로 갈 수밖에. 그 여정은 이들 모두 자신들의 죄과를 씻기 위한 길이다. 업장 소멸을 위한 구도의 길이다. 구도는 자기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이다. 삼장법사는 전생에 못 이룬 성취를 위해, 말과 세 사람은 업장소멸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서역 길에 오른다. 여기서 우린 이들의 여정에 많은 고난이 따르리라는 것이 예상된다. 서유기의 초판에는 요괴가 없었다고 한다. 후에 각색을 거쳐서 요괴가 등장했다 한다. 업장소멸을 위한 그들의 강한 바램과 염원이 불경을 가지러 가기위한 서역으로의 행로에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人有善願, 天必從之 (인유선원, 천필종지,사람에게 착한 소원이 있으면 하늘은 반드시 들어준다.) 는 말처럼 그들의 바램이 하늘에 닿아 이루어진 것이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신령하게 통하는 마음이 생겨 동승신주 오래국 화과산에서 태어난 돌알, 그 돌알이 바람에 노출되고 풍화되어 원숭이의 모양이 된 것이 바로 돌 원숭이 손오공이다. 그러니 돌 원숭이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다. 탄생부터 특별하다. 그는 ‘에미애비’가 없다, 바람과 돌, 그리고 천지의 기운이 바로 그의 부모인 셈이다. 다른 말로는 근본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지의 모든 것과 교감할 수 있는 자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자연과의 혼연일체된 자연의 기운이 모여 살과 피가 되어 탄생한 것이 바로 손오공이다. 이후 사오백년을 오대산 화과산에서 왕노릇을 하다 어느 순간 삶의 무상함을 느껴 도를 깨치기 위해 신선을 찾아 나선다. 불로장생의 비방을 배우기 위해서다. 산에서 내려와 인간세상에서 신선을 찾던 그에게 비친 사람들의 모습은 어리석음 그 자체였다. 고작 수 십 년의 생을 살면서도 오로지 명예와 이익만을 추구할 뿐, 인생과 생명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한갓 짐승인 원숭이도 삶에 무상함을 느껴 도를 깨우치려하는데 그보다 더 짧은 삶을 살면서도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고찰은 작가의 해학이 엿보인다. 하지만 도를 얻고 능력을 갖추고 나서는 손오공도 인간 욕망의 행로를 그대로 따라가니 이 역시 아이러니다.
명예를 다투고 이익을 빼앗는 일 언제나 그만 두려나?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들면서 자유롭지 못하구나!
당나귀나 노새를 타면 준마를 생각하고
세상을 벼슬을 지내면 왕후가 되길 바라지
그저 입고 먹을 걱정에 고생하며 애쓸 뿐
염라대왕이 거둬갈 것은 언제 걱정하랴?
아들 손자 이어가며 부귀영화 누리려 할 뿐
머리 돌려 생각해보려는 이 아무도 없구나! (51쪽)
‘원숭이가 도를 체득하여 사람의 마음과 짝을 맺으니/ 마음은 바로 원수이란 말에 깊은 뜻이 있도다.(210쪽)’란다. 서유기의 주인공이 원숭이인 이유가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네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이 원숭이와 같다. 마음을 얻었는데 그 마음이 원수다. 도를 깨우친 후 얻은 마음이 세상적인 권력과 탐욕이 되었다. 소유와 지배의 도구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도’를 깨우친 순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역사에서 보면 진시황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대 제국을 건설하고 나면 불멸을 꿈꿨다. 힘이 생기면 그 힘의 증식을 위해 권력을 탐하고, 권력이 생기면 그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리기 위한 불멸의 존재를 꿈꾸는 것. 더군다나 원숭이는 자연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가. 그럼 자연에서 태어난 모든 것들의 욕망의 회로는 한가지이다. 그게 자연에서 태어난 산물의 숙명인가. 아니다. 오로지 인간의 형상과 지혜를 갖춘 것들만 그렇다. 돌 원숭이도 세상적인 지식과 재주를 알기 전까지는 그저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다. 그러던 그가 삶의 허무를 느끼고, 도를 깨우치기 위해 보리조사를 찾아가 삼재(三才)에서 벗어나기 위한 72가지의 술법을 배우고, 근두운을 타는 재주를 갖춘 순간 세상적인 욕망이 그의 마음속에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마음을 올곧이 붙잡아 두는 방법이 바로 도에 이르는 길이다. 수양을 통해서만이 원숭이 같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서유기는 일역본에 기초한 번역본이라 그 내용에 축약이 많았다. 우리는 서유기를 읽었으되 서유기를 읽지 않았던 것이고, 그 진면목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은 원전을 근간으로 한 완역본이라 서유기의 진면목을 들여다보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옛사람들은 글을 아는 이들이 적었기에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서유기도 그들이 읽어주던 책 중 하나였다. 원전으로 만나본 서유기는 마치 드라마의 대본 같다. 노래도 있고, 이야기도 있고, 춤도 있다. 요즘 말로 하면 뮤지컬이다. 연속극이다. 드라마처럼 한편씩 줄기차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읽은 이를 고려한 구어체 번역은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1편의 초반부는 우리가 동화책을 통해 익히 들어서 아는 이야기들이라 조금은 지루했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흥미진진하다. 동화로나 애니메이션으로는 만나지 못한 이야기들도 펼쳐지고, 시조가사와 어우러진 책읽기가 감칠맛을 더한다. 이제 2편부터는 본격적인 그들의 여정이 소개될 것이니 이 더운 여름날 인간 욕망의 화신인 그들이 불경을 얻기 위해 떠나는 흥미진진한 여정을 빌미삼아 이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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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