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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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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네사 우즈 외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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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별점8.7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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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잔인한 것이 살아남는다와 맞닿아 있습니다. 교수 브라이언 헤어와 연구원 버네사 우즈의 공동 저서입니다. 책은 다정함을 강조하면서 미국 사회가 처한 극명한 분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싶었나 봅니다. 미국 사회의 치부를 많이 드러내고 있는데, 읽다보면 한국 사회도 그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두 저자는 모두 진화인류학을 전공했습니다. 저자들을 소개하는 책날개의 내용을 간략하게 옮겨봅니다.



 



헤어는 진화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과 교수를 맡고 있으며 개, 늑대, 보노보, 침팬지, 사람을 포함하여 10여 종의 동물을 연구하면서 세계 곳곳을 누볐다. 우즈는 진화인류학과의 연구원이며 월스트리트 저널, 내셔널지오 그래픽, 뉴욕타임스 등 많은 언론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책장을 넘기면 맨 먼저 우리나라에서 다윈 전문가로 꼽히기도 하는 최재천의 추천 글이 독자를 맞아줍니다. 최재천은 저자 중 헤어를 탁월한 영장류 학자로 추켜세우며 개를 연구한 그의 혜안을 신의 한 수로 평가합니다. 추천 글은 책을 읽기 전에 기대와 설렘을 품게 하는데 충분하고도 넘쳤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을 무렵에는 과연 통독이라도 했을까? 하며 긴가민가해 졌습니다. 추천 글의 문장들을 인용해 봅니다.



 



다윈은 자연선택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적자생존을 소개했다. 다윈의 죄는 거기까지다. 그는 생존투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가 돼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양한 예를 들어 풍성하게 설명했다. 그의 후예들이 오히려 그를 좁고 단순한 틀 안에 가둔 것이다. 이 책은 그 틀을 속 시원히 걷어낸 반가운 책이다.



 



가장 잘 적응한 개체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제거되는 게 아니라, 가장 적응하지 못한 자 혹은 가장 운이 나쁜 자가 도태되고 충분히 훌륭한, 그래서 서로 손잡고 서로에게 다정한 개체들이 살아남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이 특별히 반갑다. 조금은 외롭던 차에 학문적 동지를 만나 기쁘고, 인류의 기원과 보편적 인간성에 관한 참으로 탁월한 분석을 맞이해 더할 수 없이 반갑다. 아직도 성악설과 성선설 사이에서 흔들리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 중에서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정연한 논리로 이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책은 참 오랜만이다.



 



가장 잘 적응한 개체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제거되는 게 아니라, 가장 적응하지 못한 자 혹은 가장 운이 나쁜 자가 도태된다는 내용은 어떤 이들에게는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생존 경쟁 상황에 놓였을 때 가장 운이 나쁜 자에 자신이 해당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 한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도태될 확률은 더욱 높아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 중에서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라는 말에도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은 옳은 말이긴 하지만 가장 잔인한 종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같은 편끼리 다정할수록 다른 편에게는 더 무자비했습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숱한 역사들이 알려줍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자에게 친화력을 발휘하여 다정하게 다가간다는 것은 잔인한 강자의 가축처럼 길들여지더라도 생명을 부지하려는 마지막 수단일 수 있습니다. 응징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처지에 놓인 생명가진 것들의 마지막 보루가 다정함일 수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지만 읽어나가면서 책의 논지가 거슬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저의 이해가 불충분해서 그렇겠거니 했는데 책의 말미에 있는 감사 글과 신경인류학자 박한선이 쓴 감수의 글이 아리송해 하던 저의 이해를 지지해 주는 듯했습니다. 저자들은 책을 마치면서 사실은 호모 사피엔스의 악한 본성이 부상하고 있다는 경고를 하려고 했다고 시인하고 있습니다. 책의 서두를 장식했던 최재천의 추천 글과 겉도는 듯한 부분을 옮겨봅니다.



 



201610월쯤 우리는 우리 종 최악의 본성이 다시 부상하여 어떤 장소나 어떤 문화 속에서 표출될 수도 있다는 경고에 가까운 메시지로 초고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미국 대선이 끝난 후 경고가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느꼈다.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과학 문헌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했고, 다시 글을 쓰는 데 2년이 넘게 걸렸다. 우리 종이 가진 비범한 친화력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의 근본 원인을 생각하고 해법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책을 쓰고 싶었다.



 



우리는 과학 문헌 연구를 통해 공정하게 우리 주장을 기술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의 의견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 논문을 쓸 때와는 달리, 그리고 독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쉽게 읽히는 책이 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대안이 되는 다른 관점이나 우리의 주장과 상충하는 데이터를 전부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박한선이 쓴 감수의 글에서도 우리 종의 다정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인정하고 있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부분도 마저 인용해 봅니다.



 



토머스 홉스는 [시민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며, 동시에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주변 사람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애착과 공감의 본성이 있지만 동시에 우리 집단 외에는 죄다 열등하고 사악한 늑대무리라고 여기는 본성도 있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종이 될 수 있었다. 동시에 가장 끔직한 종이 되었다. 신석기시대 초기, 어떤 지역에서는 성인의 약 절반이 다른 인간의 손에 죽었다. 지금도 우리의 주적은 늑대가 아니라 인간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지금까지의 인류사는 그랬다. 하지만 덕분에 많이 죽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 부족을 향한 편협한 다정함이 더 넓은 집단을 향한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될 수 있을까?



 



책의 제목인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인간 본성의 한쪽 편에만 치우친 슬로건입니다. 그 슬로건은 언제 어떻게 우리를 현혹시킬지 모릅니다. 하지만 책의 본문에서는 다정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탐구하리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다정함이 어떻게 인류의 진화에 유리한 전략이 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또한 다정함의 이면, 즉 우리의 친구가 아닌 이들에게는 잔인해지는 능력에 관해서도 탐구할 것이다. 우리의 이 이중적 본성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민주주의체제를 위협하는 사회적, 정치적 양극화를 해결할 새로운 해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은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호모 사피엔스가 최후의 승자가 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쉽게 설명해 줍니다. 호모 에렉투스는 지구 거의 전역을 개척하고 불 다루는 법을 깨쳤던 탐험가이며 질긴 생존력을 지닌 전사였다고 합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사람보다 힘센 동물을 사냥하는 기술이 능수능란하여 주로 육식을 할 정도였으며 빙하 시대를 지배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짐승뼈 바늘로 방한복을 만들어 네안데르탈인보다 추위를 더 잘 견뎌가며 빙하기에도 확장세를 지속시켜 마침내 우리의 인류가 되었습니다. 책은 호모 사피엔스의 친화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종의 문화와 기술이 갑자기 다른 어떤 사람 종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고 우월하게 도약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 종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며, 그 일은 왜 우리 종에게만 일어났을까?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와중에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한 것은 초강력 인지능력이었는데, 바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다. 우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함께 일할 수 있다. 친화력을 갖춘 사람들이 밀도 높게 결집했을 때 뛰어난 기술을 발명해왔다. 다른 똑똑한 인류가 번성하지 못할 때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특정한 형태의 협력에 출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편의 협력을 와해시키고자 덤벼드는 다른 편이 있게 된다면 친화력은 발휘되지 않습니다. 지난 역사에서 또는 지금의 현실에서 측근에 의해 무너지는 상황들을 무수히 봐왔고 겪어왔습니다. 친화력이 최고조인 사람만 측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믿을 수 있어야 측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튼실한 친화력의 방어벽도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이라면 능히 뚫을 수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다정함은 이렇듯 돌변할 수도 있으니 온전히 믿을 게 못됩니다.



 



그렇지만 책은 극명하게 분열된 사회의 대안으로 친화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친화력이 같은 편을 넘어 다른 편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순진무구한 해법에 의문을 품자 화답이라도 하듯 책은 다음과 같이 시인하기도 합니다.



 



협력을 잘하는 더 큰 규모의 호모 사피엔스 무리가 다른 사람 종 무리를 쉽게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위협적인 외부인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책은 친화력이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진화했다고 합니다. ‘가축화란 야생동물을 인간과 함께 생활하도록 길들이는 것입니다. ‘자기가축화란 스스로 가축이 되고자 자신의 몸과 정신을 스스로 길들이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가축화를 통한 진화란 야생종이 사람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어찌 보면 살아남기 위해 길들여지면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가야 하는 마음 아픈 일일 수도 있습니다. 생명체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도리가 없을 때 자기가축화는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축화는 슬픈 현상일 것도 같은데 책은 사람의 배려심과 친화력이 자기가축화에 의한 진화의 일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축화된 종과, 이들과 조상은 같지만 야생으로 남아 있는 공격적인 종은 뇌와 신체가 다르게 발달한다. 인간에게도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자기가축화 과정이 나타난다. 자기가축화가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향상시킨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가축화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탓인지 저자들의 좋은 의도에 점점 공감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자기가축화는 사람이 사람을 가축처럼 길들이는, 스스로 길들여지는 고문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사람들이 개를 길들여가는 과정도 자꾸만 떠오릅니다. 개는 주인의 폭력과 먹이에 의해 길들여지면서 어느새 자기를 스스로 길들입니다. 인간 역시 국가정부에 의해, 기업 광고에 의해, 권력자에 의해, 부모에 의해, 연인에 의해 길들여지면서 자기 스스로를 길들여갑니다.



 



만일 개 훈련장이나 고문 현장을 확장시킨 듯한 자기가축화가 만연한 사회가 도래한다면, 친화력과 협력을 빙자한 정의롭지 못한 길들임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그런 길들임에 무감각적으로 적응해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그렇지만 책은 자기가축화를 극명하게 양분화된 미국 사회를 위한 탁월한 해법으로 제시하고 싶어 합니다.



 



공격성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자기가축화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은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경향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진정한 해법으로 고려해볼 강력한 도구다. 또 이것은 우리 종이 살아남고 진화하기 위해서 우리의 정의를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경고다.



 



미국 전 민주당 상원의원 톰 대슐은 의원총회라는 게 단합대회가 되어버려서 우리 편아니면 남남’, ‘다 죽여 버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한 바 있다. 소셜미디어가 이런 반목과 적개심의 낙인을 더 널리 퍼뜨렸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정치적 경쟁자들은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고 있을 여유가 없다. 경쟁자와 교제하는 것이 서로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럴 때 현재 워싱턴에서 부족한 덕목들인 신뢰, 협력, 협상이 가능해질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친화력을 발휘하여 의원들이 한 편이 되면 다른 편에 있는 국민에게 그 이득이 고스란히 돌아갈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듭니다. 하지만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한 편이 되어 국민과 친화력을 발휘한다면 국민과도 한 편이 될 수 있습니다. 양당 의원들과 국민들이 모두 같은 편이 되어 다정하게 지내게 된다면 플라톤이 구상한 이상국가보다 더 좋은 국가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친화력을 어떻게 생기게 할 것인가,입니다. 책은 유전적 교배를 통해 만든 여우의 친화력과 윤택한 서식지에 사는 보노보의 친화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친화력이 좋은 여우의 교배 실험 결과는 친화력이 유전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실험은 환경보다는 유전의 영향이 지배적이라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친화적 유전자와 호전적 유전자를 추출한 연구자도 있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여우나 개를 이미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화력은 가축화를 성공시키는 주요 요인입니다. 미래에는 가축화하기 쉬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친화력 좋은 여우를 만든 연구자는 그런 여우들이 많아지게 되면 그들 사이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대규모의 자기가축화하는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내다봤습니다.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는 저자들은 가축화의 좋은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개는 사람이 길들이지 않았다. 친화력 높은 늑대들이 스스로 가축화한 것이다. 이 친화력 좋은 늑대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현대 그들의 후예는 지구의 모든 대륙에서 우리의 반려동물로 살아가고 있다. 그에 반해 야생 늑대는 멸종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가축화가 동물을 우둔하게 만들었다는 기존 생각의 재평가 작업이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친화력이 동물들의 인지 능력, 특히 협력과 의사소통 측면에서 더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근거가 하나둘 쌓이고 있다.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은 가축화의 결과로 진화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은 동물의 가축화 실험이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사람에게도 적용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감수의 글에서 박한선은 야생동물의 이점과 자기가축화의 비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야생동물은 암을 거의 앓지 않는다. 가축과 인간만 자주 암을 앓는다. 가축화된 종은 감염병도 많이 앓는다. ‘자기가축화가설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 가축이 되었다. 사실 가장 높은 수준의 가축화를 이룬 종이다. 개도 스스로 인간에게 가축화된 독특한 종이다. 인간은 개와 마찬가지로 치매를 앓는다. 정신장애도 인간과 가축에서 흔히 발견된다. 외집단 혐오와 차별, 살인이나 전쟁 등 이런 비극의 이면에 자기가축화가 자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책은 인간의 자기가축화가 이뤄낸 성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8만 년 전에 일어난 사람의 자기가축화로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기술 혁명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화석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친화력이 여러 집단의 혁신가들을 하나로 연결함으로써 기술혁명을 추동한 것인데 이는 다른 어떤 사람종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가축화가 우리 종에게 준 막강한 능력으로 진화적 시간으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는 세계를 제패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 종들은 하나하나 멸종되어 사라졌다.



 



그런데 참 묘합니다. 친화력이 세계를 제패하고 다른 종들을 멸종시키는 잔인한 공격으로 둔갑했으니 말입니다. 책 역시도 그렇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시인합니다.



 



우리에게는 연민과 공감능력이 있으며, 집단 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은 진화를 통해서 획득한 우리 종 고유의 특성이다. 하지만 이 친절함은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는 잔인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자기가축화는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악의 공격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개와 보노보는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친화력을 강화했지만, 두 종 모두 자신의 가족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에 대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공격성을 발달시켰다. 개는 자기가 사는 사람의 집에 낯선 자가 다가오면 공격적으로 짖어댄다. 보노보 암컷의 경우에는 방어적 모성이나, 암컷 간의 유대로 오히려 보노보 수컷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띠곤 하는데 이는 침팬지 암컷과 비교해보아도 더 공격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공격성의 증가가 자기가축화에서 기인했다고 추정한다.



 



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가 친화력을 지닌 동시에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닌 종임을 설명해준다.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메커니즘이 닫힐 때, 우리는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소셜미디어가 우리를 연결해주는 이 현대 사회에서 비인간화 경향은 오히려 가파른 속도로 증폭되고 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논지를 놓치기가 일쑤였지만 책은 친화력이 호전성보다 생존에 유리하다고 입장을 견지하려는 듯합니다. 하지만 공격성에 대한 보상으로 더 우수하고 더 많은 후손을 얻을 수 있다는 이점도 간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책은 보노보의 친화력과 침팬지의 공격성을 대비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노보의 서식지는 식량이 풍부하여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합니다. 책의 그러한 내용은 칭기즈칸이 식량을 구하기 힘든 척박한 땅에 살았기 때문에 잔인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구나,하고 새삼 이해시켜 주었습니다. 친화력과 공격성은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생명체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 혹은 타고난 기질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생존의지인 듯합니다.



 



책은 앞서 친화력 좋은 여우의 교배 실험에서는 유전적 요인이 친화력에 지배적이라고 했지만 보노보의 경우는 환경이 친화력과 연관이 있다고 논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어떤 연구자가 했을 법한 엉뚱한 실험 하나를 상상해 봅니다. 경쟁 없이 생존이 가능한 윤택한 서식지에 살고 있는 보노보를 식량을 구하기 힘든 메마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면 그래도 사이좋게 다정하게 지낼까, 하고 말입니다. 책은 다음과 같은 실험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노보는 자기가 먹을 음식이 줄더라도 나눠 먹는 것을 선호했다. 보노보는 이미 잘 아는 같은 무리의 보노보보다 처음 보는 다른 무리의 보노보와 음식을 나눠 먹고 어울리는 것을 선호했다. 아무 대가가 없는 상황에서도 처음 보는 보노보를 기꺼이 돕고자 했다. 낯선 이를 두려할 이유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면 보노보는 기꺼이 새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는 듯했다. 우리의 실험에서 보노보는 낯선 이에게 공격적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더 끌린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보노보는 침팬지보다 훨씬 더 큰 포용력을 지닌 종인 셈이다.



 



저자는 같은 무리의 보노보와 다른 무리의 보노보를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른 무리의 보노보에게 음식을 더 잘 나눠주고 더 잘 어울리는 상황에 주목하여 보노보 친화력의 출중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음식을 나눠받지도 못하고 놀이에서도 배제된 같은 무리의 보노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다른 무리의 보노보 때문에 같은 무리의 보노보로부터 외면당한 보노보는 골을 전혀 내지 않았는지, 여전히 다정한 친밀감을 어떻게 보였는지 궁금합니다. 과학 실험은 이렇듯 연구 성과를 위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에만 한정시켜 관찰할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의 실험은 처음 보는 보노보이지 처음 보는 침팬지는 아닌 상황입니다. 중국인이 처음 보는 중국인과 나눠먹기가 쉽지 처음 보는 미국인과 나눠먹기는 쉽지 않습니다. 진보는 처음 보는 진보와 어울리기가 쉽지 처음 보는 보수와 어울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편 식량이 넉넉하지 않은 지역에서 보노보와 침팬지가 함께 살아야 할 형편에 놓였을 때, 보노보의 친화력과 침팬지의 공격성 중에 생존에 더 유리한 것은 어느 쪽이겠는가,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이번 책맛보기는 횡설수설이 이어지는 듯합니다. 저의 독해가 정연하지 못함을 고백하면서 책맛보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책은 다정함을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공격성 보다는 친화력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으나 명쾌하게 설득되어지지 않았습니다.



 



우주 자연은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보노보도 살고 침팬지도 살고 고릴라도 살고 사자도 살고 토끼도 삽니다. 다정함으로 살아남기도 하고 잔인함으로 살아남기도 하는 다양한 생명들이 지천으로 어우러져 살아가고 또 죽어갑니다. 자연선택과 자연도태는 그 자체로 신비인 듯합니다.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자연선택이 좋음이고 자연도태가 나쁨이라고 규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진화가 선이고 퇴화가 악이라고도 단정하면 안 될 듯합니다. 우리는 죽음 보다 못한 삶을 마주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퇴화나 도태가 반드시 무가치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궁핍한 피난길에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슬며시 자살을 합니다. 그 문장에 시선이 고정된 채 잠시 멍해졌습니다. 이름 없는 할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그 단 한 문장이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할머니도 생명인데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요? 아들 손자와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어서 질긴 생명력을 꼬옥 붙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생명 의지를 해제합니다. 남겨질 후손에 대한 사랑으로 말입니다. 그런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오로지 삶만이 오로지 선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악이나 도태로 쉽게 규정지으면 안 되는 죽음, 삶보다도 더 가치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이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삶도 죽음도, 자연선택도 자연도태도, 친화력도 공격성도, 진보도 보수도, 음도 양도, 선도 악도 인간적 관점이 아닌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는 그 가치가 다르지 않을 것같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답게 생명답게 나답게 생존을 일궈가는 그 길에 항상 책이 함께 하기를 바라며 이번 책을 덮습니다.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 https://youtu.be/QbNw7iKGx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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