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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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글쓴이
이은정 저
마음서재
평균
별점9.5 (30)
주리야

나는 지금까지 미지근했으므로



좀 더 뜨거워져 한다.



밤새 하염없이 짖어대는 저 개들처럼.




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즐거움일 것이다. 앎의 즐거움, 읽는 행위의 즐거움, 상상의 즐거움, 공감의 즐거움 등. 무심코 집어 든 책에서 생각지 못한 보석을 발견할 때의 즐거움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이야기로 세상을 향해 위로를 건네는 작가를 만나고 작가의 마음과 태도를 안다는 것은 또 어떤 종류의 즐거움일까.



 



무려 여덟 편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뒤틀린 세상을 드러내고 위로를 건네는 이은정 님의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저자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너무나도 쉽게 일상의 갑질과 횡포에 가슴이 베이는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딘가에 있을 희망의 빛은 놓지 말자는 따뜻한 진심과 그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했을 저자만의 치열함이 전해져서 좋았다. 적어도 누군가 한 명은 우리 인생의 어둠을 보듬어 주고 있다는 위로가 전해져서.



 



개인의 분노에서 시작된 광기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잔인한 칼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어이없게 꼬여버린 인생을 다룬 <잘못한 사람들>,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결국엔 가해자가 되고 처절하게 몸과 마음이 소멸해가는 가족들 이야기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삶과 죽음에 관여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인 인간에 대해 그믐이라는 달을 소재로 인간이 느끼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믐밤 세 남자>, 짊어져야 할 가족의 멍에 때문에 위태위태한 이혼 위기를 겪는 또 다른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에게 회유와 협박이 가해지는 폭력을 다룬 <친절한 솔>, 고부갈등의 말로를 잘 보여준 <숨어 살기 좋은 집>, 꿈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그러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엄 대리>, 개들의 삶을 빗대 젊은이들이 마주한 비루한 삶을 보여주는 <개들이 짖는 동안>까지. 어딘가 상처받고 삶의 언저리에서 비틀대고 머뭇거리는 보통 사람들의 꺼내보기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으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여덟 편의 작품을 담고 있다.



 



보다시피 상처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딘가 구멍이 나 있고, 뒤틀리고, 비틀대고, 허우적거린다. 가족 안에서, 관계 속에서, 우리가 속한 사회 안에서 절망이 일상인 사람들. 그 안에서 웅크리고 내면의 상처에 곪아가고 있을 때 어딘가 희망이 있다는 말조차 환상처럼 느껴질 때 사실은 무수한 밤, 그 어둠 속에서도 별들은 가장 환한 빛을 비추며 반짝이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불확실한 것들이 가진 가능성이 인간을 살게 하는지 모른다.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아 매력적인, 그믐이었다.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본문 93쪽




책을 읽을 때 책이 주는 여운 때문에 무언가를 끄적이게 하는 책들도 있고 어떤 책은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을 묵히고 그러고 나서야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책이 있다. 이은정 님의 짧은 이야기들을 담은 이 소설집은 읽으며 무언가를 막 끄적이게 만들었다. 여러 이유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기도 했고, 내가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메모하게 했고, 신선한 문장들이 입가에 맴돌아서였다. 부둣가에 총출동한 개들을 묘사하며 지루한 팔자들의 겨울 한 철 계약직에 비유한 표현이 그랬고, 친절을 가장한 어른들의 목소리를 친절한 솔이라고 한 표현이 그랬고, 작가라는 꿈을 가진 사람들의 원고의 무게를 너무나도 익숙한 꿈의 무게, 47그램이 그랬다. 그믐달과 초승달을 비교하며 존재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할 땐 깊은 한숨이 배어 나왔다. 이런 표현들을 생각하고 다듬으며 많은 시간 외롭게 사투를 벌였을 작가의 모습이 엄 대리처럼 그려져서였다. 그 외에도 독자들의 시선을 머무르게 하는 표현들이 곳곳에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던 책이기도 했다.



 



소설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에 담긴 여덟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내가 쫓고 있던 건 가식과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이야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거다. 내가 희망하는 세상 안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가식과 위선을 포장할 수 있는 것들로 생각과 마음이 짜여 있었을 뿐 결국 나 또한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누군가는 치열하게 그 상처들을 들여다보고 어떻게든 보듬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세상의 아픔을 그냥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같았다. 지금쯤 좀 더 뜨거워져 있을 작가의 체온을 자꾸만 떠올려 보게 된다. 그리고 너무 미지근한 나의 체온도.....




사람이 사람인 상태로 가장 뜨거울 수 있는 온도는 몇 도일까.



체온계 눈금은 42도까지다.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100도에 도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어차피 인생은 미지근한 거다.



탈탈. 짧고 시원하게 커피 가루가 쏟아진다.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본문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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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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