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읽은 책

민민
- 작성일
- 2023.1.18
태풍의 계절
- 글쓴이
- 페르난다 멜초르 저
을유문화사
'태풍의 계절'은 을유문화사에서 선보이는 '암실문고' 시리즈 중 하나이다. 암실문고는 우리가 아는 단어의 뜻 바깥에 있는 마음을 탐구하는 시리즈라고 한다. 서로 다른 색깔의 어둠을 하나씩 담아 서가에 꽂아 두는 작업이라고 하는데, 앞으로도 꽤 매력적인 시리즈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암실문고 시리즈 중 하나인 '태풍의 계절'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으로, 2017년에 멕시코 베라크루스에서 일어난 마녀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다. 베라크루스의 한 마녀가 살해당하고, 그 후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통해 베라크루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그 모습을 통해 독자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함을 느끼게 된다.
사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문단이 나눠지지 않은 채 쓰여있고, 파트 Ⅲ 까지는 잦은 시점 변경으로 인해 상황 이해에 대해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하지만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멜초르의 묘사가 공감각적으로 다가오는 마법적인 순간을 경험했다. 책을 펼치는 순간 후덥지근하고 끈적한 느낌이 들었고, 동시에 악취가 나는 듯했다. 이런 마법적인 순간을 마주하면서, 어느새 나는 베라크루스 한복판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초반에는 적응하지 못했던 나눠지지 않은 문단이 어색했는데 책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오히려 떼어내지 않은 문단들에서는 혼란하고 질서가 없는 베라크루스의 날 것이 더 잘 담겨 있었다. 마지막에는 책을 다 읽고서 파트 Ⅱ를 다시 곱씹으며 다시 읽을 정도로 푹 빠진 나였다.
태풍의 계절은 이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시점들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는 '라쇼몽'처럼 사건에 대해 각자 입장에서 서술하기보다는, 오히려 각자의 사연과 삶에 더 주목한다. 그리고 그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는 그 절망적인 곳에서 진짜 악인을 찾는 행위를 포기하게 된다. 대체 이들에게 악인을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법도 질서도 무너져 버린 그곳에서 말이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범죄가 녹아있다. 아동학대, 방임, 언어폭력, 미성년자 성폭행, 매춘, 마약, 살인 등 너무나도 많은 범죄가 만연한데 그를 통제할 그 어떠한 권력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경찰도 그 구역을 점령한 마약 조직과 한 패거리다. 그곳엔 어린 그들을 지켜줄 그 어떤 방패도 없다. 이런 절망적인 곳에서 그들은 자신의 힘만으로 온전하게 설 수가 없다. 그래서 술과 마약에 의존하고,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쾌락인 성욕만을 쫓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성욕의 결과로 벌어질 또 다른 불행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 점이 너무나도 나를 암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실화라는 말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며 알았다. 차라리 작가가 내게 이것은 그저 소설일 뿐이라고, 모든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모두 현실이라고 한다. 아마 이 책이 공포 소설인 이유는 이 모든 내용이 허구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이게 그저 악몽이라면 꿈에서 깨어나면 되고, 그저 허구뿐인 소설이라면 책장을 덮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는 악몽도, 그저 소설도 아니다. 그 점이 가장 공포였던 것 같다. 이 절망적인 곳에서, 그 태풍 속에서 그들이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희망의 빛이 죽음일까 봐 나는 그게 가장 무서웠다.
멜초르, 지금 베라크루스의 계절은 어떤가요? 태풍은 지나갔나요? 당신의 대답이 확신에 가득 찬 'YES'일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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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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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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