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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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은교
글쓴이
박범신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9 (281)
호랑냥이

외등의 추억....


 


 


박범신 작가의 [외등]은 특별했다. 그해 겨울 소설을 읽으며 나는 양파를 삼키듯 아린 가슴을 쓸어안고 살아야했다. "잠시 사랑했던 기억만으로도 행복했다"는 남자주인공의 다 주어버리는 사랑이 안타까워, 그의 모든 것을 다 받고도 평생을 그리워만 하는 몹쓸 핏줄인 여자주인공의 사랑이 안타까워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외등]의 추억은 상처를 남길만큼 특별했다.


 


 


그후 작가의 타작들을 보면서 나는 안도했다. [외등]만큼 시린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교] 앞에서 멈추어져 버렸다. 전작이 차가운 쓰라림을 안겨주었다면 후작은 활활 끓는 용광로 같은 불길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매혹의 순간...


 


 


나이를 떠나 사람이 사람에게 매혹되는 과정은 단 한 순간이다. 그 순간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해버린다. 그 속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희극이 소생하고 비극이 비집고 나온다. 시인과 은교, 그리고 지우의 관계는 동전의 어느면일까.


 


 


나는 그들이 알지 못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믿고 싶다. 시인이 바라보는 은교의 뒷면엔 지우의 모습도 있다. 제자 지우가 바라보는 은교의 옆면엔 항상 시인이 함께 서 있다. 그리고 은교는 그 둘 사이에서 그들관계를 재조명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면서도 그 충동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인간"이기 때문에.


 


 


지우는 시인의 시상에 매혹되어 버렸고, 시인 적요는 은교의 헤나로 인해 사로잡혀 버렸다. 은교는 그들의 공간에 갇혀 버렸다. 시간은 그렇게 그들을 하나로 묶어 버렸다. 180이 넘는 장신의 노인의 모습은 흡사 빼짝 말라버린 이집트 미라 람세스 왕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고 오랜 감옥생활을 버티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도무지 타협이라고는 모르던 시인 이적요의 삶 전부와 은교를 만나 보낸 그 얼마간의 시간을 비교했을 때 어느쪽이 진정한 시인의 삶이었을까. 제자 서지우의 헷갈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노시인의 마음을 눈치챘으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내. 존경과 질투사이를 넘나들며 가장 첨예한 갈등을 겪을 쪽 지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갖게 되었다. 물론 센세이션한 부분은 시인이 은교를 마음에 품어서 겪게되는 내적갈등과 질투일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은교가 겪는 갈등은 그다지 수위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연인]에서 그 백인 소녀의 시크함도 엿보이지 않고 그저 청순하게만 그려지는 매력적인 은교. 그들은 은교에게 매혹되는 순간 스스로를 잊어버렸다.


 


 


 


욕망을 풀어내는 두가지...


 


 


고고하고 청명한 늙은 시인의 욕망을 풀어내는 두 가지는 바로 포르노그래피적 소설과 소녀 은교다. 그저 은교만 사랑했다면 시인의 내적자아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자의 대필 소설을 쓰면서 그것도 자신의 시세계를 뒤집고도 남을 도발적인 소설을 선보이면서 그는 세상을 향해 또 다른 욕망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욕망이 그득한 사내였다. 신체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애초에 이적요는 그런 사내였기에 은교를 스치면서 욕망이 더해갔다. 어느날 갑자기 분출된 노인의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명의 미묘한 관계는 변호사 Q의 노트탐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제 3자의 시선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노인의 노트와 지우의 노트라는 1인칭 고백으로 이어진다. 어느 시인의 음악적 살인은 지우의 노트 결미쯤 가면 그 진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둘 다의 사랑을 알게 된 은교의 절규는 그래서 갈등의 산을 내려온다. 열일곱, 소녀가 가장 예뻤을때 소녀를 사랑했던 두 사내. 그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은 은교의 잘못도 그들의 잘못도 아니었다.


 


 


시인의 욕망과 제자의 두가지 마음, 소녀의 세계는 단 한권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관능적이다 라는 시인의 마지막 문장은 차가운 폭력성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림 음표가 된다. 관능적이다라는 표식으로 인해 우리는 소설을 제일 처음으로 돌려 다시 읽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애초의 그 시작이 관능이었기 때문이다.


 


 


작가 박범신의 신작은 [외등]처럼 나를 슬프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감각으로 사로잡혀 버렸다. 여름날 열에 들떠 거리를 방황하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코 끝나지 않을 소설의 고리안에 갇혀 있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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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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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표사진

    소피마르소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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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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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냥이

    작성일
    2010. 5. 1.

    @소피마르소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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