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운데.리뷰

다가치
- 작성일
- 2020.12.22
일인칭 단수
- 글쓴이
- 무라카미 하루키 저
문학동네
어린 시절 한때는 정말 하루키 책의 매력에 푹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에게 대부분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의 매력은 몽환적인 분위기 속의 '허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그 허무와 그 안의 초연함이 그렇게 시크하고 멋져 보였다. 와타나베의 말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맘에 그냥 좋았었다. 워낙 하루키 책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이야기가 많기도 하고, 노벨문학상 후보에, 하루키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이니 이런저런 평가가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 문학을 잘 모르기 때문에 - 굳이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표현은 저것에 대한 메타포야. 이렇게 이해를 하고 받아들이는 게 맞아.'라는 식의 강요는 싫다. 물론, 평론을 보고 다시 읽으면서 아 정말 이렇게 읽으니 또 다르군' 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일인칭 단수> 목차
오랜만에 읽은 하루키의 책 <일인칭 단수>는 8개의 단편 소설집이다. 반갑다. 각 단편의 주인공인 '나'는 하루키 본인인 것 같다. 실제로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의 '나'는 하루키 본인의 이름으로 나오며, 다른 단편들도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의 이야기들이다. 그냥 그의 기억의 왜곡이나 꿈꾼 내용을 일기처럼 적어놓은 글 같기도 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 남는 게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그런 글들이 무척이나 읽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몇 가지 이유를 찾았다.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일인칭 단수, 크림 中 - 무라카미 하루키
우선은 '그 특유의 의미를 종잡을 수 없는 선문답'이 매력이다. 이는 이 책에도 어김없이 잘 나타난다. 알 수가 없는 건지, 알 필요가 없는 건지, 알고 싶지 않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알듯 말듯 한, 아니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어둔 것이니 그냥 패스해도 돼'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느낌이 나는 좋다. 한 문장만 떼어내면 참으로 진리와 같이 와닿곤 하지만, 다소 황당한 설정에 그런 문장을 가져다가 대면 '이 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며 해석을 하는데 머리가 아프다. 그러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수밖에. 사실 본문에서 '나'도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에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라'고 '나-하루키'는 말한다.
이 책의 하루키 단편과 동명의 앨범 <With the Beatles>
클래식, 재즈, 팝에서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OST까지 다양한 음악을 소재나 매개로 한 것도 내가 그를 좋아하는 요소이다. 재미있게도 유튜브에는 이 책의 단편 중 한 편인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와 동일 제목으로 플레이 리스트가 올라와 있다. 그의 말마따나 찰리 파커와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이라니! 재미있는 상상이다. 참고로 하루키의 글 속에 나오는 곡 중에 모르는 게 있다면 들어보는게 좋다. 생각했던 음악과 너무 달라서 글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내가 너무 멋대로 곡의 분위기를 상상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실제로 내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것도 그 재킷을 소중하게 품에 안은 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만약 비틀스의 재킷 사진이 없었더라면 내가 느낀 매혹도 그토록 강렬하진 않았을 것이다.
일인칭 단수, 위드 더 비틀스 中 - 무라카미 하루키
사실 나에게 있어 하루키의 가장 큰 매력은 정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문장 하나하나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비슷한 그것을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 나에게도 위의 문장과 비슷한 경험이 있다. 충무로 카메라 거리를 일포드ILFORD 인화지 박스를 소중하게 품에 안은 한 소녀의 모습, 만약 고급스러운 일포드의 인화지 박스가 없었더라면 내가 느낀 매혹도 그토록 강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품 안의 그 인화지 상자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부분부분 여러 번 과거의 경험을 떠올렸다. 혹은 정말 오감을 자극하는 왠지 공감해야만 할 것 같은 그의 표현력. 수많은 작가들이 흉내를 내지만 언제 읽어도 그 맛이 정말 다르다. 차원을 달리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이쪽을 돌아볼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사흘 지난 바게트를 무릎에 대고 부러뜨리는 것처럼 메마른 소리였다.
남녀 불문하고 그렇게 큰 소리로 관절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일인칭 단수, 사육제 中 - 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개인적으로 글의 단위가 작아질수록 하루키의 매력이 배가 되는 것 같다. 장편, 단편, 하나의 장, 개별 문장 순으로 점점 격하게 공감이 되는 듯하다. 그래서인가? 사실 하루키는 원래 데뷔 초부터 단편 소설이나 에세이로 유명했고, 나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그의 단편을 더 즐겼으니까. 내가 하루키를 좋아한 건, 어린 마음에 멋져 보이는 허무라는 모호한 느낌이 아니라 아련함 속에 한 번씩 깊이 찔러오는 그의 한 문장 한 문장이었던 것 같다.
아주 긍정의 의미로, 이런 생각이 든다. '하루키 이 양반은 수 십 년이 지났는데도 변한 게 없군'. 수 십 년이라니, 처음 그의 책을 읽은 게 25년은 넘었으니 정말 그렇다. 실제로 변한 게 없는지, 세월에 흐름에 맞추어 비슷하게 변했는지는 모르겠다. 예전의 양 사나이 대신, 시나가와 원숭이가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랜 추억이 담긴 일기를 꺼내 읽은 느낌이랄까? 잊고 있던 나의 추억을 찾아, 틈틈이 오래전 그의 책들을 꺼내어 읽어봐야겠다.
- 좋아요
- 6
- 댓글
- 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