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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헤리티지
글쓴이
박진서 저
한겨레출판
평균
별점9.8 (18)
YUN



 



나는 경상도에서 태어나 거기서 쭉 살다가 20대 중반에 서울로 왔다. 지방러로써 설움이 많았던 나는 오랫동안 서울 생활을 동경 했고, 끝내 상경에 성공했다. 서울은 이방인인 나를 그다지 환대해 주지 않았다. 마치 ‘정착하려면 좀 더 노력해 봐.’라고 말하는 듯 했다. 취업을 하고 결혼도 하면서 이젠 서울이 제2의 고향이 되었지만, 아직도 간간이 이곳이 낯설게 느껴진다. 특히 “어디에 사세요?”라는 질문에 “서울에 살아요”라고 대답하면, 여지 없이 “어디에서 왔어요?”가 뒤따라올 때 더 그렇다. 서울에 완전히 스며드는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한편으론 벗어버리지 못한 경상도 사투리가 애매한 내 정체성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서울주민과 이방인의 경계 그 어디쯤에서 서성이고 있는 나. 돈을 벌기 위해 구로동 봉제공장을 찾아온 노동자들이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구로동에 터전을 잡은 재한 동포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구로동 헤리티지≫는, 서울 구로동에서 나고 자란 저자가 자신의 시간과 경험, 이야기가 묻어 있는 ‘나의 구로동’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박진서의 구로동’은 지도상 행정 구역을 정확히 구분한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구로동의 지난 발자취와 그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 시간을 저자의 시선으로 풀어 헤쳤다는 것은 이 책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포인트다. 단순히 구로동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책은 많지만, 이 책은 저자가 토박이로서의 애정과 안정감 그리고 이방인의 낯섦이 공존하는 시선으로 구로동을 조명했다는 거다. 나는 이 점이 너무나도 좋았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구로동에서 살아가는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구로구청에서 1987년 민주화 운동을 끄집어 내는 저자의 사유가 인상적이었다.



 



"갈등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상징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약자와 소수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갈등’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 85



 



2부는 ‘일터로서의 구로동’을 다룬다. 나는 2부가 가장 마음에 깊이 남았는데, 과거 산업사회 봉제업의 주역이었던 구로공단에서 현재 디지털사회 첨단산업의 메카인 구로디지털단지로의 변화를 조망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노동과 노동자 이야기를 저자의 시선으로 잘 담아낸 장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구로공단의 저임금 노동착취가 당연했던 노동환경이 구로디지털단지에도 외형만 바뀐 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프게 짚어낸다. 여기서 저자의 노동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노동환경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돋보였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서울에 상경했던 40여 년 전 여공들의 삶과, 최저 임금을 간신히 준수하는 월급으로 장시간 노동에 임하는 디지털 단지 노동자의 삶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누군가는 “그래도 옛날보다 좋아졌지”라고 말하겠지만, 정말로 노동자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97



"인간이 갈 수 있는 모든 공간은 누군가의 일터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을 의탁하는 6411번 버스마저도 버스 기사에겐 일터인 것처럼. 내 곁에 노동자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가 있는 곳 어디든, 인지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노동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노동일 수도, 아니면 이름 없는 누군가의 노동일 수도 있는 흔적이 말이다." /  121



 



그리고 3부는 ‘중국인 밀집지역 구로동’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재한 동포와 같은 이민자와 소수자를 우리와 똑같은 구성원으로 대해야 함을, 그래서 우리나라가 다양성을 포용하는 진정한 민주사회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장을 읽을 때, 내 안에 숨겨진 혐오 감정도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가 지적했던 것처럼 나도 영화 <청년경찰>을 본 뒤로 대림역 중국인 커뮤니티를 잔뜩 긴장한 채 피해가곤 했으니까. 이제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첫번째 실천으로 구로동 중국인 커뮤니티에 있는 마라탕 성지순례를 떠나 봐야겠다.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음식 마라탕으로 내 안에 있는 혐오를 말끔히 씻어내고 다양한 타자와 연대하는 나로 거듭나 보리라. 



 



"세계 속의 한국 음식 열풍과 대한민국의 마라탕 열풍이 다른 듯 닮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이민자들의 식당은 사회의 차별과 편견 속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이들의 안간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이다." / 175



 



저자의 담백한 문장과, 풍선처럼 팽창했다 야무지게 매듭짓는 사유의 흐름이 좋아서 글을 꾹꾹 눌러 읽었다. 그래서 두껍지 않은 책이었음에도 완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껴 읽고 싶은 글 리스트에 이 책을 추가해야겠다. 독자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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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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