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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
- 작성일
- 2024.2.13
본 헌터
- 글쓴이
- 고경태 저
한겨레출판
2023년 3월, 충남 아산에서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그 중 눈에 띄는 유골은 ’A4-5'라는 식별번호가 붙은, 양손이 결박된 채 쪼그려 앉은 자세로 발견된 완전유해다. 아산시 성재산 교통호 안에서 발견되었다. 저자가 그랬듯 나 또한 ‘A4-5’ 사진을 처음 봤을 때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형체가 온전한 유해를 처음 봐서 놀랐기도 했지만, 그가 침묵하고 있는 사연이 무엇일까 질문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진 않았어도 그 때의 참상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아산의 성재산, 새지기, 설화산 등의 야산에는 한국전쟁 민간인 대량학살 희생자의 유해가 묻혀 있다. 아산에서의 민간인 학살은 1950년 9.25 수복 이후와 1951년 1.4후퇴 때 주로 일어났다고 한다.
억울한 뼈가 묻힌 곳이 비단 아산 뿐이랴. 한국전쟁은 휩쓸고 간 자리마다 민간인의 피와 눈물을 겹겹이 땅에 묻었다. 부역자 처단이란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고, 많은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었다. 전쟁이 끔찍한 이유는 모든 걸 파괴하는 동시에 인간의 인간다움을 앗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책은, 인류학자 박선주를 중심으로 아산 한국전쟁 민간인 대량학살의 진실을 파헤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뼈는 말하고 있기에,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인생을 더듬어 가보는 것이다.
‘A4-5’를 비롯한 유골들과 유품, 억울하게 죽은 ‘용길’, ‘주화’, ‘응렬’, 무명의 태아가 1인칭 화자가 되어 이야기한다. 나는 여기서, 저자가 마치 이들에게 인격을 부여해 재생(再生) 시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간 입 다물고 있어야 했던 억울함이 이로써 조금 덜어졌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학살 희생자뿐 아니라 학살 생존자와 가해자, 유해발굴단원의 증언도 읽을 수 있었는데, 당시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교차 되어 나오는 선주의 이야기는 다양한 화자의 목소리에 현재성을 부여한다. 70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땅 속, 과거의 어느 시점이 아닌 우리의 삶, 현재의 시점으로 끌어온다. 그리하여 미래에까지 ‘기억’하게 만든다. ‘기억’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동시성을 부여하는 매개가 아니던가.
선주가 유해를 땅 위로 끄집어 올려 이름을 찾아주었다면, 경태가 그들에게 인격을 부여해 말할 수 있게 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기억’함으로써 이들을 위로할 차례다. 더 이상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둠의 경계를 넘어 빛으로 나아가게 할 차례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읽어야 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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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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