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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앤
- 작성일
- 2023.1.26
지구 끝의 온실
- 글쓴이
- 김초엽 저
자이언트북스
김초엽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한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SF 소재로 이토록 철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며 감탄했더랬다. 이후 몇 번의 면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김초엽 님을 대곤 했는데. 그런 것치고는 이번이 두 번째로 읽는 책이다.
책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지구 끝의 온실'은 김초엽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밀리의 서재에서 선연재되었으며, 수정을 거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연재 때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제라도 완독해서 뿌듯함.
지수는 호버카를 몰고 온갖 종류의 '더스트 폴 공동체'를 돌아다녔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비참해보였는데도 저마다 자신들이 유일한 대안이자 마지막 유토피아라고 주장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p.280
더스트로 멸망한 사회의 재건 60년. 미래에도 우리는 여느 인류의 역사처럼 곳곳에 공동체, 국가와 같은 '돔', '빌리지' 사회를 형성하고 살아간다. 이 책의 프림빌리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빌리지 밖의 더스트를 피해, 이들만의 온전한 마을을 만들고 영원을 기대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사회는 언제나 불안정하며, 사람들은 각기 다른 평화의 방식을 주장하며 이는 결국 갈등이 된다. 과정에서 이탈자가 생기고, 견고할 것만 같은 빌리지는 또 다시 해체된다.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분명 온통 처음 듣는 미래 용어, 생활 방식 그리고 기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SF소설 속 어느 지점은 코로나 19 사태 그리고 우리 사회와 맞닿아있어 보인다. 전세계를 혼란스럽게 한 바이러스의 등장과 그 이후 완전히 달라진 세계. 다양한 가치를 앞세워 일어나는 갈등들을 읽고 있자니, 역시 이것도 영 판타지는 아닌 듯하다. 우리는 때로 만들어진 이야기에서 우리를 발견한다.
뭐가 옳은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세계를 말하는 것이 이상했다. 프림 빌리지 바깥의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인류 전체의 재건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그들은 우리를 착취하고 내팽개쳤다. 그 사실만은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버려진 우리가 세계를 재건해야 할까.
-p.215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렇듯, 모든 것이 사라지고 불안정한 세계에서도 희망은 있다. 프림빌리지의 사람들은 그 속에서도 각자의 삶과 희망을 꾸려간다. 내일을 계획하고 다음해에 수확할 식물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우정을 사랑을 피워낸다.
그리고 그 연대는 훗날 더스트를 감소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지켜낼 힘이 된다. 프림 빌리지 사람들은 마을의 해체 이후 각 지역으로 넘어가 레이첼의 온실 속 '모스바나'를 심는다. 지구 곳곳에서 동시에 발견된 수상한 식물과 '마녀'쯤으로 취급받던 사람들은 결국, 세계의 재건을 위해 움직인 흔적이었던 것이다. 뒤늦게 전설처럼 이어지는 어떤 식물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숨겨지지 않은 어떤 희망과 애틋한 마음을 발견할 것이다.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한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구획되고 통제된 자연. 멀리 갈 수 없는 식물들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재현하는 공간.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 p.389
지구와 우리의 공존, 그리고 이어나갈 세계를 위해 우리는 어떤 일들을 해야할까. 어떤 것이 기계인지 인간의 마음인지 분리할 수 없는 시대가 오더라도, 우리가 지켜가야 할 가치와 사랑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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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