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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aros82m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0.7.19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
쉽게 말해 책 한 권을 백 번쯤 읽으면 그 뜻이 절로 통한다는 말이다.
요즘 시대에 이렇게 할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듯 보이지만 가끔 이 고사성어를 몸소 경험 할 때가 있다. 요 근래에 그런 경험을 가져다 준 책을 꼽아보자면 박상륭의 책과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 그리고 플라톤의 저작들이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읽기 어려웠던 책들이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거듭해 나갈수록 그 뜻이 조금씩 명확해 진다. 도무지 이해 불가의 암호 같은 박상륭의 글들이 마치 터진 둑에서 범람하는 물살처럼 밀려 들어오기도 하고, 사람들이 어째서 플라톤, 플라톤 하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그 미친 듯한 암호는 또 어떤가?
이건 의외의 쾌감이다.
덕분에 밤잠이 모자라기도 하지만 아편쟁이마냥 퀭해진 눈으로 탐독한다.
탐하듯 읽고(耽讀), 미친 듯 읽고(狂讀), 취한 듯 읽는다(醉讀).
유례
고사의 주인공인 동우의 자는 계직이며 사람됨이 인내심이 있고 배우기를 좋아했다. 흥평 중에 관중이 요란하자 형 계중과 함께 장군 단외에게 의지했다. 나물을 캐먹으며 부판을 하였으나 항상 경서를 끼고 다니며 머무르는 사이에 습독을 하곤 했다. 그것을 본 형은 웃었으나 동우는 고치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지내던 동우는 건안 초에 왕명이 내려지자 군에서 효렴으로 천거되어 점점 승진해 황문시랑에 추천되었다. 이 때에 한제는 태조에게 정치를 맡겼는데, 동우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경을 강의 받고 천자는 동우를 존경하고 믿는 바가 생기게 되었다.
황초에 동우는 노자를 익히기를 좋아하여 노자에 주를 달아 가르쳤다. 또한 춘추 좌씨전을 좋아하여 붉은 글씨로 별도로 다르게 고쳐 적어 놓기도 했다. 이에 사람들이 따르며 배우려 하지만 동우는 가르쳐 주기를 허락하지 않고 이른다.
“반드시 먼저 백 번까지 읽어 봐야 한다. 백 번까지 책을 읽게 되면 그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된다(讀書百遍意自見)”
라고 하였다.
또한, 따르며 배우려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만약 (배우기를) 갈구한다면 (특별히 따로) 때가 없다.”
라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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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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