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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chocolate
- 작성일
- 2024.2.15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 글쓴이
- 황경신 저
소담출판사
떨림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들
?
읽고 있는 책에서 좋은 구절을 발견했다. 떨림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들. 작가는 그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대한 묘사 안에 슬쩍 끼워 넣었다. 하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움찔, 하며 숨을 죽인 채,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그 느낌을 붙잡으려 했다. 그리고, 순간이 지나갔다.
어쩌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떨림 그 자체가 아니라 떨림이 지나간 후의 여운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머물다가 떠나간 후 빈자리에 남아 이미 지나가버린 열정을 되돌아볼 때의 그 뒤늦은 떨림 혹은 떨림의 여운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뒤늦은 자각이 마음을 흔든다.
그의 마지막 문장
?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바보 같은, 심지어 사랑이 아닌 짓들까지도 용서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그러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게 되면 뭔가가 과해지고 뭔가가 모자란다. 말을 아껴야 할 때 너무 많은 말들을 해버린다거나, 손을 거두어야 할 때 옷깃을 붙잡는다거나. 그런 식으로 한 번 템포가 뒤틀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저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결국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당신이 감추고 있는 것들이 출렁이다 문득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찰나를 낚아채기 위해. 마치 캄캄한 밤의 끝에서 동그란 해가 솟아올라 모든 세계를 환하고 투명하게 밝히듯이.
당신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움직임, 손의 동작과 시선의 방향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당신은 감정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만, 감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과 나 사이의 가로 놓인 공백 안으로 치밀한 빗소리가 파고들었다. 아마도 당신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가리라. 모든 결론을 유보하고,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고. 세상의 모든 로맨스는 로맨티스트에 의해 창조될지 몰라도, 로맨티스트는 로맨스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당신이 최초에 의도한 네모반듯한 풍경 하나가, 액자에 담긴 그림처럼 내게 남았다. 프레임 바깥은 신경 쓰지 마. 너의 몫이 아니니까. 갈피 없는 나의 말에 마침표를 찍었던, 그의 마지막 문장을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
읽고 있는 책에서 좋은 구절을 발견했다. 떨림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들. 작가는 그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대한 묘사 안에 슬쩍 끼워 넣었다. 하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움찔, 하며 숨을 죽인 채,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그 느낌을 붙잡으려 했다. 그리고, 순간이 지나갔다.
어쩌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떨림 그 자체가 아니라 떨림이 지나간 후의 여운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머물다가 떠나간 후 빈자리에 남아 이미 지나가버린 열정을 되돌아볼 때의 그 뒤늦은 떨림 혹은 떨림의 여운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뒤늦은 자각이 마음을 흔든다.
그의 마지막 문장
?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바보 같은, 심지어 사랑이 아닌 짓들까지도 용서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그러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게 되면 뭔가가 과해지고 뭔가가 모자란다. 말을 아껴야 할 때 너무 많은 말들을 해버린다거나, 손을 거두어야 할 때 옷깃을 붙잡는다거나. 그런 식으로 한 번 템포가 뒤틀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저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결국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당신이 감추고 있는 것들이 출렁이다 문득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찰나를 낚아채기 위해. 마치 캄캄한 밤의 끝에서 동그란 해가 솟아올라 모든 세계를 환하고 투명하게 밝히듯이.
당신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움직임, 손의 동작과 시선의 방향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당신은 감정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만, 감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과 나 사이의 가로 놓인 공백 안으로 치밀한 빗소리가 파고들었다. 아마도 당신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가리라. 모든 결론을 유보하고,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고. 세상의 모든 로맨스는 로맨티스트에 의해 창조될지 몰라도, 로맨티스트는 로맨스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당신이 최초에 의도한 네모반듯한 풍경 하나가, 액자에 담긴 그림처럼 내게 남았다. 프레임 바깥은 신경 쓰지 마. 너의 몫이 아니니까. 갈피 없는 나의 말에 마침표를 찍었던, 그의 마지막 문장을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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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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