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iamtrue
  1. 독자와 저자사이

이미지

도서명 표기
토지 1
글쓴이
박경리 저
마로니에북스
평균
별점9.6 (67)
iamtrue

왜 그녀는 괴물 인간들의 분노 표출 상대가 되어야 했는가라는 제목으로 삼월이를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삼월이의 몸과 마음을 속속들이 살펴보는 일은 무지한 저로서 쉽지 않습니다. 제대로 파고들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면서 허접한 탐구일 수밖에 없겠지만 도전해 봅니다. 삼월이를 통해 저자 박경리가 들려주고자 하는 인간 심리에 경청하면서 말입니다.



 



삼월이는 신분제 타파를 외친 개화파 지식인 조준구에게 겁탈을 당하면서 생기발랄했던 삶이 곤두박질칩니다. 윤씨부인 역시 동학당 우두머리 김개주로부터 겁탈을 당해 구천이를 낳아야 했고, 그 핏덩이를 외면하고서 어미의 죄책감을 안고 평생 살아야 했습니다. 삼월이는 매질을 일상적으로 겪으면서 아비도 모르는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죽어가도 그냥 방치했다가 죽고 나서는 밤마다 흥얼흥얼 울게 됩니다. 겁탈당한 두 여자의 삶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 다름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유전적 본성과 신분적 환경이 달라서일까요? 가슴이 아파서 차마 들여다볼 수 없을 지경인 삼월이의 참혹한 삶을 따라가 봅니다.



 



삼월이는 엄마 잃은 서희에게 따뜻한 등을 내밀어주고 봉순이의 구슬픈 심청가에 눈물짓기도 했던 정이 많은 여자였습니다. 구천이가 머슴이던 시절, 그에게 연정을 품기도 했지만 삼월이는 구천이와 별당아씨의 불륜적 도피행각에도 너그러울 정도로 동정심이 풍부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구천이를 사모하던 삼월이가 어느 누구보다 종적을 감춘 두 사람에게 동정이 깊은 일이다. 자신이 사모했던 사내가 규중에 있는 아름다운 아씨를 잡아챘다는 그 사실이 그에게 어떤 자긍심을 갖게 한 모양이다.



잘한 짓이라 할 사람이야 없겄지요.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질렀지요. 그걸 누가 모릅니까. 그러나 사람의 정리는 그렇지 않다 그 말 아닙니까.”



 



그런 삼월이를 하인 돌이도 복이도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삼월이의 청춘은 착하고 어여뻤을 듯합니다. 돌이는 길상이와 동행이 되어 심부름을 가는 길에 삼월이 이야기를 꺼냅니다.



 



길상아! 니 삼월이를 우찌 생각하노?”



우찌 생각하기는요? 마음씨가 착하지요. 삼월이는 와 들먹이오?”



맴이사 착하지. 귀녀 그년하고는 천양지간이지. 마음도 어질고 여자답게 생기고, 그래도 여자는 모르는 기라. 알 수 없는 기이 여자 맴이라. ”



 



공감능력도 지나치면 탈일까요? 악독한 귀녀는 강포수의 순전한 사랑도 받아보고 아들까지 세상에 남겼지만, 오히려 정이 많은 삼월이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다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참혹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조준구가 윤씨부인으로부터 멸시를 당했다고 느낀 날, 삼월이는 겁탈을 당합니다. 조준구의 분통이 삼월이를 덮치게 했던 것입니다. 당시 삼월이는 조준구를 혐오하고 있는 터였는데 말입니다. 삼월이는 조준구에 대한 꺼림칙한 인상에 대해 봉순네에게 말한 바 있습니다.



 



와 그런지 처음부터 주는 거 없이 밉더마요. 얼굴은 뭐 핥아놓은 죽사발맨치로 미끈하지만. 귀녀는 이마가 번듯하고 살빛이 희어서 잘생긴 인물이라 카지만, 남자란 어글어글한 데가 있어야......손은 와 그리 여자 같고 다리는 또 얼매나 짧십디까.”



 



겁탈을 당한 이후 삼월이는 용케 1년 가까이 조준구를 잘 피해 다녔습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삼수가 끈질기게 꼬드겼나 봅니다. 장차 최참판댁 재물은 조준구한테 넘어가게 될 거라면서 말입니다. 설사 그러더라도 삼월이는 같은 노비인 삼수의 못된 심성을 가까이에서 익히 접해온 그녀로서, 약아빠진 삼수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삼월이는 결국 자신을 겁탈했던 조준구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그녀 안에 내재된 유전자의 명령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조준구가 최참판댁 실세가 될 것이라고 믿은 탓인지 삼월이는 종첩이 될 희망을 품고서 제 발로 그를 찾아가게 됩니다. 삼월이는 평소에 조준구의 고약한 인성을 충분히 보고 겪었을 텐데 왜 그의 첩이 되려는 꿈을 꾸는 것일까요? 여자 마음은 알 수 없다던 돌이의 말이 적중한 셈입니다.



 



삼월이는 종첩으로 등극할 미래의 보상만을 염두에 두면서 현재의 자신을 전혀 배려하지 않습니다. 종첩의 꿈을 이루겠다는 것은 타인들의 멸시를 감내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꿈은 분명 삼월이의 자긍심에 손상을 입힐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가 자기를 소외시키게 되고 정신은 점차 멍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월이는 종첩이 되어 윤택한 의식주를 누릴 달콤함에 빠져있다 보니 자기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애초부터 조준구 심중에는 삼월이를 종첩으로 삼을 의향이 전혀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을 먼저 마시는 격이니 그녀 앞날에 예고된 수난은 피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조준구는 상대가 노비인 만큼 크게 말썽이 있을 염려나 책임이 없으니 저지르기 쉬운 일이기도 했었다. 여자란 으레 그런 것인지 구렁이를 보듯이 싫어서 눈이 마주치던 것조차 피하던 삼월이는 눈길이 달라졌다. 두 번 세 번, 사나이 품에 안긴 후로는



나으리, 절 버리시면 저, 저는 죽습니다하는 것이었다.



설마 너를 버리겠느냐? 울지 마라. 걱정 마라. 눈들도 많고 하니 경망스런 처신은 말아라.”



품에 안고 있을 때는 무슨 말을 못할까. 일시의 노리갯감으로 지내다가 훌쩍 떠나가버리고 잊는다 하더라도 별 수 없는 일이다.



 



조준구에게 버림을 받는다면 종첩의 꿈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삼월이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꿈에 매달려 얼마나 더 비굴하게 처신했을까요? 아무런 바람이나 기대 없이 그냥 조준구 자체를 연민하고 좋아했더라면 불안이나 두려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삼월이는 종첩의 꿈을 품는 순간부터 불안을 키우는 삶의 한가운데 서게 됩니다. 종첩이 되느냐 마느냐는 조준구의 처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삼월이는 왜 조준구에 매달려 자신을 돌보지 않으려는 것일까요? 그녀의 몸에 새겨진 유전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일까요? 여성의 정조를 중시하는 당시의 문화 때문일까요? 엄중한 신분제도 때문일까요?



 



나이 든 봉순네의 사려 깊은 연륜은 그 모든 것이 이유라는 것을 꿰뚫고 있습니다. 우선 삼월이가 자신의 몸을 벗어버릴 수 없는 한, 타고난 천성이 원하는 바를 떨치기 힘들다는 것이고, 거기다가 당시의 신분제도나 정조 문화 같은 사회 구조가 겁탈 당한 삼월이의 발길을 다시 조준구에게로 향하도록 부추겼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듯 삼월이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봉순네는 은근히 마음이 쓰입니다. 조준구와 가까이 지내면서 삼월이의 몸가짐이 전과 달라진 것을 감지한 이후부터, 혹여나 삼월이가 조준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서희를 해코지하게 될까봐 마음 졸이게 된 것입니다.



 



삼월아, 너 몸조심해야 한다. 니 잘못이 없는 것은 나도 안다. 니가 피하노라고 고생한 것도 안다. 그러나 이자부터는 니 맘도 니 맘대로 안 될 기니 그기이 걱정이구나. 어디 가서 원망할 곳도 없일 기고 천하게 태어난 거나 한탄할까....”



 



말을 하면서도 봉순네는 막연해진다. 조준구는 양반임에 틀림이 없다. 상사람이 항거해서는 안 되는 양반이다. 삼월이 종의 신분인 이상 울며 겨자 먹기로 용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봉순네의 기분이 막연해지는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삼월이에 대한 기분에도 있다. 봉순네는 조준구를 늘 의심해왔고 경계해 왔다. 그 적의를 이제 삼월이에게도 가져야 하는지 망설여지는 것이다.



 



여자란 어리석다. 본성이 착하고, 귀녀와는 천양지간이라 하더라도 한 번 몸을 허락한 남자에게는 상대가 몹쓸 인간일 경우라도 여자는 마음이 약해지며 눈이 어두워지는 법이다. 서희를 데리고 산에는 뭣하러 갔었느냐고 나무랐던 것도 봉순네의 마음은 결코 평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우도 좋고 낯가죽도 뚜겁지.’ 조준구에 대한 비방도 이제는 삼월이 앞에서는 드러내놓고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라는 팔잔가 배요.”



삼월이 푹푹 울기 시작한다. 그의 마음도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노비들의 마음과 삼월이의 마음은 다름이 없었다. 붙이 없는 외로운 최참판댁 집안을 들어먹으려고 노리는 늑대같이 조준구를 보았었다.



니를 생각하면 서울 그 양반 형편이 나아져서 소실로 데려가기만 한다믄 니를 위해서는 더 바랄 기이 없일 성싶다마는, 어디 사는 일이 뜻대로 되더나?”



 



세상을 겪을 만큼 겪은 봉순네의 예감은 적중합니다. 종첩 되기를 원하는 삼월이의 꿈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조준구는 최참판댁 재물을 하루빨리 손쉽게 갈취할 요량으로 서울 아내와 자식을 대동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조준구와 삼월이의 관계는 최참판댁 식솔뿐만 아니라 이미 마을 사람 모두가 아는 비밀이었기에 크게 낙심한 김훈장도 허탈해 합니다.



 



허허, 그것 참 안되었고나. 강약이 부동인데, 몹쓸 짓을 했구먼, 아무리 종년이기로 노류장의 계집이 아닌 바에야, 그럴 수가 있나. 몸을 버렸으면 의당 데리고 살아야지, 허 참, 그렇게까지 몹쓸 사람인 줄은 몰랐구먼,”



 



남 말하기 좋아하는 김서방댁은 날로 여위어가는 삼월이가 측은하지도 않나 봅니다. 삼월이 처지를 내심 안쓰러워하던 김서방을 붙들고 삼월이 비방을 늘어놓고 악담을 퍼부어 댑니다. 간악한 귀녀의 꿈이 좌절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 많은 삼월이의 꿈 역시 진정 꺾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느끼기 때문일까요?



 



그눔우 가시나 지 푼수에 그 양반 소실 될라 캤던가? 지 주제에 돌이나 복이나 끼어맞추어 주는 대로 기다리고 있일 일이지. 낯짝 반반하다고 넘친 생각을 헌 기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치다보지도 말라 캤는데, 그 생각을 못하고 지 신세 지가 조졌지.”



 



착하고 바른 삼월이 눈에 조준구의 몰염치와 간교함이 보이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그렇지만 삼월이 자신에게만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종첩이 되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간절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욕망으로 인해 상처 입는 순간은 너무나 빨리 다가왔습니다. 조준구는 삼월이를 노골적으로 무시했고 눈이라도 마주칠 양이면 혐오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어느 날 뒤꼍에서 준구와 마주친 삼월이는 눈에 눈물이 글씬 돌며 불렀다.



나으리, 너무 하십니다. 너무 하십니다. 나으리께서 마, 말씀해놓으시고, 으흐흐....”



이 요망스런 것이 잠자코 처박혀 있을 일이지. 뉘 앞에서 말대꾸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다짜고짜 주먹을 쥐고 삼월이 볼을 쥐어박았다. 얼굴을 감싸며 땅바닥에 쓰러진 삼월이는 소리 죽이며 운다. 준구는 침을 칵 뱉으며 돌아섰다. 이튿날 집안 하인들은 삼월이 볼에 시퍼렇게 멍이 든 것을 보았다. 밤새껏 울어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제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삼월이는 상처받은 자신을 모른 척합니다. 자기소외는 차곡차곡 쌓여서 삼월이의 정신을 병들게 할 것입니다. 조준구에게 받은 상처에 소금을 흩뿌리기라도 하듯 홍씨는 삼월이를 가두어놓고 닦달하기에 이릅니다. 김서방댁으로부터 종첩 운운하는 언질을 들었고 조준구에게서 꼬투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년! 바른 대로 일러라! 내년이 스스로 나리한테 꼬리를 쳤지. 이실직고 못하겠느냐!”



, 아니옵니다.억울합니다. 저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십니까



이년 보게나. 죄가 없다? 죽일 년!”



매는 삼월이 등에서 연신 바람을 일으켰다. 적삼 속의 맨살이나 다름없는 등이 물든 것을 볼 수 있다. 부러진 매를 두고 새 것을 집어든다. 삼월이 얼굴에 매가 날았다. 손등이 부풀고 얼굴이 부풀었다. 샛노랑 적삼이 찢어졌다.



죽여주시오. 이렇게 된 몸, 살아 무엇 하겄소. 기왕 죽을 몸이라면 할 말 다 하리다. 비록 천한 종년의 몸이오나 제 몸 지킬 줄은 알고 있었소. 가냘픈 여자의 몸으로서 겁탈, 아이고! 그 나으리에 그 아씨.”



이년! 뉘에게 말 대꾸냐!”



입술이 터져서 피가 흘렀다. 삼월이는 차라리 죽고 싶어 이를 갈며 대항한다. 그의 마음 속에는 매질하는 홍씨에 대한 원한보다 준구에 대한 원한이 가득 차 있었다. 홍씨는 신들린 무당같이 삼월이를 때리고 있었다. 나자빠진 삼월이는 이를 악문 채 신음을 누르고 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진 옷 사이로 내비친 살에 지렁이 같은 매 자국이 휘감겨 있었다. 홍씨는 미소를 머금는다. 잔인하다든가 앙칼지다든가 그런 표현보다 무지막지하다 할 수밖에 없는 얼굴이었다. 방바닥에는 부러진 매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비틀거리며 문지방을 넘는 삼월이 뒤통수를 향해 홍씨의 욕설이 쫓아갔다. 마루 끝에서 내려서려고 휘청거리던 삼월이가 돌아본다. 불꽃이 이는 것 같은 두 눈이 준구를 본다. 준구는 당황한 듯했으나.



이년! 썩 나가지 못할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방문을 닫는다.



흥 자알 하시었소.”



홍씨는 남편에 대해서는 심히 노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윤씨부인과 봉순네의 목숨을 앗아간 후 조준구 내외는 최참판댁 재물을 차지하고 향유하기에 바빠집니다. 연거푸 들이닥친 흉년은 그들을 더더욱 유유자적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넘치는 재물에 쾌락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상할까요? 조준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쾌락을 환기합니다. 우선 다루기 쉬운 삼월이를 떠올립니다.



 



준구는 손쉬운대로 삼월이를 다시 농락하려 했다. 그동안 삼월이에게 냉혹했던 처사가 생각키워 께름칙하였으냐 몸을 허락한 계집이니 언제나 제 물건이라는 비윗살 좋은 자신감이 행동을 부채질했다. 준구는 삼수에게 넌지시 뜻을 말하고 삼월이를 데려오게 하였다. 삼월이는 자정 넘어 사랑 뒤켠으로 해서 찾아왔다. 여자는 말이 없었다. 웅크린 모습은 특별히 준구를 만나기 위해 몸단장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납을 부어 만든 듯 무겁게 앉아 있었다. 준구는 비시시 웃었다. 어둠 속에서 삼월이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망해라! 망해라! 여자 원한이 오뉴월에 서리도 내리게 한다더라!’



속으로 그렇게 저항했던 삼월이지만 잠자리가 거듭될수록 삼월이는 조금씩 마음을 풀기 시작한다.



불쌍한 여자였다. 삼월이는 어느덧 그 몸서리쳐지던 핍박을 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삼월이와 조준구가 함께 있는 현장이 홍씨에게 발각됩니다. 그날 홍씨는 삼월이 머리채를 손아귀에 틀어쥐고 뒷채로 끌어들여 폭행을 퍼붓습니다.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포악무도한 매질을 끝낸 후 골방에 가둡니다. 한동안 삼월이는 우리에 갇힌 동물 취급을 당하며 살게 됩니다.홍씨는 삼월이를 일벌백계의 본보기로 삼았던 것입니다. 감히 종첩이 될 꿈을 꾸는 자에 대한 경고성 처벌이었기에 지독하고 가혹했습니다.



 



삼월이는 죽은 것과 다름없이 뒤채 골방에 가두어졌다. 차라리 죽은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산발을 한 채 옷은 갈기갈기 찢기어져서, 방 안에는 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골방에서 계집종들의 거처로 돌아온 삼월이는 명은 붙어 있었지만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집안 노비들은 그런 삼월이의 꼴을 애써 못 본 척하려 했다. 홍씨의 눈이 무서운 데다가 노리개가 된 계집이라는 멸시의 감정이 있었다.



 



삼월이는 넋이 쑤욱 빠진 채로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 보니 몸의 상처들은 아물어 갔습니다. 정신은 아직 회복하기가 어려운 듯 멍한 채로 말입니다. 정신이 치유되지 못한 이 가엾은 삼월이를 음흉한 눈길로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삼수와 조준구입니다. 극악무도한 그들은 삼월이를 괴멸시킬 올가미를 계획합니다. 삼월이를 구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는데 말입니다.



 



삼월이는 회복이 빨랐다. 회복도 빨랐지만 얼굴도 예뻐졌다. 마당 한가운데 멍하니 서 있을 때는 더 예쁘게 보였다. 무심한 아이의 얼굴이 예쁜 것처럼. 햇볕을 못 본 얼굴은 희었고 두 볼이 불그레할 때도 있어서 전보다 앳되게 보이기도 했다. 이런 삼월이에게 삼수는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기왕 못쓰게 된 계집, 임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그 긴피를 어떻게 알았는지 준구는 어느 날 삼수를 불렀다.



내 그년을 너에게 줄까 싶은데 어떠냐?”



삼수는 몹시 당황한다. 삼월이를 데리고 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준구처럼 심심풀이라면 모를까 헌 계집을, 떠다 맡기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년 한테 무슨 임자가 있겠느냐. 자네가 얻어서 살면 우선 마님이 마음을 놓으실 게고. 계집이 쓸 만한데 버리기는 아깝고.” 하면서 준구는 씩 웃는다. 그 저의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삼수에게 밀어붙여 놓고 생각이 날 때는 좀 빌리자는 뜻이다. 삼수 역시 얼굴에 음탕한 웃음을 띠며 속으로 생각한다.



제기럴! 밑져야 본전이다. 그깟 년 살다 버리믄 되는기고, 아무튼지 간에 노리개는 노리개 아니가. 따지고 보믄 같이 갖고 놀자는 건데 머가 나쁘노. 그라믄 이 양반하고 나하고 베갯동서가 되는 거 아니가?’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삼수의 계산은 얼토당토않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삼수는 조준구로부터 토사구팽 당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노비인 삼수와 삼월이는 신분타파를 외친 개화파 지식인 조준구의 교활함을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조준구는 이미 귀녀 칠성이 김평산을 끌어들여 최치수 교살을 암시하고, 그 사건에 관련된 세 사람은 처형되었지만 조준구 자신은 버젓이 양반 행세를 고수하면서 재산 갈취에 태연히 나서고 있는 파렴치한이자 철면피였으니 그를 당해내기는 천부당만부당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순이는 삼월에게 귓속말을 했다.



니 그만 도망해라. 내 말 듣는 기이 좋을 기다. 나으리는 니를 단념 안 하실 기고 니꼴이.....삼수 놈까지. 이분에 또 발각이 나믄 니는 마지막이다. 서울아씨가...내사 마 그 생각만 하믄 살갗이 떨린다. 그렇기 표독스런 사램이 어디 또 있겄노. 이집 아니믄 설마 못 살겄나. 소리도 매도 없이 멀리 가부리라.”



그러나 삼월이는 도망을 가지 않았다.



 



삼월이는 현재 자신의 삶에 그럭저럭 만족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최참판댁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을까요? 삼월이는 도망가지 않음으로써 조준구와 삼수가 만든 올가미 안에서 그대로 갇혀살게 됩니다. 새로운 환경을 찾아 자신을 새롭게 창조한다는 것은 험난할 수 있습니다. 생계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적응하고 자립하는 그 길은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최참판댁 노비로 살면 흉년에도 배를 곯지는 않을테니까요.



 



얼마후 삼월이는 기미가 씐 얼굴이었다가 어느새 배가 불쑥 솟아오릅니다. 임신을 한 것입니다. 삼월이는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고서 별당을 정신없이 히적히적 걸어다니는 엄마가 됩니다. 몸가짐이 어수선해진 삼월이는 채마밭에서 배추를 요량 없이 닥치는 대로 뽑아젖히기도 합니다. 삼월이는 자신이 엄마가 된 난감한 상황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몰라 정신이 더 어리둥절해졌는가 봅니다. 삼월이는 배추 뿌리를 오독오독 씹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런데 그 얼굴 한가득 멍이 퍼져있습니다. 삼월이에게 이제 신체적 멍은 대수롭지 않은 듯합니다. 멍든 몸을 내몰라라 할수록 남에게 보이지 않는 정신적 멍은 깊고도 넓게 자리잡아 갈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지렁이처럼 목을 휘감은 것은 손톱에 할퀸 자국이다. 삼월이 얼굴에서 피멍이 가실 날은 없었다. 그래그랬던지 본시부터 그런 얼굴이거니 생각하기라도 하듯 남들은 말이 없었고 본인 역시 울고 푸념하는 일이 없다. 전에도 삼수는 매질이 잦은 편이었지만 요즘 부쩍 심해졌다.



 



삼수는 조준구한테 찬밥 신세가 되자 애꿎은 삼월이에게 화풀이를 해댔던 것입니다. 삼수는 조준구가 서울에서 데리고 온 하인들을 자신보다 더 신뢰하게 되자 노여움을 삼월이에게 풉니다. 하인이 양반과 대등해질 날을 꿈꾸게 한 조준구를 위해 온갖 편의를 다 봐주었더니 그 충성에 대한 대가가 따돌림이라니 삼수는 그 배반감에 치가 떨렸을 법합니다. 훗날 조준구의 배반은 생명의 은인 삼수를 일본의 손을 빌어 뒷산에서 총살시킴으로써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자신의 명예와 안위, 재물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 조준구입니다. 결국 삼수나 삼월이는 둘다 조준구의 언변을 믿고 권모술수에 휘둘리다가 처참한 꼴이 되었던 것입니다.



 



개멩이 되믄 종놈도 금테 벙거지 쓸 거라고 함서 꿀 겉은 말로 살살 꼬우더마는.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르더라고 만석 살림 틀어쥔 데 내 공은 없었이까? 못쓰게 된 계집년하고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자식이라니, 빌어묵을! 네년 때문에 나는 밑졌다. 뻬 빠지게 일 봐주고 헌 계집을 물리받아? 복이 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생짜 가시나 연이를 얻었는데 내가 미친 지랄을 했제.”



 



삼월이는 폭행을 당할 때마다 햇병아리처럼 삑삑거리며 약한 비명을 질렀으나 날이 새면 집안의 궂은 일을 스스로 도맡아서 한다. 가늘었던 허리는 굵어지고 손끝은 뭉뚝하고 손마디는 굵어지고 말이 적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을 알 수 없었는데 사람들은 늘 반 정신이 나갔다고들 한다. 한집 안에서 조준구 홍씨를 만나는 일도 드물어졌다. 막일꾼이 되었으므로 사랑이나 안채 출입이 없었기 때문이다. 홍씨는 삼월의 존재 따위는 잊어버렸다. 그런 점에서는 조준구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 첩이 있었고 하동 읍내에도 기생이 있어서 그랬다.



 



배추를 다듬는 삼월이 등 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지적 장애를 가진 개똥이가 찢어지게 울어대는 아이를 쳐들고 둥가둥가 하더니 삼월이 앞에 내밉니다. 지능이 낮은 개똥이도 젖달라는 아기의 울음을 본능적으로 느끼나 봅니다. 그런데 그 옛날 공감능력이 탁월했던 삼월이는 어디가고 없는지 아기는 더러운 채로 배고픈채로 방치되었던가 봅니다. 그토록 정이 많았던 삼월이였는데 왜 지금은 연약한 아기의 고통에조차 공감하기가 어려울까요? 삼월이는 아기 생명 돌보는 일에 도통 관심이 없는 우울한 엄마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젖이 나야 믹이제. 울거나 말거나 내버리두지.”



젖을 물린다. 아이는 허겁지겁 젖을 빨았으나 목에 넘어가는 게 없었던지 어미 가슴에 주먹질을 하며 다시 운다.



 



삼월이는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을 잊은 듯합니다. 삼신당 옆 개울가 바위에 앉아 참외를 깎아서 잘도 먹습니다. 그러다가 삼월이는 껍질도 안 벗긴 참외를 통째로 와작와작 깨물어 먹습니다. 미치광이같이 맛도 모르고 다섯 개나 후딱 먹어버립니다. 실은 좀전에 저녁밥도 반찬없이 맨밥을 게 눈 감추듯 먹었는데 말입니다. 굶주린 사람처럼 마구 먹다보면 허기진 마음이 조금이라도 채워질 듯하여 그런 걸까요? 이제 삼월이 곁에는 울어대는 아기가 없습니다. 아기는 이 세상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적나라한, 이처럼 비정한 자연도태를 실감하게 될 줄이야,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



 



삼월이는 이 세상에 참외 먹는 일 이외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는 듯 열중해 있다. 아니 부산스레 소리 내어 먹는 행위 자체를 잊고 있었던 것이나 아니었는지. 삼월이 모습은 수척하여 귀신이 저랬을까 싶을 정도다. 요 며칠 사이 삼월이 전과 같지 않다. 그동안 병신처럼 말이 없고 반 정신이 나갔다고들 했다. 열흘 전에 아이를 잃은 것이다. 이질을 앓았는데 약 한 첩 먹여보지 못하고 오히려 주위에서는 죽기를 바라는 야박한 인심 속에서 아이는 싸늘하게 식어갔다



내가 머 개새끼 겉은 그거를 궈여워 했건데?”



 



삼월이는 세운 무릎 위에 팔로 턱을 괸 채 그냥 앉아 있습니다. 날이 캄캄하게 어두워져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일어서더니 싸리나무를 헤치며 빠르게 쫓아 내려갑니다. 한참 내려가 불타 없어진 누각 빈터에 삼월이는 우두커니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한밤중이 되자 삼월이는 흥얼흥얼 나지막하게 울어댑니다. 한낮에 삼월이는 고통에 무감각한 듯 살지만, 밤이 되면 고통에 사무치는 한 여자로 한 엄마로 돌아오게 되나 봅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병들어 죽은 어린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에 밤새 우는 것일까요?



 



정이 많은 삼월이의 삶을 짚어보면서 감성에 대해 생각이 한참 머물렀습니다. 이성이 받쳐주지 않는 감성은 자기를 보살피는 자기 배려의 길을 혹여 잃어버리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iamtrue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3.8.29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8.29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3.5.2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5.25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3.5.9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5.9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사락공식공식계정
    작성일
    2025.6.20
    좋아요
    댓글
    80
    작성일
    2025.6.20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6.19
    좋아요
    댓글
    149
    작성일
    2025.6.19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6.24
    좋아요
    댓글
    96
    작성일
    2025.6.24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