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읽은 책

민민
- 작성일
- 2022.11.2
헤어질 결심 각본
- 글쓴이
- 박찬욱 외 1명
을유문화사
(본 리뷰는 스포를 포함합니다)
나는 보통 영화를 보고 나면 각본집이나 원작 소설을 읽지 않는다. 굳이 그걸 또 봐야 하나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은 내가 영화를 보고도 각본집을 읽은 최초의 책이다. 애초에 대본집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형식의 글은 익숙지 않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너무나도 많은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을 재미있게 본 내게 다들 이 책만은 꼭 읽어보라고 했기에, 못 이기는 척 책을 펼쳤다. 우연히 교보문고 e북으로 180일 무료 대여도 해줬는데, 거의 온 우주가 나를 이 책을 읽으라며 등을 떠미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헤어질 결심'을 펼쳤고, 또다시 내가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읽으니 다시 보이는 감정선들이 재미있었다. 눈앞에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고, 이 대사를 자신만의 컬러로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를 곱씹기도 했다. 그들의 첫 만남부터 사소한 감정선도 그렇고, 영화에선 미처 느끼지 못했던 아주 작은 디테일도 책으로는 너무나 잘 느껴졌다.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한참을 푹 빠져 읽었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너무나도 많아서 발췌하다가 '나 혹시 이 책 전부를 발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사실 더 발췌하고 싶었는데 꾹 참고 일부분을 발췌해왔다. 만약 내 마음에 드는 문구를 다 발췌했다면 헤어질 결심 각본이라는 책 한 권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책을 읽으며 선명하게 느낀 것은 서래를 온전히 서래로 바라봐 주는 것은 해준뿐이라는 거다. 이포에 간 서래가 입은 원피스는 해준 눈에만 녹색이고, 그 외 인물들은 서래의 원피스를 파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준만큼은 녹색으로 바라본다. 초록색의 서래. 1막에서 나오는 서래의 노트도 녹색이고, 서래가 이포에 가서 해준과 만나는 날 입은 원피스도 녹색이다. 거기다 서래는 죽는 그날까지 초록색 플라스틱 양동이로 흙을 퍼서 그 안으로 들어간다. 죽는 그 순간에도 녹색병을 꺼내 들어 이과두주를 마시는 모습이 나온다. 이렇게나 서래 근처에는 초록색이 많고, 그 초록색을 온전히 초록으로 바라봐 주는 것은 해준이뿐이다. 그런 사람과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 또다시 나쁜 선택을 하는 모습이 나는 참 안쓰러웠다. 서래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초록색으로도 보이고 파란색으로도 보이는 사람인데 이는 마치 서래는 살인마로도 볼 수 있고, 또 불쌍한 여자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 같다.
둘은 마치 깨어진 도자기 같았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와 맞는 조각. 이 사람이 아니면 그 무엇도 나를 온전하게 맞출 수 없는 강렬한 이끌림. 그런 사랑을 져버리고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어쩌면 서래의 결말은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보다도 더 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서래의 사랑은 과연 완결인 걸까, 미결인 걸까.'하다가 문득 그럼 '죽음은 과연 사랑의 끝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으면 사랑은 끝나는 걸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걸까?'. 나는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사람이 그 사랑을 놓지 않는 한, 끝없이 그 사랑도 이어지는 게 아닐까. 영화나 책에서는 끝내 해준의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기엔 아마 해준은 평생을 서래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깊은 바닷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갈 것 같았다. 불면증으로 잠도 못 이루며 눈에 핏발을 세우고, 매일 벽에 붙은 서래의 사진을 보며 머리를 부여잡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해준에게 사랑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 꽤나 서래 다웠다.
만약 나라면 이런 사랑을 만나고도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을까. 사랑을 위해 나는 어디까지 버릴 수 있을까. 답을 하기엔 내가 아직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한 가지 답을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은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아직 '헤어질 결심'과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했다는 거.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minute-/222917437334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