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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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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쓰는 기분
글쓴이
박연준 저
현암사
평균
별점9.4 (19)
박찬선



1. 띠지에 있는 문장, "나는 읽을 때 묶여있다가 쓸 때 해방된다."에 강렬하게 끌려 이 책을 받아들었는데, 막상 나를 오랫동안 흔든 것은 띠지에 있던 또 다른 문장, "시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당신은 자신할 수 있나요?"였다. 그 문장을 마주한 이래로 나는 이따금씩 시와 나의 거리를 가늠해보려고 애썼다. 대개의 순간 나는 시와 가깝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감성과 이성이라는 두 개의 영역 사이에서 나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언제나 이성과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시를 필사하거나, 소설을 읽을 때, 어느 날 눈이 마주친 그림 한 점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때면 말랑하면서도 물컹거리는 무엇이 내 안에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도 됐다. ... 시와 나의 거리라는 게, 애초에 구할 수 없는 값이라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골몰하는 것도 그랬다. 아, 이렇게 나는 또 뭔가를 '구하려고' 하고 있구나. 수학과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이럴 때만 꼭.





2. 박연준 시인을 좋아한다. <소란>의 따뜻함은 지인에게 여럿 선물하기도 했다. <모월모일>은 제주의 작은 책방에서 사 왔다. 덕분에 제주의 풍경이 한 뼘쯤 더 예뻐 보였더랬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이 책 <쓰는 기분>이 제일 좋다. 읽는 시간이면 늘 플래그와 함께하지만, 플래그 붙이는 데 야박한 편인 나도- 이번만큼은 '졌다!'고 생각하며 플래그를 마구 붙였다. (앞 장과 뒷장에 연이어 플래그를 붙이기도 했다. 이럴 거면 플래그가 다 무슨 소용이람! 하고 스스로를 탓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둘 다 놓칠 수 없는데, 어쩌라고ㅠㅠ!) 이 책이 유독 좋았던 것은, '쓰는 일'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실컷 들을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여기에 더해 '시'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생각들에 '오해'가 잔뜩 끼어있다는 것도 발견하고 슥슥 먼지를 털어낼 수도 있었다. 두루뭉술하게 한 칸에 섞여있던 개념들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세상에! 이 모든 것들이 단 몇 페이지로 해결되었다니) 그랬더니- 상당히 개운해졌다. 말개진 기분은 아무런 편견 없이, 구속 없이 무엇인가를 그것, 아니 그 이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3. 시인은 '시 쓰는 방법을 가르칠 방법은 없다'고 했지만, 시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다정한 선생님이셨다) 동시에, 시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많은 이들에게도 이 책을 선물하고 싶었다. 시를 써보는 것은 고사하고- 한 편 읽어보는 일도 버거운 우리에게 이 책은 '시'가 얼마나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었던지, '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시'가 우리 삶에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그러니까 어떻게 가까워지면 좋을지를 이야기한다.





각설하고, 비밀을 말씀드릴게요. 시는 '소리 내어' 읽을 때 자기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억하세요. 당신이 혼자 방에 앉아, 소리 내어 읽을 때, 시는 얼굴을 보여줄 겁니다. 시인 로르카 역시 이렇게 말한 적 있어요. "시는 입으로 읊는 것, 책 속의 시는 죽은 것." 그러니 여러분이 들고 있는 시집 속 글자들, 책 속에 못 박혀있는 글자들은 잠자거나, 죽은 척하는 말들입니다. 시인이 시를 쓰던 당시엔 펄펄 살아 날뛰던 글자들이었겠지요. 종이에 인쇄된 후 납작하게 눌려 움직이지 못하게 된 글자들을, 소리들을, 아니 음악을 깨워보세요. 깨우려면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입술, 목소리, 숨결로 글자들을 데려가보세요.(본문 중에서, 56-57쪽)





몇 주 전 관람했던 전시의 어느 작품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책 속에 가만 누워있는 글은 쓰이던 때- 쓰는 사람의 생생한 목소리였다고. 책이든, 신문이든, 잡지든 무엇이든- 매체를 타고 전해져 온 텍스트가 독자에게 와서 또 하나의 생명을 얻을 때는 독자가 텍스트의 주인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그러니 그 위에서 실컷 뛰어놀고, 밟아도 보고, 가만히 누워 쉬기도 하면서- 그것들을 느끼고, 대화하고, 사유하는 태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4. 그러고 보면 시는- 눈으로 읽는 것과, 필사하며 읽는 것과, 낭독하며 읽을 때 달랐다. 눈으로 읽을 때 잡지의 가십거리 같았던 시도 손끝으로 읽으면 달리 보였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낭독하며 읽으면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냈다. 시인이 경험에 이스트를 넣고 기다린 뒤,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다면- 시를 읽는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태도가 필요한 것 아닐까. 시가 끝날 때까지는 시인도 이 시가 어떻게 끝날지, 어디로 갈지, 어떤 힘을 담을지 알 수 없다는데- 그 시가 내게 닿아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지, 어떤 위로를 안길지, 어떤 에너지를 던져줄지 알 수 없는 건 당연할 테다. 다만, '쓰는 기분'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의 '읽는 기분'에도 그것이 조금은 반영되지 않을까. 반죽이 건강하게 발효되기를 바라는 마음, 정성스레 빚는 마음, 오븐에 넣고 기다리는 마음을 더해 서문의 문장들을 다시 읽는다.





쓸 때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내가 아니면서 온통 나인 것, 온통 나이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나인 것.



쓸 때 나는 기분이 전부인 상태가 된다.



현실에서 만질 수 없는 '나'들을 모아 종이 위에 심어두는 기분.



심어둔 '나'는 공기와 흙, 당신의 눈길을 받고 자랄 것이다.



내가 나 아닌 곳에서 자라다니!





쓸 때 나는 나를 사용한다.



나를 사용해 다른 사람에게로 간다.



그건 나를 분사해, 허공에서 입자로 날아가는 기분.





나를 당신에게 뒤집어씌우러 가는 기분.



나를 비처럼 맞은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살피러 가는 기분.



입자로 떠돌며 세상을 구경하는 기분.



그게 다가 아니지.



당신이 쓴다면, 서서 내 쪽으로 보내온다면 나는 당신을 뒤집어써야 할 게다.



그건 읽을 때의 기분.



당신을 뒤집어쓸 때의 기분.



시를 쓸 땐,



날개를 떨구면서 날아오르는 기분이 든다.



날개를 버려도 내가 나일 수 있다니, 내가 날 수 있다니!



('서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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