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카테고리
교고쿠
- 작성일
- 2011.3.28
조선팔천 朝鮮八賤
- 글쓴이
- 이상각 저
서해문집
개인적으로 조선시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근엄하고 그럴듯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온갖 추잡한 일들이 일어났고, 양반들의 생활 유지를 위하여 수많은 평민들이 합법적으로 수탈을 당했으며 천민들의 경우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또한 유교 사상은 불교와 천주교를 탄압했고 여성을 억압하는 것을 합리화했으며, 상업과 공업을 천시하고 충효의 명목으로 많은 사람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어 놓았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각종 쓸데없는 습속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저 씁쓸할 뿐이다. 이러한 조선시대에 가장 고달픈 삶을 살았던 것은 천민들이었다. 그들은 양반에게도, 평민에게도 철저히 멸시와 차별을 당했으며 그 신분은 당대에 그치지 않고 자손에까지 세습되었다. 이상각의 <조선팔천 朝鮮八賤>은 이러한 조선시대의 천민들의 삶을 조명하고 역사의 한켠에 남은 그들의 흔적을 살피고 있다.
팔천(八賤)은 천민으로 규정되었던 노비, 기생, 백정, 광대,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을 일컫는다. 천민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던 노비는 관청 등에 소속된 공노비와 양반 집에 소속된 사노비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공노비는 그나마 다른 천민들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았으나, 사노비는 짐승보다도 못한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노비들은 상속, 매매의 대상이었으며 체벌 등도 종종 가해졌고 여자 노비는 주인에 의해 성적인 착취를 당하기도 하였다. 노비들이 혼인하여 낳은 자식들 역시 신분이 세습되어 노비가 되며, 노비와 양인이 혼인해도 그 자식들은 노비가 된다. 양반이 여자 노비를 첩으로 두면 그 자식들은 얼자(孼子)가 된다. 종모법에 따라 얼자들 역시 천민이 된다. 미암 유희춘이 자신의 천첩 소생인 딸들을 속량하여 양인 신분으로 만든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자신의 천출자녀들을 속량하는데는 승진 청탁 등의 부정한 수단을 쓸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그가, 자신이 거느린 노비의 속량에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상당히 이중적이다.
또한 기생은 겉으로는 화려해보이지만 실상은 표리부동한 유학자들의 성노예와도 같은 삶을 살았다. 황진이와 같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기녀들도 있지만, 사실 그들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는 의녀들도 원래는 기생 신분이라 궐내의 각종 연회와 고관대작들의 술자리에 동원되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재능이 많아도 그저 성적 대상으로밖에 보여지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그릇된 생각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소, 돼지 등의 도축을 맡았던 백정들은 사실 고려군에게 투항하거나 생포된 거란인 출신 귀화인들이다. 그들이 농경사회의 정적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목축과 수렵에 종사하거나 유랑생활을 하는 것을 조선의 지도자들은 일종의 위협으로 느꼈고, 결국 그들을 감시하고 여러 지방에 분산시킴으로서 집단화를 차단했다. 강제로 유교적인 틀 안에 집어넣으려고 한 것이다. 그들에 대한 차별 정책은 다양해서, 의복이나 사용하는 물건에서부터 이미 평민과 구별되도록 했다. 심지어는 같은 피지배계층인 평민들도 백정을 심하게 차별했다. 또한 광대 역시 백정처럼 북방 유목민 계통이었으며 조선 사회에서 일종의 특수 신분으로 취급되었다. 이들은 지배계층의 각종 행사에 동원되는 필수적인 인적자원이었으므로, 재인청을 통해 광대들을 관리하게 되었다. 그 외에 사당패와 같은 집단은 불법 집단으로 간주되어 탄압받았다. 광대들의 화려한 놀이판 뒤에는 그들의 고단하고 슬픈 삶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장(工匠)은 일종의 전문 기술자인데도, 공업을 천시하는 유교 문화 안에서 차별을 받았다. 그들이 진출할 수 있는 직업도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민간의 장인들은 항상 부역과 수탈에 시달렸다. 조선시대의 천재 과학자였던 장영실 역시 많은 업적을 세웠으나 결국은 곤장을 맞고 쫓겨나게 될 정도니 이름없는 수많은 기술자들이 당했을 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당과 승려는 유교 사상에 의한 무속과 불교의 탄압으로 인해 음란하고 사악한 것으로 매도되었다. 병이나 근심 등의 아쉬운 일이 있으면 무당을 찾으면서도 평소에는 그들을 철저히 차별해 왔던 것이다. 승려 역시 불교 탄압 정책으로 인해 산 속에서 조용히 수행할 권리조차 빼앗겼다. 종이, 두부 등을 만드는 등의 온갖 부역에 강제로 동원되었고 심지어는 전쟁에도 동원되어 수많은 승려가 목숨을 잃었다. 상여꾼들은 상장례를 주관하는, 꼭 필요한 직업이었음에도 멸시와 차별을 당했다.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압량위천(壓良爲賤), 신량역천(身良役賤) 등의 전문용어들이 심심찮게 등장하지만 이런 용어에 대한 해설이 딱히 없다. 한문이나 역사에 강하다면 별로 걱정할 것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매번 찾아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각주로 전문용어들에 대한 해설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듯 하다. 그리고 일본의 부락민에 대해 다룬 <일본 부락의 역사>와 비교하면, <일본 부락의 역사>는 고대부터 근대, 현대까지의 일본 역사 안에서 천민으로 규정되었던 에타, 히닝, 부락민 등이 어떤 식으로 차별을 당했고 이들이 어떻게 저항했으며 관련된 역사적 사실은 어떤 것이 있는지, 꽤 자상하면서도 원래의 의도를 잃지 않고 있으나 이 책은 뒤로 갈수록 사회적으로 차별받던 약자들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의례나 전통 문화에 대한 서술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 하다. 이래저래 <일본 부락의 역사>와 비교하면 실망감이 크지만, 조선시대의 사회적 약자였던 천민들을 다룬 거의 최초의 책이라는 점은 칭찬할 만 하다.
또한 읽으면서 든 생각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신분제에 의한 차별이 있었다면 현대 사회에는 일종의 자본에 의한 차별로 그 형태가 바뀐 듯 하다. 어쩌면 신분제에 의한 차별보다 더 가혹할지도 모른다. 재벌이나 정치인 등이 이 새로운 자본의 신분제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비참한 삶을 사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반 서민들의 삶 역시 고달프다.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없고, 고용의 안정성 역시 기대할 수 없다. 신분상승의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개천에서 용 나는 일' 역시 지금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서울대 신입생 중에 외고, 강남권 학생들의 비율이 1/3을 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부유한 학생들은 시설 좋은 오피스텔이나 원룸에서 편안히 학교를 다니고, 가난한 학생들은 등록금조차 마련하기 힘들어서 아르바이트에 매진하고 결국 공부할 시간조차 부족하게 된다. 재벌들은 자기들끼리 혼인하여 공고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고, 서민들은 돈이 없어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다. 이것이 곧 새로운 신분제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저 암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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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