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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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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글쓴이
전범선 저
포르체
평균
별점9.1 (23)
박찬선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별 다섯 개를 먼저 그려야겠다. 너무너무 좋았다는 진부한 말밖에 번뜩 떠오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너무너무 좋았다. 이 책의 초고는 2021년 첫 열흘 동안 경상남도 산청군 지리산 자락에서 쓰였다. 사랑하는 이와 단둘이 산속 황토집에서 핸드폰을 끄고 지내는 사이, 그들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그 사유의 과정을 글로 남겼다. 그러니까 이 책은 비거니즘과 페미니즘, 평화주의와 생태주의- 또 요가와 로큰롤을 오가는 '사랑'이야기다.





나를 비우고, 특권과 자존심, 자의식을 버리고, 그 자리에 사랑을 채워 넣는 공부를 한다. 눈치 보지 않고 휘뚜루마뚜루 살았던 내가 세상 돌아가는 눈치를 본다. 사랑이란 눈치를 보는 일이다. 우리 모두의 하나뿐인 집, 지구에서 함께 고통받고 살아가는 식구의 안위를 챙기는 것이다. 사랑은 능력주의가 아니다.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자유와 평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사랑은 비거니즘이다. (본문 중에서, 19쪽)





이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느낌표 열 개를 썼다. 그동안 내게 비거니즘은 '채식주의자'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은 곧잘 글루텐 프리나 키토처럼 다양한 식습관 중 하나로 치환되어 이해되었고, 그들 사이에서도 우유를 먹거나 안먹는 것, 계란을 먹거나 안먹는 것 등으로 계급을 나누는 것 같아 어쩐지 불편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건대 비거니즘은 '철학'이었다. 좀 더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 채식을 선택했다면, 그 역시 나를 '살리기'위한 것이다. 나를 살리는 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너를 살리는 일. 그 대상이 꼭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오래된 부족주의에 다름 아니다.





해서 '비거니즘'이란 무엇이었던지 다시금 뒤적여본다. 음식, 의복 등 어떤 목적에서든 동물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착취와 학대를 최대한 배제하고, 나아가 인간, 동물, 환경에 이로운 식물성 대안의 개발과 이용을 장려하는 철학과 삶의 방식이라 정의되어 있다. 천천히 따라 쓰면서 '동물'에 다시 한번 밑줄을 긋는다. 임신-출산-육아의 과정을 겪으면서 의식적으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나는 여성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물에게까지는 그것을 적용시키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무심한 착취와 학대가 가혹한 것이라면,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일 터. 그렇다면 비거니즘은 취향이기 전에 엄연한 정치사상일지도 모르겠다.





요리에는 영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어 아무거나 먹던 날들이 많은 내게, 과일과 곡식으로 야무지게 차린 밥상은 그 자체로 놀라운 것이었다. (사진 한 장 없이 그것들을 상상하게 할 수 있다니!) 식물의 열매인 과일과 곡식을 그들의 '성기'라고 표현한 부분도 신선했다. 사과와 쌀을 먹는 것이 사과나무와 벼의 사랑을 먹는 일이라면, 씨앗을 뿌리는 일은 그들의 사랑을 세상에 나누는 일. 그렇게 사랑이 전해지고, 또 전해지는 선순환적 구조를 상상하다 보니 에덴동산이 이런 곳이겠구나, 생각하게도 됐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그 무엇을 향한 학대나 착취가 없었다. 함께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발 디디고 있는 땅, 먹고 마시는 것 모두가 서로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고 내게로 왔다가 흘러나갔다. 당장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남았지만, 그 장면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아름다웠다.





해서, '지금 우리의 관계는 틀렸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완전히 재정립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게 됐다. 하나뿐인 지구라는 집에서 동고동락하는 식구를 전부 아우르는 새로운 집단 정체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하지만 그 경계를 어떻게 허물 수 있을까. 여전히 흑인도, 여성도, 유대인도, 노동자도, 장애인도, 동성애자도- 그들이 그러하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오늘에.





놀랍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비거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설득시킨 그를 따라 오늘 저녁에는 고기를 줄이고, 채소를 올려보려고 한다. 그것이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행동'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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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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