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무라 사부로는 장인의 회사에서 사내보 편집일을 하고 있는데, 편집장과 함께 외근을 다녀오는 도중

버스 탈취 인질극에 휘말리게 된다. 범인은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었는데, 이 노인은 보기와 달리 카리스마와 말발이 상당하다. 그렇게 인질극이 펼쳐지던 와중 경찰이 투입되고 범인은 사망, 인질은 전원 무사히 구출된다 - 는 데까지가 초반부의 줄거리. 여기까진 읽는 게 더뎠다. 노인이 인질극을 벌인 '목적'은 알겠는데, 왜 그런 '목적'을 가지게 됐는지 이유를 모르니까 더 그랬지. 그리고 그 후 스기무라가 탐정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사건의 핵심에 더욱 다가가면서부터는 그야말로 상당한 흡입력을 자랑, 두께가 무색할 정도로 정말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미미여사의 추리소설답게 사회문제를 녹여내는 솜씨도 참으로 일품이다. 읽다 보면 버스 탈취 사건이 주는 공포 같은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 주위에는 더럽고 어두운 공포가 산재해 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어서 씁쓸했다. 다단계의 치밀함과 무서움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파고드는 그 섬뜩함이란..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이 서글펐다. 그리고 약한 만큼 악해질 수 있다는 점도. 하지만 회개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데서 희망을 찾아본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살아남는 인질들끼리 교류하는 부분이었다. 인질극 이후 묘한 유대감이 생긴데다, 새로운 사건으로 다시 묶여버리게 된 인질들은 교류를 계속해나간다. 성별부터 시작해 나이, 성격, 처한 상황 모두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갈등은, 이 소설 재미의 한 축을 확실히 담당했다고 생각한다.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정들어서, 스기무라가 활약하는 후속작에서도 이들을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결말. 결말에 호불호가 크다 카더라. 솔직히 나는 결말이 마음에 안 들었다. 막판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더니 마지막에 사건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는데, 사실 예상했던 것이라 이 사건 자체가 놀랍진 않았다. 하지만 그 해결 과정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마나 마음에 안 들었냐면, 너무 열받아서 여태까지 재밌게 본 내용이 다 날아가버릴 정도로 마음에 안 들었다. 리뷰 쓰면서 재밌게 본 부분을 다시 떠올리게 됐지만, 아무튼 나에게 이 결말은 '불호'였다. 다만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캐릭터는 꽤나 매력적이어서 결말이 어찌 됐든 후속작은 볼 생각이다. 음. 결말이 맘에 안 든 것 빼면 생각할 것들도 많고, 흡입력 좋고 재미난 소설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