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중재리뷰(에세이/한국문화/한국사)

iseeman
- 작성일
- 2020.8.2
결 : 거칢에 대하여
- 글쓴이
- 홍세화 저
한겨레출판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평을 해온 저자가 새롭게 엮어낸 ‘사회비평 에세이’이다. 이른바 ‘남민전 사건’으로 외국에서의 기나긴 세월을 외국에서의 망명 생활을 견뎌내고, 마침내 귀국하여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며 살고 있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 존경심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현실에 비판적인 주장을 펼치며, 늘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글을 쓰고 있다. 자신이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살아봤던 경험이 있기에,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듯이 귀국해서도 그의 시선은 소외된 이들에게 향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자신의 글이 ‘거칠다’고 고백하지만, 어쩌면 세련됨을 통해 현실을 오도하는 글보다는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과 이익만을 헤아리는 현실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 열린 시선을 지니고 또 행동하는 저자의 삶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저자의 시선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현실을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귀국한 이후 기자와 진보 정당의 대표를 거쳐, 지금은 은행장이라는 직함을 갖게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사소한 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그것조차 납부할 여력이 없는 이들에게 벌금을 대여해주는 일을 하는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이다. 지난 해 여름 무렵에 강연을 목적으로 순천을 찾은 저자를 만난 적이 있다. 일정을 마치고 저자의 강연을 주선한 사람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 동참하기를 요청했고, 나 역시 기꺼이 동의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그때 받았던 저자의 명함에 장발장은행이라는 명칭이 보였고, 그 자리에서 왜 그 역할을 맡았는지에 대해서 꽤 오랫동안 설명을 들었다. 프랑스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소수자로서 살아왔기에, 자신이 기꺼이 그 역할을 맡아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자신의 생각이 충분히 전달되었다.
이 책에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피력되어 있다. 전체 4부로 구성된 목차에서, 제1부의 제목은 ‘자유, 자유인’이다. 누구나 다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바로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는 ‘짓다’라는 단어가 가진 포괄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현실의 부조리함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글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항목에서는 주로 ‘나를 고결하게 지을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적 가난에 대한 숙고와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즉 자본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 시대에 ‘빼앗긴 자유, 버림받은 자유’의 실태를 설명하고, 우리 ‘몸의 자유’를 통해서 ‘소박한 자유’나마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고 하겠다.
1부에는 모두 6개의 글로 수록되어 있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은 다음 구절에 포괄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남이 당신의 몸에 함부로 범접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당신 또한 남의 몸에 함부로 범접하지 말라.” 인간의 자유란 스스로로 지킬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는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타인의 자유는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타인의 삶을 존중하면서, 자기 내면에 이웃에 대한 사랑과 참여를 통한 연대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결국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이 중요하다는 것, 저자는 그것을 가리켜 ‘나를 짓는 자유’라고 규정한다. 소수자들에 관한 차별과 배제가 횡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역지사지’의 관점을 가져야 하며, 자기중심주의가 아닌 모두가 동등한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고 하겠다. 혹은 우리가 권력과 금력에 ‘자발적 복종’을 택한 것은 아닌지를 뒤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이 당신에게 행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당신 또한 남에게 행하지 말라.’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내용이, 주로 제2부의 ‘회의하는 자아’에서 다뤄지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이 명제를 제시하면서, 우리는 과연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반문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완성 단계에 이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려는 마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말을 듣되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수용할 생각이 없는 대화, 그것은 진정한 대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양상은 바로 가정과 학교에서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엔 기꺼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부모의 태도와, 정해진 ‘정답’만을 찾게 하는 교육 현장이 어쩌면 생각을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능력이 바로 자유인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사회는 암기와 지시에 익숙해져,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그렇고, 학교에서의 교육 내용이 그렇다는 것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상대방과의 대화에 있어서도 설득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경향이 강하다. 스스로를 완성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인격의 완성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그래서 저자는 회의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하면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평소에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표현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대입 시험은 암기로 얻어진 점수로 대학 진학을 결정하고, 그것이 때로는 그의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존재와 의식 사이의 함정들’이라는 제목의 제3부에서는, 당위적 이념과 자신의 이익 혹은 행위 사이의 간극을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저자가 재벌들의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집회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에게 던졌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상품들의 브랜드에서 노동자를 억압하는 회사의 제품은 없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가전제품들은 정작 그 회사에서 만든 것들을 사용하면서, 집회 현장에서는 그 회사를 규탄하는 것이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의 노조에서는 노동탄압을 일삼는 회사의 제품을 불매운동의 대상으로 삼아 노동자들이 실천에 나선다는 현실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또한 집회 현장을 함께하는 정당이 있지만, 정작 투표에서는 거대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노동자들의 인식 역시 ‘존재와 의식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거창한 대의에는 기꺼이 뜻을 같이 하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수반되지 못하는 대중들의 면모가 잘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 4장에서는 ‘난민, 은행장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지금 맡고 있는 장발장은행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오랜 난민 생활을 겪었던 저자가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으로의 추천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재벌과 정치인들은 천문학적 금액의 횡령 등의 죄를 저지르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나지만, 서민들은 생존을 위한 사소한 범죄에도 엄단을 내리는 사법부의 실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벌금형에 처해지자 오히려 경제적 여유가 없기에 실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이들을 위해 벌금을 대여해주고 추후 갚을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 바로 ‘장발장은행’이다. 저자는 진심으로 장발장은행이 필요치 않은 세상이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사소한 범죄가 없어지고, 벌금 대신에 징역형을 원하는 이들이 없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자신의 글을 ‘섬세하지 못한 글’로 규정하면서, 프랑스에서 떠올렸던 윤동주의 시 구절을 상기시키고 있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구절이 포함된 <자화상>이라는 작품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고국에서 ‘권력과 물질이 승리를 구가하는 시대에 지배와 복종에 맞서겠다는 자유인’으로 살고자하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 결과가 ‘세속 사회의 패배자’로 남더라도, ‘편하고 안락한 삶에 대한 욕망 앞에서 자유의 참된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저자의 생각이 이 책에 담겨있다. 비록 저자처럼 치열하게 실천을 하며 지내지는 못하지만, 간혹 신문 칼럼과 책을 통해서 만나는 그의 가르침을 깊이 간직하면서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존재와 의식을 일치하는 삶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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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